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장기태 서훈추진위원장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재평가" 기대

김도형 0 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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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장기태 서훈추진위원장

 

(전국= KTN) 김도형 기자= 4월 2일 11시 50분, 민문연 구미지회 장기태 서훈추진위원장과 신문식 회원(구미시의원)은 대구지방보훈청을 방문해 임은동 출신 허형식(1909~1942) 장군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허형식 장군은 왕산 선생 순국 뒤 임은동 허씨 일가의 만주 망명 이후, 항일 무장투쟁에 뛰어들어 1939년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의 군장 겸 총참모장에

올라 그해 9월 조주현 풍락진을 기습공격해 경찰서장을 사살, 조원성, 하얼빈 철도파괴(일본군수수송)하고 하얼빈 일대를  점령했다.

 

1940년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제12지대 정치위원으로 활동한 허형식 장군은 북만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주도했으며, 1941년 봄까지 하얼빈 서북 조주.조동.조원(肇州.肇東.肇源) 3조에서 12지대(90명~40명) 기마부대를 지휘, 1년동안 30여개현에서 40여차례전투, 일본의용대훈련소5개, 비행장1개 습격,  250명 사살 500여명 생포, 기관총7정.박격포4문.총기류 500점노획 등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이후 일본관동군의 북만지역을 집중 공격했다. 1941년초까지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괄지휘한 허형식 장군의 부대는 일본군과 전투로 200여명만이 생존했다.

1942년 7월 허형식 장군은 북만주지역에서 휘하부대 소분대로 편성 지역활동, 각지역 반일구국회 대중조직체 점검과 파언.목란.동흥(巴彦.木蘭.東興)분대 활동을 했으며, 1942년 8월 3일 경성현(慶城縣) 청송령(靑松嶺) 소릉하(邵凌河) 계곡에서 노숙 중 새벽에 만주국 토벌대 포위망속에 전투중 전사했다.  당시 허형식 장군이 사용하던 권총은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 전시중이다.

 

한편, 장기태 서훈추진위원장은 허형식 장군의 서훈 추진 이유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2018년 10월 21일 구미시민과 함께

왕산허위(대한민국장 1962) 순국 110주년 추모제를 지내고 ‘만주제일의 항일파르티잔 허형식장군’ (저자 박도)책을 읽고 허형식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한것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서훈신청할 직계후손이 없는 부분과 만주지역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재평가가 없었던 이유로 이미 지난 2006년 10월 도서출판 ‘고구려’에서 허형식장군에 대한 서훈 추진 있었으나 심사에서 포상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 인터넷 기사 자료 검색으로 연합뉴스, 경향신문, 여러 언론매체에서 허형식장군에 대해 기사를 보면서 서훈을 추진을 다시 해야겠다는 각오로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창립후 허형식장군서훈추진위원장을 자청해서 맡아 2달여 동안 준비과정을 거쳐 오늘(4월 2일) 신청서(115장)를 국가보훈처 대구지방청에 접수하고 왔습니다.

 

  준비과정에 허형식장군의 친조카 되시는 허창수님(건국포장 받으신 허필(許苾)의 손자)을 뵈러갔을 때 독립유공자 명패가 없는 것에 세종시 국가보훈처 담당자한테 관련서류(재적등본, 주민등록등본)를 보내고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부서에서 심사하여 보훈처에 보관된 건국포장 훈장이 손자 허창수님에게 곧 전달될거 같습니다.

 

  그동안 중국만주에서 구해온 귀한 역사자료를 주신 박도선생님(허형식장군 실록소설 작가), 논문자료를 주신 장세윤교수님(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강원도 등 늘 같이 동행해주신 신문식의원님, 전병택 민문연구미지회장님, 이수연부지회장님, 김성대사무국장님등 도움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100주년을 맞아 815광복절에는 꼭 서훈을 받을수 있도록 여러관계자분들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항시인 이육사  ‘백마타고 오는 초인’으로 외당숙 허형식을 “광야”를 통해 그를 흠모하였으며, 끝으로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수석 연구위원의 글로 대신합니다.

 

당대의 여러가지 모순을 척결하고,
억압과 폭력, 차별이 없는 사회, 불평등과 탐욕, 약자에 대한 수탈없는 사회,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풍요로운 사회,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맹렬히 투쟁하다가
끝내 33세의 나이로 만주국 토벌대의
총탄에 장렬히 산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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