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死一生을 초월한 구전설 인물, 김명철의 73년 증언
“12번의 죽음 앞에서 운명은 나를 놓아주었다”
[한국유통신문=김도형 기자] 전자통신·산업 전문가 출신의 김명철(73) 씨는 1953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난 이후, 12번의 생사를 오가는 극한의 삶을 살아온 생존자다. 육군 병장, 두바이 신공항 무선통신 총괄, 중소기업 대표 등 화려한 경력 뒤에 숨겨진 구사일생의 기록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닌 인간 생존의 본질을 묻는 생명 철학으로 완성된다.
김명철 씨는 1968년 별표전축 TV학원 속성 1기생으로 전자공학의 첫걸음을 뗐다. 세운상가 황금전자에서 RF 연구원으로 시작해 (주)제일통신 통신기기연구원, 상원전자 관급납품 기술지원까지 30년간 전파·통신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특히 1979년 두바이 신공항 프로젝트에서 프랑스 전투기-관제탑 교신 완성, 현대유조 12만 톤급 무전기 수리 공로로 사우디 한국대사·정주영 회장 표창을 2회 수상한 이력은 당시 한국 기술자의 위상을 보여준다. 삼성전자 수원공장 긴급보수, 대우부평자동차 자동화시스템 복구로 김우중 회장 금일봉까지 받으며 기술자로서의 신뢰를 입증했다.
12번의 생사고비, 각기 다른 구원자
김명철 씨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12번의 죽음 직전 순간이다. 3세 홍역 위기에서 어머니의 기도, 10세 한강 익사 2회, 16세 소용돌이 구조, 22,900볼트 감전사고, 버스 밑 오토바이 끼임, 위암 절제수술, 낭떠러지 추락 실패까지 각기 다른 인명구조자들이 등장한다.
▲1963년 한강 익사 1: 공군 병사 인공호흡
▲1979년 두바이 감전사고: 22,900V 직격 생존
▲2006년 위암 응급: 저승사자 꿈 후 기적적 회복
▲2018년 자살 위기: 형님의 우연한 발견
가장 극적인 순간은 2006년 청도-서울 이동 중 위출혈 실신, 세브란스병원 위 100% 절제수술 당시였다. 검은 한복 저승사자와의 대면 후 깨어난 그는 "무의 세계에서조차 생환 의지를 느꼈다"고 회고한다.
“운명은 나를 붙잡은 사람들의 손에 있었다”
“내 목숨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나를 구한 사람들의 손에 있었다는 깨달음”이 김명철 씨 철학의 핵심이다. 그는 12번의 위기마다 공군병사, 사촌동생, 형님, 의료진 등 예기치 않은 구조자를 만났다.
“육신의 고통 없는 무의식 상태에서 구름을 타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죽음 앞에서도 달걀귀신, 도깨비가 꿈에 나타났다. 이는 신의 영역이 나를 지켜준 증거”라고 믿는다.
경영인에서 철학자로, 무형의 재산 공유
덕성프레스·덕성상사·네스코아 대표를 거친 그는 중기청 우수제품 선정, PCT 국제특허 1종, MBN TV 출연 등 업적을 남겼다. 2010년대 바누아투 신공항 프로젝트, 국방부 21세기안보실천연합 대외협력국장으로 국제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좌우명 “상식을 원칙으로 지키며 사는 삶”을 실천하며, 그는 “내면의 욕심과 탐욕은 사치”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의 눈만 봐도 마음을 읽는 법을 터득했다”는 통찰은 73년 경험의 결정체다.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은 나”라는 김명철 씨는 13번째 죽음은 고통 없이 맞이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2025년 예지몽에서 부친이 “가화만사성”을 쓰게 한 꿈은 그가 믿는 하늘의 예언이다.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소박한 꿈과 함께, 그는 九死一生을 넘어선 실존 철학자로서의 삶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기록은 개인사가 아닌, 인간 생존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살아있는 증언집이다.
<저작권자(c)한국유통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및 사회적 공헌활동 홍보기사 문의: 010-3546-9865, flower_im@naver.com
검증된 모든 물건 판매 대행, 중소상공인들의 사업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
#구사일생 #九死一生 #김명철 #생존내용증언 #12번죽음 #전자통신전문가 #두바이신공항 #위암생환 #운명철학 #기술인생애 #인생교훈 #신의가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