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뉴텍그림이야기(34)- 머리를 땋는 수잔 발라동(오귀스트 르누아르)
머리를 땋는 수잔 발라동, 르누아르, 1884~1886년, 56 x 47cm
[한국유통신문= 이용범기자] 이 작품은 르누아르가 그린 '수잔 발라동'의 초상화이다. 수잔 발라동은 르누아르의 뮤즈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강인한 내면과 자기 다음을 잃지 않은 모델이자 화가였다. 특히 19세기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여성 화가였고, societe Nationale des Beaux-Arts(예술가 협회)에 가입한 최초의 여성화가이기도 했다.
그림에서는 발라동은 풍만한 육체에 눈을 살짝 내리깔고 머리를 다듬고 있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둥근 곡선미를 가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임을 보여준다. 발라동은 가난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낳다. 15살 때는 서커스 곡예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부상으로 곡예를 할 수 없게 되자 생계유지를 위해 10여 년 동안 여러 화가들의 모델이 된다.
그녀는 먼저 프랑스 화가 퓌비 드 샤반의 모델이 되었고, 당시 모델이 화가의 애인이 되는 관례상 샤반의 어린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화가가 되고 싶은 욕망에 샤반을 떠나게 된다. 이후 발라동은 르누아르와 툴루즈 로트렉 등의 모델이 되었고,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이들의 화법을 독학하며 미술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녀의 재능을 발견한 로트렉은 그녀가 그림을 그리도록 독려했고, 이름도 수잔이라는 지어주었다.
모델 생활 중 18세의 수잔 발라동은 미혼모로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녀가 결코 아버지가 누군지를 공개하지 않았던 그 아이는 나중에 화가로 성장한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이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녀는 순진무구한 아름다움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아마도 르누아르는 수잔 발라동의 모습 속에서 화가들 앞에 서서 모델 일을 하는 고단함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밝힐 수 없는 미혼모가 되어버린 고난 같은 것은 지워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르누아르는 여성들을 아름답게 묘사하기로 유명한 화가이다. 여성의 아름다운 피부 결을 묘사하기 위해 흰 장미의 표면을 관찰하고, 자신은 ‘성기로 그림을 그린다’라고 말할 정도로 남성 화가가 바라본 여성의 매력을 더 아름답게 과장하여 그리기도 했다.
늘 즐겁고 산뜻한 모습으로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등장했던 수잔 발라동의 자아상(自我像)은 르누아르의 그림과는 달리 매섭고 비장하다. 그래서 르누아르의 그림 속 모델로서의 그녀와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반영된 수잔 발라동의 자화상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이다. 수잔 발라동은 초기부터 자화상을 그려왔고 화가로서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과 모델로서 바라봐지는 타자의 시선 속에서 자화상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자기수용의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이는 반드시 아름다워야 했던 그림 속 미적 대상의 삶과 대조되며, 자화상 안에서 미화되지 않은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표현했던 것이다.
수잔 발라동 자화상, 188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