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최근 오클랜드의 한 JP(Justice of the Peace, 평화법관) 겸 회계사가 국제 금융 사기 사건에 가담해 180만 달러라는 거액의 피해를 초래했다는 소식은 뉴질랜드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74세의 수렌 샤르마. 그는 국세청 세무 대리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회사를 운영했고, 수십 년간 JP로 봉사해온 지역사회의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그는 은퇴자 등 투자자 12명으로부터 받은 돈을 해외 범죄 조직에 송금하거나 암호화폐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자금 세탁을 돕는 역할을 했다. 위클리코리아에 따르면 피해 규모는 180만 달러, 그중 개인적으로 10만 달러 이상을 챙겼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사건이 충격을 주는 이유는 단순한 금전적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JP’라는 직함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명예직 중 하나다. 경찰이나 판사가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의 신뢰를 기반으로 위임받아 법적 인증과 증명 업무를 맡는다. 곧, ‘신뢰의 이름’을 부여받는 자리다. 그 직책을 수십 년간 지켜온 인물이 명예와 신뢰를 돈 앞에서 무너뜨린 것이다.
샤르마는 법정에서 줄곧 “자신도 속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은행 계좌 기록과 녹취록은 그의 혐의를 뒷받침했다. 검찰은 “회계사이자 세무 전문가로서 자금의 출처와 성격을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일반인이 모를 수는 있어도, 전문가이자 JP라면 반드시 의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접하며 필자는 자연스레 한국 사회를 떠올렸다. 한국에서도 존경받던 인물이 추문에 휘말려 추락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정치권 고위 인사의 뇌물수수, 대기업 경영진의 회계 부정, 종교계 지도자의 사적 비리 등 적지 않게 반복돼왔다. 한국 사회에서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그 개인이 차지한 위치가 공동체 전체의 신뢰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뉴질랜드에서 JP라는 직함이 그렇듯, 한국에서는 국회의원, 재벌 총수, 대형 교회의 목사라는 ‘이름’이 곧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 이름이 무너질 때, 사회 전체의 불신과 냉소가 자라난다.
특히 “나는 몰랐다”는 항변은 한국 법정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보고를 받지 못했다”, “부하 직원이 독단으로 했다”는 식의 변명은 국민에게 단순한 무지라기보다 ‘책임 회피’로 받아들여진다. 전문가라면, 지도자라면 의심하고 검증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샤르마의 항변과 한국 지도층의 변명은 묘하게 겹쳐진다. 결국 국민은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정말 몰랐을까?”
뉴질랜드 법원은 곧 샤르마의 선고를 내릴 것이다. 나이와 경력을 이유로 형 집행 면제를 받을 수도 있지만, 피해자들은 삶의 재산을 잃었고 사회적 신뢰는 더 큰 상처를 입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원이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에게 관대할 때마다 국민은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법이 인간적 관용을 이유로 가볍게 작동하면 피해자의 눈물은 외면당한다. 반대로 지나친 엄벌은 다시 사회적 회복을 가로막게 된다.
따라서 한국과 뉴질랜드 사회 모두에 중요한 교훈은 하나다. 정의는 피해자의 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경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피해자의 상처와 공동체 신뢰를 먼저 기준 삼아야 한다. 정의의 무게는 언제나 이름의 무게보다 크기 때문이다.
샤르마 사건은 단순한 범죄 뉴스가 아니라, 이름이 가지는 사회적 신뢰와 그 배신이 낳는 파괴력을 보여주는 경고다. JP라는 이름, 회계사라는 이름, 그리고 한국 사회의 국회의원·재벌·종교 지도자의 이름까지. 우리 모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가?”
신뢰는 하루아침에 얻어지지 않지만, 한 번의 추락으로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세우는 데는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뉴질랜드와 한국, 두 사회가 이번 사건을 통해 함께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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