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교육학 박사). 북경화지아대학교 국제교류처장, 기업관리대학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칼럼으로 풀어내고 있다.
호주의 코카투(유황앵무) 이야기와 한국 도시 속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생각하며
도심 한복판에서 새가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상상만 해도 재미있고 놀라운 장면이다. 그런데 그 상상이 실제로 현실이 된 곳이 있다. 바로 호주다. 그곳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흰 앵무새, 코카투(cockatoo)는 단순히 예쁜 깃털로 사람의 시선을 끄는 조류가 아니다. 이들은 꽤나 똑똑하고 영리한 ‘도시의 생존자’로, 호주의 일상을 배경 삼아 무대 위 배우처럼 자신들만의 생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최근 호주에서는 코카투들이 사람처럼 공공 음수대의 수도꼭지를 열고 직접 물을 마시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음수대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에는 이 새들이 입으로 레버를 밀어 올린 뒤 혀나 부리로 물줄기를 받아 마시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겼다. 이는 단순히 우연한 행동이 아니라, 명확한 목적성과 반복을 통한 학습, 그리고 사회적 전파를 통해 이러한 행동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이 현상이 관찰된 것은 2018년, 시드니 남부에 위치한 한 공원에서였다. 이후 영국 생물학 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최근 코카투들은 44일간 500회 이상 음수대를 사용하는 모습이 확인되었고, 심지어 그중 46%는 완벽하게 물을 마시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음수대의 사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레버를 입으로 당겨 올리는 미세한 조작, 물줄기를 정확히 받아 마시는 균형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반복된 관찰과 학습이 필요하다.
공동 연구자인 호주 국립대의 생태학자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는 이 현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새들은 서로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배운다. 단순히 ‘보고 따라 하는 것’을 넘어, 다른 새들이 음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걸 본 후 자신도 시도해 보고, 그 경험을 통해 성공적인 방법을 습득한다.” 학습과 모방, 시행착오를 통한 발전. 이 얼마나 인간적인 이야기인가.
한국의 도시 한복판에 사는 동물들, 그중에서도 특히 까치와 비둘기를 보자. 까치는 예로부터 ‘길조(吉鳥)’로 불렸고, 그 영리함은 이미 전설이 될 정도다. 어떤 날은 까치가 사람의 눈치를 보며 쓰레기봉투를 조심스레 쪼는 모습을 보고 “쟤도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고생이 많구나” 하고 웃은 적이 있다. 마트 앞, 공원 벤치 옆, 지하철 출구 근처 등 우리 주변에도 도시의 생존을 위해 인간의 세계를 ‘배우고 적응하는’ 동물들이 많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주의 깊게 보지 않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코카투의 행동은 단순한 ‘귀여움’이나 ‘신기함’을 넘어,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도시라는 공간을 오직 인간만의 것으로 여겼을까?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 전봇대 위에서 우는 까치, 공사장 주변을 맴도는 비둘기. 이들은 인간의 문명 속에서 길을 찾고,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히며, 때로는 우리를 흉내 내기도 한다.
코카투는 쓰레기통을 여는 방법도 익혔다. 발로 뚜껑을 들고, 몸무게를 실어 열어젖힌 뒤 안에 든 먹거리를 꺼내 먹는다. 이처럼 도시 공간 속에서 인간의 생활 방식과 구조물을 ‘도구처럼’ 이용하는 조류는 드물다. 그리고 그 과정은 철저히 관찰과 모방, 실패와 성공의 누적으로 이루어진다. 연구진은 이를 ‘문화적 행동 전파(cultural transmission)’라고 불렀다. 즉, 하나의 새가 새로운 행동을 시도하고 성공하면, 다른 새들이 그것을 보고 배우고, 그렇게 전 사회로 확산되는 것이다.
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담벼락 옆 작은 개울가에서 고양이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돌 위에 올라앉고, 그 뒤를 따라 강아지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발을 딛고 있었다. 마치 ‘형 따라 하기 놀이’처럼 보였던 그 장면은, 동물도 서로에게 배우며 살아가는 방식을 전달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코카투의 음수대 사용은 과학적으로는 ‘행동생태학’의 범주에 속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공존의 미학’을 일깨우는 교훈처럼 다가온다. 인간이 만든 공간 속에서 인간의 행동을 배우고 응용하며, 점차 그것을 자기 삶의 일부로 만들어 가는 동물들. 그들을 관찰하는 우리의 시선 또한 이제는 ‘관람’이 아닌 ‘교감’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코카투가 음수대 레버를 올려 마시는 물은 단순한 식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과서일 수 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 일상 속 물 한 모금. 그 뒤편에 깃든 생존의 지혜와 사회적 학습, 그리고 종(種)을 초월한 적응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 소리를 듣느냐 못 듣느냐는 결국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코카투의 입에서 흘러나온 수도꼭지 물 한 방울 속에, 어쩌면 인간 사회가 잊고 있었던 ‘배려와 공유’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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