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질랜드 로컬 아티스트들이 전한 감동의 전시

사회부 0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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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태(교육학 박사). 북경화지아대학교 국제교류처장, 기업관리대학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칼럼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그림은 내 고향 앞바다예요. 어릴 땐 늘 이곳에서 조약돌을 주웠죠. 지금은 제 아이와 함께 그 바닷가를 걷습니다.”

작가는 그림 속 푸른 해안선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전시장 한쪽 벽에 걸린 이 작은 캔버스는 누군가의 추억이자 한 마을의 풍경이었고, 관람객에게는 마음속에 오래 남을 울림이었다.


최근 뉴질랜드 남섬의 작은 도시 넬슨(Nelson)에서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Whenua & Wairua, 땅과 영혼의 이야기’라는 이름 아래, 전국 각지의 로컬 아티스트 40여 명이 모여 저마다의 삶과 감정을 작품에 담아냈다.

이 전시회는 예술 작품의 나열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공동체의 기억, 개인의 치유, 환경에 대한 고민, 그리고 세대 간의 이야기가 숨 쉬고 있었다.

작품마다 묻어나는 정성과 감정은 관람객들에게 “예술은 거창한 게 아니라 삶 그 자체”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로컬 아티스트’란 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국제적인 아트 페어나 대형 갤러리의 중심에 서진 않지만,

이들은 마을의 정취를 담고, 자연을 사랑하며, 자신의 땅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감정을 붓으로 기록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때로는 농부이기도 하고, 바닷가의 어부이기도 하며, 주말마다 붓을 드는 교사이기도 하다.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보다, 그림으로 삶을 견디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리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역 문화를 지키는 숨은 예술가들이다.


넬슨 전시회에 참가한 작가 중 한 명은 78세의 마오리 여성, 카히라 루이.

그녀는 마을의 오래된 전통 문양을 현대적 색채로 재해석한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림 옆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는 나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이야기를 물감으로 되살려 냅니다.

이것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우리 부족의 기도이자 시간입니다.”


우리는 종종 예술을 ‘세계적인 것’, ‘혁신적인 것’으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 드러난 것은, ‘로컬’이야말로 가장 진솔하고 강력한 예술의 형태라는 사실이었다.

작가들이 담아낸 풍경은 그들이 매일 걷는 거리였고, 그려 낸 인물은 이웃의 얼굴이었다.

자연의 색채는 그들이 매일 바라보는 하늘과 땅의 색이었다.

즉, 예술은 거창한 아이디어가 아닌, 일상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


이런 작품들은 보는 이의 감정을 건드린다.

“이거, 우리 마을 뒷산이랑 똑같네.”

“내가 어릴 때 엄마랑 가던 해변하고 똑같아요.”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마치 자신의 기억을 마주한 듯 그림 앞에 오래 머물렀다.


주목할 점은, 작품 수익의 일부가 청소년 정신 건강 프로그램과 지역 미술 교육 지원에 쓰인다는 점이었다.

즉, 예술이 예술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 사회 회복의 통로로 작동하고 있었다.


개막식 날, 한 마오리 학생이 무대에 올라 자신이 그린 첫 수채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말로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림을 통해선 제 안의 감정을 말할 수 있었어요.

이제 저는 제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껴요.”


그녀의 말에 장내는 조용해졌고, 이내 따뜻한 박수가 울려 퍼졌다.

그날, 누군가는 그림으로 자신을 발견했고, 누군가는 관람을 통해 오래된 슬픔을 위로받았다.


뉴질랜드 로컬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지켜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우리 동네에도,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히 그려 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유명 작가’, ‘갤러리 데뷔’, ‘해외 진출’이라는 단어들에만 집중해 왔다.

그 사이, 이름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예술은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이의 일상에 숨 쉬는 감정의 언어다.

지방 도시의 작은 미술 교실에서, 노인의 주름을 따라 붓질하는 초등학생의 손에서,

우리는 ‘로컬 예술’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감동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회 마지막 날, 한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에요.

내가 사는 마을의 기억을 잘 남기고 싶을 뿐이에요.

내 그림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불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술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살짝 밝혀 주는 작은 등불.

이번 전시회는 그런 등불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뉴질랜드의 로컬 아티스트들이 전한 감동은

화려한 기술도, 거대한 자본도 아닌,

진심과 삶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웃을 향한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전시회를 통해, 우리는 다시 묻는다.

우리 각자의 삶에도, 예술은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오늘 어떤 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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