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뮤지컬의 원작 '고독한 결단' 책 내용, 우상화를 위한 밑작업인가?<한국유통신문.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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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KTN) 김도형 기자= 지난 4월 26일 구미참여연대에서는 『구미시는 ‘박정희 뮤지컬’ 제작 계획을 전면 취소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구미참여연대는 구미시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단독으로 결정해 세금 28억원을 들여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미화와 우상화를 하려 한다는 의도라며 우려스럽다는 말과 함께 '박정희 100주년 기념사업'을 전체적으로 재검토 및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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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청 게시판에서 구미시민 K씨는 "방금 기사보고 어이가 없어서 글 적습니다. 박정희 탄신제도 모자라 이젠 뮤지컬까지? 어디가서 구미 산다고 부끄러워 말을 못하겠음, 그 돈들로 시민복지를 위해 좀 쓰면 안될까? 시민들 세금으로 뭐하자는겨?"라는 글을 올리며 박정희 뮤지컬의 부당성을 지적했고, 또다른 시민은 "놀랍고도 놀랍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것도 있구나 싶습니다. 북쪽에 이어 남쪽에도 신을 만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박정희 탄신제도 모자라 이젠 뮤지컬까지?"라며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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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뮤지컬의 원제는 '고독한 결단'으로 2013년 6월 15일 출간된 최정수 작가의 책을 토대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 최정수는 고독한 결단을 집필한 이유에 대해 "국민소득 82달러 시대에 살았고, 겨울의 혹한기보다 더 춥고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기나긴 '보릿고개'를 경험한 필자"라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올바르게 재평가하자는 의미에서 혁명를 추진하는 과정을 재조명했다고 한다.

 

충남 논산 출생으로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 최정수씨는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후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수료했다.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ROTC 8기 육군 중위로 제대, 1987년 동경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을 시작으로 동경 한국대사관 참사관, 요코하마 한국총영사관 영사관을 2004년 4월까지 역임했다. 오랜 공직생활로 투철한 애국심이 몸에 배여 있는 인물임을 짐작케하며 일본에 오랫동안 거주, 일본문화와 역사에 정통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독한 결단의 저자 최정수씨는 현재 말사랑승마동호회 회장 및 한국패러글라이딩학교 학교장, 스킨스쿠버 제로 존 고문을 맡고 있는 등 레저스포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문화해설사 자원봉사로 다양한 사회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인물이다.

 

고독한 결단은 저자가 나름의 역사관을 갖고 심혈을 기울여 박정희 대통령을 재조명하려는 의지로 집필했다고 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반론도 재기 될 수 있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5.16군사 혁명은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장면이라며 출판사는 서평하고 있다.

 

격동의 시대에 일어난 5.16 군사혁명은 국민소득 82달러 시대에 산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서 겨울의 매서운 추위보다도 춥고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기나긴 '보릿고개'를 없앤 박정희 대통령의 공로가 위대해 보일 수 밖에 없는 시대적인 상황이었을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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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결단'을 출판한 한솜미디어 출판사 서평에 따르면 5.16군사혁명이 아프리카나 남미 등에서 유행했던 쿠데타나 정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혁명이었고 박 대통령의 투철한 역사관과 예리한 통찰력과 통솔력 그리고 민족의 앞날을 생각한 위대한 지도자임을 부각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로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에 "모든 국민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과 민족의 혼과 정신이 혼합된 국민혁명으로 볼 수 있다"며 확장해석하고 있어 보인다. 또한 출판사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의 영광스러운 호응과 염원을 바탕으로 "훌륭한 지도자의 부단한 자기 노력과 성찰, 그리고 그분의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 즉 많은 고뇌와 투쟁이 있어야만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며 서평이라기 보다는 사설에 가까운 내용을 늘어 놓았다.

 

압권인 것은 출판사 서평에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5.16혁명』이라는 문구가 아연질색하게 만든다. 미합중국 대통령 링컨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서평은 비록 군인들이 거사를 일으켰지만 투철한 역사관과 예리한 통찰력과 통솔력을 지닌 예지력 있는 지도자이자 혁명가 없이는 혁명이 성공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목숨을 건 거사에 대해 전 국민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과 혼과 정신이 혼합된 국민혁명임을 또 한 번 억지 주입시키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인해 국가공단이 들어섰고 그로 인해 장족의 발전을 해 온 도시임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내륙 깊숙한 곳에 공단이 들어선다는 것은 한시적인 정책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구미공단으로 인해 그나마 내륙지방도 살만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78년도에 출범한 구미시는 당시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로 하는 구미시청이 개청했고 당시 면적 129 평방 킬로미터에 인구는 10만이 채 안된 7만 2천여명이었다. 또한 시청 직원은 487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구미시는 2016년 3월 기준 인구 42만여 명, 시청 직원 또한 1600여 명에 달하는 지방 중견 도시로 성장했다.

 

젊은 도시를 표방하는 구미시는 토박이 인구보다 외지인의 인구가 월등히 능가하며 시민의식의 결속 여하에 따라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성장가능성이 풍부한 도시기도 하다. 반면에 구미시는 성장가도를 달려오던 반도체 산업의 쇠퇴로 인해 일순간에 반토막 날 수 있는 도시라는 우려 또한 심심찮게 지역사회를 흔드는 과도기에 있는 시점이다.

 

먹고사는 것이 화두였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견주어 경제성장의 벽에 부딪혀 난관을 겪고 있는 지금의 현실 또한 먹고사는 문제에 봉착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 비슷할 다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7년이면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어서 구미시는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무엇인가를 해야만 될 처지에 놓여있다. 현 정권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100주년 기념사업을 없던 것으로 유야무야 넘어가기에는 이미 많은 사업들이 진행돼 왔다.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 근대화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인물에 대해 초라하게 100주년을 넘기는 것 또한 지역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타지역에서 지탄을 하며 언론지상에서 조차 하나같이 잘못을 탓하는 현 상황에서 '박정희 뮤지컬'을 옹호 했다가는 도매급으로 욕을 얻어 먹는 것이 현실이어서 찬성보다는 반대편에 서서 조용히 사는 것을 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반대에 앞서 박정희 뮤지컬의 문제점인 '미화'와 '우상화'는 완곡하게 배제해야 할 것이며, 있는 사실 그대로의 인간 박정희를 뮤지컬로 만들라는 대안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들의 의견은 인색해 보인다.

 

'실과 과'가 극명하게 갈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난 일대기를 가감없이 뮤지컬로 제작해 올리며 우리네 근대역사의 안타까웠던 사실들을 가슴으로 떠안을 수 있는 화합의 장으로 만들 계획은 왜 안하는 것인가?

 

뮤지컬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으로 인해 억울한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에게 사죄의 말도 알림과 동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 당시 이뤘던 성과도 제대로 알려야만 하는 것이 '박정희 뮤지컬'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본다.

 

인간 박정희 일대기

 

1917년 11월 14일 경북 구미에서 아버지 박성빈과 어머니 백남의 사이에서 태어난 박정희는 유년기에는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수학했고 구미공립보통학교에 다닌 후에도 일요일이면 교회와 더불어 서당에 가 한문을 배웠다.

 

조선 말 효력부위를 지낸 부친 박성빈 옹은 동학 접주 출신으로 당국에 요주 인물로 연좌돼 생계를 꾸려갈 형편은 아니었고 둘째 형 박무희와 셋째 형 박상희가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형 박무희는 장택상의 부친인 칠곡군의 갑부 장승원의 소작농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이유로 장택상은 이를 정쟁의 도구로 이용해 박정희를 공격했던 사실이 있고, 이로 인해 지역의 명문가문인 인동장씨이자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과 박정희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있었다.

 

일제당시 구미공립보통학교 시절 박정희는 교칙에 따라 1등이 급장을 맡는 제도로 인해 줄곳 급장을 도맡았다. 우수한 성적과 더불어 조리 있는 발표력, 예민한 사고력, 탁월한 통솔력 등으로 학우를 잘 지도했고 박정희에게 맞아 보지 않은 학생들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어릴적 인성 형성에 영향을 끼친 책으로는 나폴레옹과 이순신의 위인전이었으며 소년시절 박정희는 군인을 동경했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의 박정희는 도시락을 싸갈 수 없을 때가 많아 한약방을 하는 부친을 둔 급우 이준상과 친하게 지낸 이후로 도시락이 없을 때면 이준상의 집에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 친구 이준상은 부친이 돌아가신 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졌고 병을 얻어 다리를 절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박정희는 1963년 10월 15일 선거에서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고향을 찾았고 환영 인파 속에 친구 이준상을 제일 먼저 찾아 자신의 생가로 함께 이동했다고 하며 이 후 이준상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재차 도움을 줬다.

 

한편 박정희는 1932년 당시 윤봉길 의사의 중국 상하이 폭탄 의거와 이봉창 의사의 일본 동경 폭탄 의거를 비롯해 한중연합군과 일본군이 제1차 쌍성보 전투를 벌였던 항일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입학정원 100명인 대구사범학교에 51등으로 합격해 진학했고 대구 시내의 기숙사에서 등하교를 했다.

 

대구사범학교 5년 중 3년간의 성적은 하위권이었으나 군사와 체육 관련 교과목의 성적은 뛰어났다고 한다. 대구사범학교 시절 박정희의 성적표는 집권 기간에는 공개가 금지되기도 했다.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3년간 교사로 재직하며 한국인 교사 차별 대우로 인해 일본인 교장과 갈등을 겪고 일본인 교사들로부터 집단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박정희는 만주국육군군관학교인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재차 일본 육사 57기로 입학한 뒤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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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1944년 말부터 1945년 8월 해방까지 10개월간 만주국 육군 제8단에서 만주국 장교로 근무했다. 1946년 7월 귀국한 그는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변신해 남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이후 여수순천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육군본부 정보국장인 백선엽에게 남조선로동당에 관한 사실을 증언해 사형을 면하는 등 풍전등화에 놓인 운명의 갈림길에서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한국 전쟁 발발 후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참전한 이후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5.16군사 정변을 주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거쳐 대한민국 대통령을 제5대에서 제9대까지 장기집권 하며 3선 개헌과 유신헌법 등 장기집권에 반대하던 야당 과 학생운동가, 민주화 인사들을 끊임없이 탄압해 박정희는 현재까지도 민주화 세력들의 성토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오랜 역사속의 인물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박정희 대통령은 현재 자신의 고향에서는 반신반인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반면에 타지역에서는 도리어 '반신반인'이라는 말자체에 담긴 우상숭배 관념으로 인해 지식인들 사이에서 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극명한 양날로 평가되고 있다. 예로 전쟁과 가난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을 재건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는 평가와 새마을 운동의 보급으로 농촌 경제 발전을 높이 평가 하고 있으며, 반면에 10월 유신으로 인한 헌정 파괴와 군사독재로 인한 민주주의의 후퇴는 오늘날까지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의 중심에 있다.


구미참여연대 성명서

 

구미시가 2017년 100년이 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일을 기념하여 대대적인 기념사업(이하 ‘100주년 기념사업’)을 펼치기로 하고, 그 핵심 사업으로 창작 뮤지컬 ‘고독한 결단(가칭)’(이하 ‘박정희 뮤지컬’)을 시비 28억 원을 들여 제작할 계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구미참여연대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100주년 기념사업’의 축소와 ‘박정희 뮤지컬‘ 제작 계획의 전면 취소를 요구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인 ‘미화’와 ‘우상화’가 매우 우려스럽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임기 중에 실시되는 ‘100주년 기념사업’과 ‘박정희 뮤지컬’은 일방적인 ‘미화’와 ‘우상화’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인사청문 대상자들이 ‘516이 쿠테타냐, 아니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인 모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직도 살아있는 권력이며,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비판이 매우 힘든 상황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구미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으로 하늘이 내렸다”고 하여 ‘우상화’의 극단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유신시대의 인권침해와 관련한 판결들이 지금도 계속 뒤집히고 있는 상황이고, 피해자들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100주년 기념사업’은 시민들과 국민들의 정서와 맞지 않은 일임을 구미시는 깨달아야 한다.

사업의 규모가 너무 과도하고, 시에 엄청난 재정적 부담이 될 것이다.
구미시는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 ▷국제학술대회 ▷뮤지컬 공연 ▷사진 전시회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기념주화 발행 ▷근대화세대 인물 초청 구미투어 ▷불꽃 축제 ▷휘호집과 근대화 관련 책자 발간 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필요한 예산은 뮤지컬 제작에만 약 30억 원이 책정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40억 원 가까운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구미시는 이를 추진하기 위해 별도의 TF팀까지 구성한 상황이다. 더구나 이미 구미시는 박정희 생가 공원화 사업과 새마을 테마파크 사업에 1,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새마을 테마파크’와 ‘생가 주변 시설’에 대한 유지와 관리 예산만 해도 한해 수십 억이 필요한 상황에서 1회성 행사에 4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붓는 일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나 효과가 전혀 없다.
구미시는 이번 사업의 기대 효과로 ‘국가적 행사 개최로 대통령 고향 도시 구미의 위상 제고’,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관내 다양한 문화자원과의 연계를 통한 관광 활성화’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구미시의 구차한 논리일 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우상화는 대부분의 국민들로부터 비웃음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 ‘새마을 테마 파크’와 ‘박정희 생가 주변 시설’ 유지·관리와 관련한 예산 부담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 아닌가?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예고되고, 그에 따른 가계부채의 증가로 서민들은 한숨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구미시의 ‘박정희 마케팅’은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전형적인 밀실 행정, 비공개 행정의 표본 사업이다.
구미시는 최근 구미참여연대가 정보공개 요구한 ‘창작 뮤지컬 제작 계획’에 대해 공개를 거부하였다. 이미 지난 1월 시장의 결재까지 난 ‘박정희 뮤지컬 제작 계획’을 비공개한 것은 시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사업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구미참여연대가 지난 4월 22일부터 시민들에게 ‘박정희 뮤지컬’에 대한 시민들의 의사를 물은 결과 80% 이상의 시민들이 이에 제작반대 의견을 표명하였다.
시민들의 의견수렴 없이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여 추진되는 ‘100주년 기념사업’과 ‘창작 뮤지컬’ 제작은 ‘박정희 마케팅’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의 사익을 대변한 사업일 뿐이다.

이에 구미참여연대는 구미시가 ‘100주년 기념사업’과 ‘창작 뮤지컬’에 대한 시민들의 의사를 묻고, 시대와 지역의 정서에 맞는 사업을 추진할 것을 강력 요구한다.
구미참여연대는 구미시의 태도가 바뀔 때까지 시민들에게 이 사업의 무리함과 불순한 의도를 알려나갈 것이다.


2016년 4월 26일

구/미/참/여/연/대

 

 

<한국유통신문 경북본부장 김도형 flower_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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