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만수 경제부칼럼위원/경영학박사
최근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대위변제율이 2024년 5.66%라는 역대급 고점을 찍은 이후, 현재까지도 4~5%대의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공적 보증 생태계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사수하기 위해 2030년까지 대위변제율을 3.2%로 낮추고, 그간 자금 수혈의 핵심 통로였던 100% 전액보증을 원칙적으로 전면 금지하는 고강도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거시적인 건전성을 쫓다 자칫 영세 소상공인과 금융이력 부족자(씬파일러)들의 돈줄마저 싹둑 잘려나갈 수 있다는 현장의 우려가 팽배하다.
이러한 정책적 딜레마의 근본적인 원인은 낡은 ‘전통적 신용평가’ 시스템에 있다. 현재의 신용평가는 개인사업자의 실제 영업 역량이나 상권의 유망함보다는, 대표자 개인의 과거 연체 이력이나 대출 규모 등 제한적인 금융 정보에만 얽매여 있다. 장사가 잘되고 미래 성장성이 뚜렷한 혁신 점포라 할지라도, 과거의 금융 거래 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인 하위 등급을 받아 고금리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것이 현주소다.
이를 타파하고 진정한 금융 포용을 실현할 열쇠는 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AI) 보증심사’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그 중심에는 하루 600억 건의 데이터와 12만 개의 복잡한 태스크를 거뜬히 분산 처리할 수 있는 초거대 빅데이터 인프라, ‘KDAP(Korea Data AI Platform)’이 있다.
이 압도적인 KDAP 플랫폼을 활용하면 각 기관에 파편화된 공공요금 납부 내역, 통신료, 상권 트래픽 등 비금융 데이터를 하나의 거대한 허브로 통합할 수 있다. 여기에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SCB) 모형을 얹어 40여 개의 변수를 다각도로 분석하면, 과거의 빚 상환 이력이 아닌 ‘미래의 성장 잠재력’을 짚어낼 수 있다. 심사역의 주관적 편견을 배제하고, AI가 옥석을 가려내 제도권 금융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소외계층 약 10%를 우량 등급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혁신적인 대안이다.
물론 고도화된 AI가 가져올 ‘블랙박스’ 현상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복잡한 알고리즘이 의도치 않게 특정 상권이나 영세 업종을 차별하여 대출을 거절한다면 소외계층은 이유도 모른 채 두 번 울게 된다. 따라서 알고리즘의 판단 과정을 투명하게 시각화하여 대출 심사 결과의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는 설명가능한 인공지능(XAI) 기술의 결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이처럼 정교한 기술적 혁신도 뿔뿔이 흩어진 현행 제도의 틀 안에서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보증기관들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덩치를 키웠으나, 기관마다 회계기준과 리스크 관리 기법이 제각각이다. 심지어 보증 고유의 특성 대신 낡은 보험 이론을 억지로 차용하며 산업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기술적 혁신을 현장에 안착시키고 제도적 불확실성을 거둬낼 구심점, 즉 ‘한국보증협회(KGA)’의 설립이 시급하다. 보증이라는 금융 행위를 독자적인 학문(보증학)으로 정립하고, 파편화된 기준을 통일하며, KDAP 기반의 AI 심사 가이드라인을 감독할 산업 전체의 대변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단기적인 금리 인하나 땜질식 한도 증액으로 소상공인을 연명하게 하던 시대는 지났다. 강력한 데이터 인프라(KDAP)와 투명한 AI 심사 기술(XAI), 그리고 이를 체계적으로 지휘할 컨트롤타워(한국보증협회)가 완벽한 삼각편대를 이룰 때, 대한민국은 소외계층의 경제적 자립을 이끄는 진정한 디지털 금융 강국으로 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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