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추념식 거행, 2019년 3.1절 백주년 맞이해 기념관 사업 및 생가 복원 기대!

선비 0 5,906

(전국= KTN) 김도형 기자= 3.1절을 맞이해 구미 금오산 백운교 앞에서는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추념식이 거행됐다.

 

이날 이묵 구미시장 대행을 비롯해 국회의원과 각 기관단체장 및 시민단체가 참석해 박희광 선생을 추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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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선산 출신인 박희광 선생은 박윤하(朴胤夏)의 아들로 부친을 따라 1912년 만주로 건너가 1919년 18세에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입대하여, 제5중대에 배속되어 특공대원으로 활약하면서 민족반역자 정갑주와 그이 처자를 총살하고, 이등박문의 수양녀인 요화 배정자와 매국단체인 일진회의 이용구, 최정규의 암살을 시도하는 등 용맹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또 봉천성(奉天省)에는 일제의 앞잡이 단체인 보민회(保民會)와 일민단(日民團) 등이 독립운동을 방해하고 동포들의 단합을 해치고 있었으며 대한통의부의 명령에 따라 박희광 선생은 삼장사라 불리운 김광추(金光秋)·김병현(金炳賢)과 함께 이들의 숙청작업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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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광 선생은 1924년 6월 만주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일제 앞잡이였던 보민회장 최정규(崔晶奎)의 집을 습격, 그의 장모와 서기 박원식(朴原植)을 사살했으며 동년 7월 23일 군자금 모금을 위해 일본인 요정 금정관에 침입해 거금의 군자금을 확보해 나오다 출동한 중국경찰에 피체되어 일본경찰로 인도됐다.

 

관동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박희광 선생은 미성년자여서 여순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여순감옥에서 18년간 복역한 뒤 1943년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박희광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박희광 선생 기념사업회 박정용 사무처장은 2018년도 포부와 계획에 대해서는 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내년이면 박희광 선생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게 된다 "며 2019년도 3.1절은 백주년이 되는 해여서 기념사업이 잘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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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박정용 사무처장은 "구미시민이나 구미시청, 당국에서 협조를 해주셔서 현재 경주공파에서 땅을 얻어놓은 생가터에 기념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많이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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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광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찾은 국민탤런트 심양홍 선생과 기념사진 

 

<한국유통신문 영남총괄본부장, KTN한국유통신문 인터넷 신문 발행인 김도형> flower_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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