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 없는 왼발박사, 폭염 속 DMZ 510㎞ 종주 사투”…잡초에 묻힌 ‘평화의 길’ 관리 실태 논란
소똥령·진부령 구간 이정표 부족…도보단 “칡덩굴과 잡초로 통행 어려워”
한국관광공사 협조 거절 주장도…고성군은 장소·식사·홍보 지원
[한국유통신문= 김도형 기자] 양팔과 오른쪽 다리가 없는 중증장애인으로 지난 6월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등정에 성공해 감동을 전한 ‘왼발박사’ 이범식 박사가 이번에는 강원도 고성에서 경기도 강화도까지 이어지는 ‘DMZ 평화의 길’ 종주에 나섰다.
도보단에 따르면 이범식 박사와 최성덕 단장을 비롯한 단원 24명은 남북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총 510㎞에 이르는 대장정에 돌입했다. 도보단은 이번 도전이 중증장애인의 DMZ 평화의 길 전 구간 종주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앞서 2024년 서울 광화문에서 경북 경산까지 460㎞, 2025년 광주에서 경주까지 400㎞를 걸어서 완주한 바 있다. 이번 도전은 신체적 한계를 넘어 분단의 길을 평화와 희망의 길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러나 도보단이 대장정 과정에서 마주한 DMZ 평화의 길 관리 상태는 기대와 크게 달랐다는 주장이다.
도보단 측은 일부 구간에서 갈림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고, 길 주변에는 칡덩굴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통행이 어려운 곳도 있었다고 밝혔다.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확인할 수 있는 안내판도 부족해 대원들이 나뭇가지 등에 매달린 낡은 리본을 따라 이동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강원도 인제와 고성을 잇는 소똥령과 진부령 일대에서는 평화의 길을 안내하는 표식을 찾기 어려워, 대원들이 폭염 속에서 길을 헤매는 상황까지 발생했다고 도보단은 전했다.
최성덕 도보단장은 “평화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방향을 찾지 못해 진땀을 흘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도보객들에게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이어 “속된 표현으로 현장 상황은 ‘개판’이라고 할 정도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가슴에 천불이 난다. 관계자들이 세계적인 순례길의 관리 실태를 직접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도보단 관계자들도 “길이 잡초와 칡덩굴로 가로막힌 모습을 보면서 이곳이 평화를 염원하며 걷는 ‘평화의 길’인지, 분단의 장벽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절망의 길’인지 알 수 없었다”며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관리와 정비를 촉구했다.
도보단 측은 세계적인 순례길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비교할 때 DMZ 평화의 길의 안내 체계와 보행 환경이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가진 역사성과 상징성을 관광·평화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정표 설치와 정기적인 제초 작업, 위험 구간 정비, 장애인 이동권을 고려한 보행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관광공사 협조 거절 주장…공사 측 입장 확인 필요
도보단은 이범식 박사의 종주 도전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한국관광공사에 홍보와 협조를 요청했지만, 공사 측으로부터 “사업 방향이나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최 단장은 “중증장애인이 분단의 현장을 직접 걸으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은 세계적으로도 충분한 상징성을 가질 수 있다”며 “이를 기록하고 홍보한다면 DMZ 평화의 길을 산티아고 순례길에 버금가는 평화의 명소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도 관련 기관이 사업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했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국민 세금으로 추진되는 관광사업이 현장의 의미 있는 도전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국관광공사가 실제로 어떤 방식의 협조 요청을 받았는지, 거절 사유와 DMZ 평화의 길 관리 책임이 어느 기관에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공사와 관계 기관의 공식적인 입장 확인이 필요하다.
고성군청, 회의실·식사·홍보 지원…도보단 “현장 중심 행정”
반면 종주 출발지인 강원도 고성군의 지원은 도보단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도보단에 따르면 고성군은 폭염 속에서 종주를 준비하는 단원 24명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하고, 군청 내 회의실을 출정식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군수가 외부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는 관광개발국장이 직접 도보단을 맞아 일정 구간을 함께 걸으며 배웅한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 보도와 대외 홍보를 위한 행정적 지원도 이뤄졌다고 도보단 측은 설명했다.
최 단장은 “고성군청이 보여준 현장 중심의 행정은 지방자치단체가 종주 참가자와 방문객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례”라며 “앞으로 평화의 길이 통과하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안전한 보행 환경 조성과 종주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도보단 “전 구간 관리 실태 담은 백서 발간”
도보단은 이번 종주가 마무리되면 전 구간에서 확인한 이정표와 안내판 설치 상태, 제초와 노면 관리 실태, 위험 구간, 편의시설과 장애인 접근성 등을 기록한 백서를 제작해 공개할 계획이다.
백서를 토대로 정부와 관계 지방자치단체, 관광기관에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DMZ 평화의 길을 누구나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국가적 평화·관광 자원으로 정비해 달라고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도보단 관계자는 “이번 종주는 단순히 한 사람의 극한 도전을 알리는 행사가 아니다”라며 “분단의 길을 평화의 길로, 신체적 한계의 길을 희망과 포용의 길로 바꾸자는 메시지를 국민과 세계에 전달하는 여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범식 박사와 도보단의 폭염 속 종주가 DMZ 평화의 길 관리 실태를 공론화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안전한 평화 순례길 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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