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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정사

토마스 0 2159

 

(전국=YTN) 이용범 기자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 연화산 아래에는 와우정사((臥牛精舍))라는 가 볼 만한 이색사찰이 하나 있다. 1970년 조성된 이 사찰에는 사찰의 이름이 말해주듯 길이 12m, 높이 3m열반전에 누워 계신세계 최대의 목불상 와불이 조성되어 있고, 또 하나 높이8m로 실제 부처님의 100배 크기에 달한다는 불두가 있어 내방하는 객의 시선을우선적으로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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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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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조와불 

 

목조 와불과 불두를 제외하고도 이 사찰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이곳이 사찰인지아니면 유물 전시장인지 착각할 정도로 국내 최고의 불교 무형문화재들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다. 게다가와우정사의 세계불교 박물관에는 3,000여 점의 불교 유물을 보유하고 있어 해마다 수십만명의 세계 각국의 불자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가히 불교예술 성지라 할 수 있는 이곳은 건축물과 조형물들이자연과 조화로운 구도 속에 아름답게 어우러져 예술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 듯하는 착각하게 한다.

  

특히, '입체로 보는 한국의 석탑'이란 책을 발간한 적이 있는 필자의 눈을 끄는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돌 하나하나를 씻어 정성을 다해 쌓아올렸다는 7층 석탑으로 이 석탑은 한국의 전통 석탑 양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혹시 인도나 태국에서 원형을 가져오지는 않았느냐?”라는 필자의 질문에 "이 탑은 순수한 우리 탑이다. 신라나 고려시대가 아닌 이 시대의 우리 탑으로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정성껏 쌓았다라고 이 사찰의 창건주해곡 스님은 말한다. 사찰을 조성하며 들인 정성스러운 불심과 천재적인 감각을 보여 주는 단편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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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층 석탑 

 

이곳, 와우정사를 오늘날의대사찰로 일구어 낸 장본인은 해곡 스님이다.곡스님은 함경북도 나진 출신으로 해방과 동시에 부산에 정착했으며, 9살에 해운사 연 고암스님의 제자로 출가하였다. 고암 스님은 독립운동33인 대표 중 한 분인 백용성 스님의 상좌 스님이며, 해곡 스님은고암 스님의 상좌 스님이다.

 

해곡 스님은 고암 큰 스님을 모시면서 1962년 조계종이만들어질 때 조계종 기획부장을 맡았으며, 1972년에는 조계종 제1교구본사인 조계사 담임 상임 법사로 추대되었다. 또한 1975년부처님 오신 날인 초파일(初八日)을 공휴일로 지정했으며, 이때부터 삼국유사, 동국세시기 등의 고증을 통해 고려 연등회에 사용된 32개 등 중 고증된 30개의 등을 재현하기도 했다.

 

해곡 스님이 와우정사 불사를 일으킬 수 있었는데 건어물, 간장밀가루 등 대형 유통 사업을 했던 부유한 부친의 덕이 크다. 또한 중요무형문화재 장인들의 도움도 컸다. 특히 향나무를 통으로 조각해 만든 12 X m의 세계 최대 목조와불과 그리고 앞으로 와불과 같이 모셔질 가섭존자와 아란존자 그리고 우바리존자 등 세 분의 조각은 목불 조각화예술장 1호인 허길량 목조각장이 맡아 완성하였다 세 분의 존자 조각에는 나무를 구하는 데에 만 수년이 걸린 1,000년 된 춘양목 소나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해곡 스님이 평생의 혼을 바쳐 와우정사를 최고의 불교문화예술의 성지로 만들고자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이다. 함경북도 출신의 실학민으로서 온 국민이 어우러진 통일된 나라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 뿌리를 불교문화가 찬란했던 신라와 백제에 두고 와주정사를 불교문화 예술의 성지로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우리의 불교문화 보물들이 외국에 너무 많이 나가 있다는데 있다. 해곡 스님은고려불화의 대부분은일본에 있고. 또 삼국시대고려시대 범종도 상당수가 일본에 있는 등 상당수의 불교 유산이 외국에있어 그 수조차 가름하기 힘들다라고 말하며 "경전을 공부하다 보면세계 각국의 성보를 공부해야 하는데 자료가 있어야 공부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수집과 재현에났다고 한다.

 

와우정사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태국, 미얀마, 베트남, 중국, 라오스 등 매년 30-40만 명이 다녀간다. 국내 관광객도 수없이 다녀간다고 한다. 아마도 해곡 스님의불교문화 성지에 대한 열정과 또 타고난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콜롬비아 대학교 교수이자 동양 미술사의 권위자인 존 카터 코벨 박사와우정사를 들러 보고 해국스님을 현대의 김대성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불국사를지은 김대성처럼,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처럼 외우정사를 조성한 해곡스님 역시 티 고난 미적 감각과 조형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올해 와우정사는 창건 52주년을맞는다. 1970와우정사를 조성하기 시작했지만 설계도면이 없다. "가우디처럼 모든 게 마음속에 있다"라고 말하는 혜곡 스님은 “성보는 성직자의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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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건주 해곡스님 

 

 팔순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해곡스님와우정사를최고의 불교예술문화 성지로 만들겠다는 열정은 어느 청년 못지않다. 앞으로 일주문, 사천왕상 등의 불사 계획을 마음에 두고 있고, 세계불교테마파크조성이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또한 스님은 세계 각국의 부처와 불교 예술품들도 꾸준히 수집하면서와우정사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불교예술 문화 성지로 거듭나기 위해 혼신을 힘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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