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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문충공파 청.장년회 창립을 위한 준비모임, 학봉의 선명한 역사적 발자취 재인식

김도형 0 2897

학봉종가 500년 역사 전통을 잇기 위한 뜻깊은 자리

전국 각지에서 모인 후손들 학봉 김성일의 업적 되새겨

일제식민사학에서 시작된 잘못 알려진 '김성일 보고(報告)' 역사 인식 바로 잡는 계기 마련

 

(전국= KTN) 김도형 기자= 28일 오후 4시부터 2일간 일정으로 안동시 송현동에 위치한 임천서원 홍교당에서 '가칭)의성김씨 문충공파 청.장년회' 창립을 위한 준비모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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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모임은 금년 추계 문충공파 청.장년회 창립총회 준비를 위해 전국 각 지역별로 균등하게 참여했다.

 

본 모임은 문충공파 전국 청.장년회 족친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문중내 연례행사인 불천위 제사를 비롯해 한식성묘, 선조 묘사, 각 지역 척사대회 및 정기 친목회와 현재 진행중인 임란역사문화공원, 학봉선조 영정제작과 학술대회 등의 잡무참여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동참의 필요성에 의해 시작됐으며, 청.장년층의 구심점을 만들어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목적이 있다.

 

더불어 젊은 후손들의 문중사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식을 끌어내기 위한 동기부여 차원의 성격도 강해 주옥같은 문중사에 대한 특강과 토론 또한 진중하게 진행됐다. 참고로 의성김씨 문충공파에서는 학봉 김성일 선생을 '학봉할배'라고 부른다. 

 

의성김씨 문충공파 재수 족친의 사회로 시작된 행사는 제덕 족친의 학봉할배 위폐가 모셔진 숭정사 알묘와 임천서원에 대한 설명으로 학봉 김성일 선생의 역사적 발자취를 더듬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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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사 알묘 후 종덕 족친(영주)의 청.장년회 모임 개요 설명과 함께 참여족친 소개 후 특강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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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공파 청.장년회 창립 준비모임의 취지를 설명하는 종덕 족친

 

첫번째 특강은 양동아재 종성 족친의 학봉가에 대한 장고한 연구가 이뤄낸 '학봉종가 500년' 역사 강연이었으며 시대마다 족적을 남긴 문중역사를 되돌아 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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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시철 족친의 '퇴계선생제김사순병명'에 대한 강연 후 종협 족친의 학봉기념사업회의 지난 성과와 추후 사업 추진을 위한 설명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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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자유토론을 통해 문충공파의 전통 잇기와 향후 과제와 발전방안 등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어져 족친들간의 끈끈한 혈연을 느끼게 만들었으며, 참석한 문중 어르신(용수,교환, 중원, 오섭, 규업)들의 격려와 덕담을 듣는 자리도 마련됐다.  오섭할배(영주)는 "임천서원이 복설된 이후 처음으로 강학의 기능이 부활된것 같아서 오늘의 이자리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라는 말로 특강의 가치에 대해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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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공파 청.장년회 신임회장으로 종덕 족친이 추대됐으며 회를 운영하는 총무와 각 지역별로 간사를 두어 지역별 청장년의 주소록을 수집하기로 했다.

 

임천서원에서 잠을 청한 족친들은 다음 날 서원 행례 설명을 들은 뒤 임란역사문화공원 현장답사 및 학봉종택 방문을 통해 김종길 종부와의 소통의 시간을 가졌으며 학봉 유물관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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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종택 김종길 종손과 기념 촬영(사진 김재수 족친 촬영)

 

이번 의성김씨 문충공파 청.장년회 창립 준비모임에서 진행된 '학봉종가 500년' 강연에서 '서산 김흥락 선생의 학문.사상과 서산학파' 학술대회가 지난 2016년 11월 30일 한국국학진흥원 주관으로 학술대회가 개최된 사실이 소개됨으로서 학자들이 인정하는 서산학파가 한국학에 영향을 끼친 기여도가 큰 점과 관련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서산학파'에 대한 연구지원이 있어야한다는 중지도 모아졌다.

 

서산 김흥락은 학봉 김성일의 12세 종손으로 조선말 영남유림의 대표적 상징인물로 추앙을 받았다. 56세에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으나 불부, 다시 68세에 승문원 우부승지와 영해부사에 임명됐으나 사직했다. 서산의 학문적 경향은 오직 경에 있었다고 하며 의병장 척암 김도화와 함께 조선말 퇴계학통 계승의 적장자로 인식됐다. 서산의 문하생은 보인계안에 모두 707명이 등재되어 있으며 성재 권상익, 심재 조긍섭, 정산 김동진, 향산 이만도, 수산 김병종, 공산 송준필, 장암 김시락, 구산 백남숙, 졸수재 류정호, 석주 이상룡, 기암 이중업, 경암 백규 등이 대표적 계승자로 알려져 있다.


서산 선생의 사후 장례 당시에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이 6,000명이 넘었다는 일화가 있으리 만치 유림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으며 만사.제문이 15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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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족친, 조선일보의 잘못된 칼럼 바로 잡아 학봉 김성일 선생의 업적 되새겨

 

더불어 이날 문충공파 청.장년회 창립 준비모임에서 참으로 뜻 깊었던 것은 김도현 족친이 조선일보 2018년 3월 7일자에 게재된 선우정 칼럼의 '잘못된 보고가 나라를 그르쳤다'에서 학봉 김성일 선생에 대한 글 중 호도된 부분을 바로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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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특사단의 부사로 참여한 학봉 김성일이다. 그에 대한 문책은 당대로 끝나지 않았다. 정세를 오판한 무능력자로 지금까지 손가락질을 받는다."라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 지난 3월 16일 김도현 족친은 학봉의 후손과 그 학맥을 이어온 여러 인사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므로 조속히 정정하기를 촉구함으로서, 결국 조선일보는 게제된 칼럼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덧붙여 정정했다.    

 

※칼럼이 나간 후 학봉의 15대손인 김도현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글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학봉에 대한 비판과 문장 표현이 학봉의 후손과 그의 학맥을 이른 인사들의 명예에 상처를 입혔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필자는 그런 의도가 없었습니다. 다만 몇몇 표현, 예들 들어 ‘손가락질 받는다’ 등의 문장은 지나쳤다고 판단해 수정했습니다. 글에도 담겨 있지만 학봉 김성일은 조선의 대표적 충신이자 학자입니다. 거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짧은 글로 선생의 전체 업적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김도현 선생님이 보내주신 긴 편지의 요지입니다.-조선일보 선우정 칼럼 내용 중-

 

도현 족친은 학봉 선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 근거를 대며 선우정 사회부장의 잘못된 역사적 인식에 대해 반박했다.

 

1. 김성일은 황윤길이 말한 전쟁발발의 근거와 발발시간이 임박했다는 정황을 못 보았다고 체험한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2. 김성일은 전쟁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실 보고가 아닌 의견입니다.

3. 실제로 통신사의 일본 체류기간에는 침략 준비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통신사가 이를 관찰할 수 없었습니다. 부사는 못 본 것을 못 보았다고 진실을 보고했습니다.

4. 부사(김성일)는 동요하는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실을 말했습니다.

5. 보고는 전쟁 대비 여부를 결정한 최종보고가 아니었습니다. 부사의 보고로 대비를 안 한 것이 아닙니다.

6. 조선도 나름대로 대비했습니다. 초기 패전은 군사력 격차 때문입니다.

7. 부사는 객관적 구체적 보고를 했고 정사는 주관적 의견을 말했습니다.

8. 보고의 차이를 당쟁과 결부시킨 것은 일제식민사학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근거 없는 학설 아닌 무(속일 무)설입니다.

9. 통신사 파견은 풍신수길이 대마도에 조선왕 내조를 강박한 것을 대마도가 일본신왕축하사절 요청으로 바꾼 대마도의 속임수 외교의 간청에 응하여 결정되었고 정세탐색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10. 선조와 조정은 패전 책임의 희생양으로 ‘김성일 보고’를 삼았습니다. 김성일은 안일한 평화론자가 아니었습니다.

11.국정책임자와 국민은 '희생양 사냥'이 아닌 국력과 군사력에 안보의 기초를 찾아야 합니다.

12.세상은 김성일을 부장님과 달리 봅니다.

13.안타깝습니다. 글을 바로 잡으십시요.

14.김성일과 조선의 시대적 한계

 

도현 족친은 정중하고 예의있게 바른 어조로 선우정 사회부장의 학봉 김성일에 대한 당쟁적 보고의 장본인으로 폄하한 것은 명백한 잘못임을 주지시켰으며, 이 잘못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넘는 명예훼손이라고 강조함과 동시에 선 부장이 잘못 알던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임란의병과 진주대첩', '임란직전 경인통신사행과 귀국보고 재조명'을 참고하기를 제언했다.

 

본지에서는 도현 족친의 조선일보 잘못된 칼럼에 대한 기사 정정 청구 글 내용을 통해 바른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또 도현 족친의 선조수정실록과 선조실록 및 서애집, 인재집 등의 정밀한 해석을 통해 학봉 김성일 선생의 임란직전 나라와 민족을 위한 뜻깊은 발자취를 명료하게 인지하게 된 것은 학봉 김성일 선생에 대한 논쟁을 불식시킬 수 있는 실로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기사제보 및 사회적 공헌활동 홍보기사 문의: 010-3546-9865, flower_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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