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사랑의 ‘마이구미’, 음악으로 되살아난 고향의 기억 “누군가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
13일 구미 강동문화복지회관 봉두아트홀서 공연 성료
자작곡·편곡곡으로 가족과 사랑, 삶과 고향 이야기 풀어내
시민들의 사연 담아 완성한 ‘마이구미’…객석도 함께 부르며 하나 된 무대
[한국유통신문=김도형 기자] 한 사람에게 고향은 지도 위의 지명이 아니라 삶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장소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바라보던 하늘과 가족의 시간, 떠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그리움까지. 작곡가 사랑이 음악으로 풀어낸 ‘구미’는 그렇게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해 시민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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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 구미 강동문화복지회관 봉두아트홀에서 작곡가 사랑의 ‘마이구미(My Gumi)’ 공연이 펼쳐졌다. 이날 공연은 단순히 익숙한 곡을 들려주는 콘서트가 아니었다. 사랑은 무대에 올라 이날 연주되는 곡들이 자신의 자작곡 또는 직접 편곡한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와 구미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연의 이야기는 사랑과 결혼, 가족으로 이어졌다. 사랑은 자신이 아끼는 지인들이 결혼할 때 축가를 직접 만들어 선물해 왔으며 그렇게 쌓인 곡이 30곡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이날 무대에서는 겨울에 결혼하는 친구를 위해 만든 곡과 보사노바의 색채를 활용한 축가 등을 들려주며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음악이 어떻게 기억을 기록하는지를 보여줬다.
무대가 깊어지면서 음악은 가족이라는 보다 내밀한 기억으로 향했다. 사랑은 오랫동안 여수의 섬에서 홀로 생활했던 어머니를 찾아가던 시간을 떠올렸다. 당시 편도에만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머니가 낙상으로 크게 다쳤을 때에도 곁으로 쉽게 달려갈 수 없었던 미안함이 남았다고 했다.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눈물을 흘리곤 했던 기억은 결국 피아노곡 ‘엄마의 섬’으로 이어졌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개인의 회고에 머물지 않았다. 사랑은 가족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때로 다른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전하며,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졌다. 사랑은 남녀 간의 감정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에는 책임과 무게가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담아 ‘사랑을 쉬이 여기지 말아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를 향한 음악에는 부모의 마음이 담겼다. 조카가 태어났던 2011년 만든 ‘아가’는 아이를 위한 노래인 동시에 양육의 시간을 견뎌온 모든 부모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사랑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들이 품었던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는 첫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기준과 기대에 가려지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목격한 청년들의 열등감과 좌절도 음악이 됐다. 자신이 어떤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한 사람의 삶과 미래를 가로막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빛나는 너에게’였다. 이날에는 이 곡에 담긴 마음을 보다 부드럽게 전달하기 위해 소규모 편성으로 새롭게 구성한 버전을 선보였다.
“내 모든 기억의 기초가 있는 곳”…음악이 된 구미
공연의 중심에는 결국 ‘구미’가 있었다.
사랑에게 구미는 특별한 장소다.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미로 내려와 성장했고 22살 무렵 가족과 함께 서울로 떠났지만, 자신의 유년 시절 전체가 구미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미를 자신의 생각과 기억, 철학과 가치관의 기초가 만들어진 곳으로 표현했다.
그 기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것은 ‘하늘’이었다.
사랑은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가 높은 지대에 있어 유난히 큰 하늘을 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아침 등교 때부터 밤늦게 학교를 나설 때까지 바라봤던 그 하늘은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위로가 됐다. 세월이 흐르고 주변 풍경이 달라진 지금도 그곳에는 여전히 큰 하늘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 기억은 짧은 피아노곡 ‘The Sky’가 됐다. 한 개인이 바라봤던 구미의 하늘이 선율을 통해 객석의 각기 다른 기억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해외 생활 역시 고향과 나라를 다시 바라보게 한 계기가 됐다.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던 시절 광복절을 맞으며 ‘나라가 있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느꼈다는 사랑은, 나라를 잃는 경험을 지켜본 해외 친구와의 대화를 소개하며 자신이 속한 땅과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마이구미’는 한 사람의 노래가 아니었다
이날 공연의 정점은 공연 제목과 같은 ‘마이구미’였다.
사랑은 구미에 살고 있을 때는 오히려 자신이 사는 도시의 가치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곳에 정을 붙이고 의미를 두며 기억하고 기록하기 시작하면 평범했던 공간은 특별한 장소가 된다고 했다.
그에게 구미를 설명하는 감정은 단순한 ‘좋아함’보다 ‘애틋함’에 가까웠다.
아름다운 여행지는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쉽게 애틋해지지는 않는다. 우리의 삶이 실제로 있었던 곳, 가족과 친구가 있었고 기쁨과 아픔을 함께 겪었던 장소이기에 비로소 애틋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마이구미’를 자신의 추억만으로 채우지 않았다.
구미를 떠난 자신에게는 과거의 도시이지만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현재이고, 아이들에게는 미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구미가 누군가에게는 일자리를 찾아 꿈을 품고 찾아온 ‘꿈의 도시’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에 자신의 블로그와 SNS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구미에 얽힌 사연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 속 구미는 하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꿈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애증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사랑이었다. 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고향이었다.
사랑은 이 과정에서 “나에게는 과거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재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아이들이 자랄 미래가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마이구미’를 자신의 노래가 아닌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만들기로 했고, 가사만 완성하는 데 약 3개월을 들였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 허문 ‘마이구미’
그리고 마침내 객석이 노래의 일부가 됐다.
사랑은 본 공연에 앞서 관객들에게 함께 부를 부분을 직접 알려주고 몇 차례 연습했다. 무대 위 연주자만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봉두아트홀을 찾은 시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보태도록 한 것이다.
노래가 시작되자 ‘구미’라는 이름은 개인의 기억에서 공동체의 언어로 바뀌었다.
“나의 기억, 나의 노래”, “지금처럼 오래오래”라는 메시지가 반복되고 관객들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마이구미’는 작곡가 한 사람의 작품을 넘어 이날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의 노래가 됐다. 곡은 구미를 저마다의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간으로 바라보며,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의 의미를 음악으로 그려냈다.
공연은 이후 우리가 살아가는 땅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됐다. 사랑은 자신의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며 연주자들과 새롭게 편곡한 ‘우리 땅’을 선보였다.
이날 무대는 화려한 음악적 기교만을 보여주는 공연과는 결이 달랐다. 한 작곡가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과 가족, 상처와 사랑, 아이들과 고향을 음악으로 기록하고, 그 기록을 다시 시민들에게 건네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마이구미’가 던진 메시지는 선명했다.
도시는 건물과 도로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떠나고 돌아오며, 사랑하고 아파하고 꿈꾸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쌓일 때 비로소 한 도시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9월 13일 봉두아트홀에서 울려 퍼진 ‘마이구미’는 그래서 단순한 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온 고향을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구미를 다시 바라보게 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살아갈 도시를 생각하게 한 노래였다.
한 사람의 기억에서 시작된 선율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더해진 순간, ‘나의 구미’는 ‘우리의 구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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