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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선생문화역사탐방(1)] 매학정, 낙동강에 새긴 350년 선비의 서정

350년 북소리 울리는 낙동강 문화유산의 증언

 

[한국유통신문= 김도형 기자] 김종길 구미독립운동사 자문위원은 1월 9일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 매학정에서 역사적인 강연을 펼치며,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삶과 낙동강 변 문화유산의 깊은 내력을 생생히 되살렸다. 지역 향토사학자로서의 30년 연구를 바탕으로 '정경' 북의 350년 전설부터 율곡 이이·동생 이우(옥산)의 인연, 당쟁 속 화합 정신까지 세밀하게 풀어냈으며, 이는 구미의 역사 보존과 현대 문화 제안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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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선생 정경고명 북 설명(사진 촬영: 박종숙 인물사진 전문작가)

 

 

'정경고명' 북의 350년 사연

동맹(李東盟, 예곡)이 1654년(임진년, 33세) 대소과 연속 급제 기쁨으로 처음 제작한 작은 북 '정경고명(定慶高明)'은 가죽이 닳고 나무 몸체가 튀어나올 만큼 낡아도 버리지 않은 가족의 영험한 보배였다. 이후 셋째 형, 조카 정화·재화, 종손 광택·광거 등 후손 3~5세대가 과거 합격 소식을 알리며 사용했으며, 1658년 나그네 이명(李明)의 기록에 따르면 "금인·구인 신선도 망극한 인간처럼 세를 오래 못 가니, 집안·지역·나라 경사를 넘어 만민의 기쁨을 전할 때 써야 만년 전해질 것"이라는 권고가 북의 운명을 바꿨다.

율곡·이우·황기로의 황금 인연

율곡 이이(李珥)가 22세(1557년)에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 처가행 중 매학정을 방문, 고산(고모산) 명필가 황기로(黃耆老)를 만나 깊은 교류를 맺었다. 율곡은 현실 정치와 성리학에 매진한 반면, 네째 동생 이우(李雩, 옥산 유여)는 황기로의 사위가 되어 붓글씨·거문고·성악·비우(飛羽) 예술에 천재성을 발휘해 매학정 현판, 화첩, 금오산 후망대 필적을 남겼다. 이우의 명필은 성호 이익(李瀷) 사촌 이지정(李芝定)을 거쳐 계승됐으며, 중국에서도 상금을 들고 사러 왔을 만큼 품격 높아 조선 성리학 퇴조 속 예술의 영원성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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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 희생 속 피어난 화합 정자

손기균·태계 성능(忠淸選屛)·황훈장·이정(고암, 퇴계 삼촌)·오암 송시·이동(옥산 정선자) 등 명인들의 현판과 매학정 8경 시조가 새겨진 이 정자는 동·서인 당쟁 격랑(사도세자 사약, 홍국정·홍봉한 추벌 여파) 속 동맹의 10년 유배·시신 귀환 아픔을 딛고 지역 해평 홍씨 등 주민과 혼인·경사로 화합한 현장이었다. 우암 송시열(200~300편 행장)의 사약 희생을 예로 김종길 자문위원은 "너 죽고 나 피는 정치 아닌, 다른 생각 모아 민주 토론으로 협치하라"고 역설했다.


도리사 서대에서 내려다보는 낙동강 제1경, 보천(普川, 깊이 흐르는 물), 매실나무 그늘, 금오산 후망대, 매학정 8경의 자연미를 지키며, 자문위원은 아시안게임 등 국제 행사서 구미시 체육회·시민이 '정경'을 울려 민간 정자의 경사를 세계에 알리자고 제안했다. 서예대전·시낭송 대회 개최, 꽃길·카페 조성으로 자연적 홍보를 강조하며 "허름한 정자라도 금오산·태조산과 어우러진 이곳은 구미 문화의 영원한 증언자"라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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