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으로 시작해 “머무름”으로 남는다! 배석인 개인전 《머물다》
23년 손의 흔적이 구미에서 숨을 쉬다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흔히 보아온 회화의 언어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벽면에 걸려 있었다. 분명 “벽에 걸린 작품”인데도, 표면은 평면을 거부하듯 입체적으로 살아나 있었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실과 천이 만든 숨결 같은 기운이 관객의 감각을 조용히 흔들었다. 마치 작품이 ‘전시’가 아니라 ‘호흡’으로 존재하는 듯했다.
[한국유통신문=김도형 기자] 2002년부터 2025년까지. 배석인 작가가 축적해 온 23년의 시간은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삶의 결이자 기억의 층위다. 섬유 파인아트 작가 배석인의 개인전 《머물다》는 그 오랜 시간의 흔적들이 하나의 결로 다시 엮이는 자리다. 전시 부제 “Works 2002–2025”가 말해주듯, 이번 전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회고이자 다음 흐름을 준비하는 전환의 공간으로 펼쳐진다.
전시는 12월 17일부터 21일까지 구미 새마을운동테마공원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시간·기억·손의 흔적이다. 빠른 소비와 즉각적인 결과가 지배하는 시대에, 배석인의 작업은 ‘느림’과 ‘축적’, 그리고 ‘반복’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힘을 정면으로 내세운다.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닌, 손으로 짠 ‘공간의 체온’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체감되는 것은 섬유가 가진 물성이다. 작품 표면에는 반복적인 스티치의 선과 천의 결이 겹겹이 남아 있다. 그 선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쌓인 기록처럼 화면을 채운다. 멀리서 볼 때는 이미지가 먼저 읽히지만, 가까이서는 결이 보이고, 결을 따라가다 보면 ‘손의 리듬’이 보인다.
특히 공작과 꽃가지가 펼쳐진 대형 벽걸이 작품은 여백의 화면 위로 색의 중심이 응집하며 시선을 붙든다. 공작의 꼬리 무늬가 반복되며 장식성과 상징성이 살아나고, 가지와 잎의 리듬이 화면을 흐르게 만든다. 생물의 형상을 담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손이 만든 시간의 밀도”다.
또 다른 연작인 다패널 문어 작품은 패널 경계를 넘나드는 곡선 동세로 ‘연속’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촉수의 흐름과 반복되는 빨판 디테일은 패턴적 쾌감과 생물학적 질감을 동시에 자극하며, 한 장면이 아닌 하나의 긴 호흡처럼 전시 공간에 머문다.
어머니의 바느질, 집안 직물의 기억… ‘우리의 시간’이 다시 올라온다
배석인의 섬유 작업은 관객의 개인적 기억을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
어릴 적 우리네 어머니들이 보여주던 세심한 바느질 솜씨, 집 안에서 직물을 허투로 쓰지 않고 이불·보자기·수선·덧댐 등 다양한 용도로 알차게 사용하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버려질 천 조각이 다시 이어지고, 실의 매듭이 다시 조여지는 순간, 관객은 작품을 “보는” 동시에 자신의 시간을 “회상”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전시는 다음의 문장처럼 관객에게 닿는다.
손의 흔적
“손끝의 리듬은 생명을 다시 짜는 숲이 된다”
직조와 니팅의 반복 속에 손은 기억을 엮고 관계를 이어가는 감각이 됩니다.
한때 쓰임을 다한 천과 실, 버려지고 잊혀졌던 섬유들이 손끝을 지나 다시 호흡을 얻습니다.
업사이클링을 통해 되살아난 조각들은 스스로의 시간을 다시 이어가며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중입니다.
섬유의 세계는 결국 ‘살림’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머물다》는 화려한 기교의 과시가 아니라, 삶의 결을 예술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감동을 준다.
구미에서 만나는 ‘희귀한 장면’… 녹으로 염색한 의상, 예술의 경계를 넓히다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장면은 웨어러블(의상) 작품이다. 흰 바탕 위로 번지는 황토·갈색 계열의 흔적들은 ‘시간의 얼룩’처럼 남아 있고, 의상은 단순한 옷을 넘어 조형 오브제로 존재한다. 겹침과 드레이프가 만들어내는 층은 신체의 움직임을 상상하게 하며, 전시가 평면을 넘어 경험으로 확장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특히 “녹으로 염색한 의상”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관객의 언어로 표현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희귀한 작품”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천연염색을 다루는 전문가조차 감탄했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이유도, 색이 단순히 예쁘게 ‘입혀진’ 것이 아니라, 시간과 반응의 결과로 ‘태어난’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 색은 기술이 아니라 ‘과정’이며, 결과가 아니라 ‘축적’이다. 배석인 작가의 창의적 감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머문다”는 태도, 멈춤이 아니라, 연결의 다른 이름이다.
배석인 작가에게 ‘머무름’은 정지나 후퇴가 아니다. 흘러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고, 기억을 현재로 불러와 삶의 결로 재구성하는 능동적 행위다. 그래서 작품의 매듭과 스티치, 염색의 번짐은 작가 개인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관람자의 기억을 환기하는 장치가 된다.
요란한 연출 없이도 관객이 오래 서 있게 되는 이유는, 작품이 “보라고” 외치지 않고 “머물라고” 조용히 권하기 때문이다.
4부로 구성된 전시, 감상을 넘어 ‘자기 기억’으로 들어가다
이번 전시는 총 4부로 나뉘어 전개된다.
Part I. 기억의 자리 – “시간을 바늘하다”
오래된 천 조각을 잇는 행위로 시간의 층위와 기억의 축적을 드러낸다.
Part II. 변형의 결 – “색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천연염색을 중심으로 자연과 시간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색의 여정을 보여준다.
Part III. 손의 흔적 – “손끝의 리듬은 생명을 다시 짠다”
반복된 손의 움직임이 새로운 생명성과 질서를 만드는 과정을 담는다.
Part IV. 머문다 – “머무는 것은, 결국 연결되는 것이다”
관람자의 참여를 통해 각자의 시간과 기억이 하나의 결로 이어지는 설치로 전시를 마무리한다.
전시는 감상에서 멈추지 않고, 관람자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경험’에 가깝다.
전시를 넘어 경험으로… 연계 프로그램 운영
《머물다》는 전시 감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12월 17일부터 19일까지는 테라피 치유 워크숍, 기억 유물 정리, 명상과 음악을 결합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예술이 일상의 감각 회복과 연결되는 지점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는 별도의 오픈식 없이 진행되며, 화환 또한 정중히 사양한다. 이는 전시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요란함 대신, 잠시 멈추어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는 조용한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경북 구미에서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관객에게 한 가지 감정을 남긴다. 행운이다.
천재적인 작가의 시간을 같은 도시에서 마주하는 일, 그리고 그 손의 흔적 속에서 ‘내 기억’까지 되살아나는 경험은 흔치 않다. 《머물다》는 결국, 작품을 보러 갔다가 내 삶의 결을 다시 만지게 되는 전시다.
전시 정보
전시명 : 《머물다》 – 배석인 개인전 (Works 2002–2025)
기간 : 2025.12.17(수) – 12.21(일)
(수~토 09:00–18:00 / 일 09:00–16:00)
장소 : 새마을운동테마공원 3층 기획전시실(구미)
기획·주최 : 문화예술교육연구소 더하다
Artist : 배석인
<저작권자(c)한국유통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및 사회적 공헌활동 홍보기사 문의: 010-3546-9865, flower_im@naver.co
검증된 모든 물건 판매 대행, 중소상공인들의 사업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