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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영남유교문화진흥원, “혈세 논란에서 시민 품으로…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였다”

“‘혈세 논란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로… 베일 벗은 영남유교문화진흥원”

 

[한국유통신문 = 김도형 기자]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은 한때 ‘베일에 싸인 공간’이었다. 경북 구미시 선산읍 독동에 자리한 이곳은 노진환 회장이 수십 년간 사비를 들여 일군 공간인 동시에, 과거 수십억 원의 지방재정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도 시민들에게 제대로 개방되지 않아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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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11월 4일 경북시대 윤봉금 대기자와 함께 이 진흥원을 찾았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단순한 취재가 아니라, 그동안 제기돼 온 “혈세가 허투로 쓰인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는 데 있었다. 윤 대기자는 사전 자료조사와 검증을 통해 문제점이 있다면 비판 보도를 할 태세로 현장을 찾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의 실상은 ‘논란의 공간’이 아니라 ‘공개된 문화자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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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원은 현재 여러 개의 전시실을 통해 민화·전적(古文書)·복식·독립운동 자료 등 다양한 콘텐츠를 시민들에게 상시 개방하고 있었고, 체계적인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었다. 이날 안내를 맡은 이는 김정태 영남유교문화진흥원 문화해설사였다.


“폐쇄 의혹”에서 “문화공간”으로… 윤봉금 대기자의 시선


윤봉금 대기자는 “막대한 사비를 들여 이 공간을 지켜 온 노진환 회장의 열정이 먼저 보였다”며 “실제 내부를 둘러본 결과, 과거 제기됐던 의혹과 달리 지금은 시민에게 열린 배움의 공간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혈세가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알릴 생각으로 왔지만, 직접 확인해 본 결과 현재 운영 실태만 놓고 보면 ‘세금이 허투로 쓰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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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취재진이 마주한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유교·민화·독립운동·생활사까지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복합 역사문화 플랫폼에 가까웠다. 그 중심에는 김정태 해설사의 깊이 있는 설명이 있었다.


민화부터 금강산 진경까지… “벽의 그림들이 전부 교과서입니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민화 전시 공간이었다. 김정태 해설사는 벽면을 가득 메운 병풍과 족자를 가리키며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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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민화들은 짧게는 100년, 길게는 250년 된 것들입니다. 대부분 19세기, 그러니까 1800년대 후반에 그려진 작품이지요.”


조선 시대에 그려진 그림이라도 궁중 화원이 아닌 서민·무명 화가가 그린 것은 동양화가 아닌 ‘민화(民畵)’로 분류된다는 기본 설명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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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민화 속에는 김홍도 풍속화 계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 평양 대동강 달밤에 백성들이 모여 풍류를 즐기는 장면, 경복궁 서쪽 궁궐을 그린 ‘서궐도’, 금강산 1만 2천 봉우리의 이름을 바위마다 빼곡히 적어 넣은 대형 진경산수화까지, 다양한 이야기와 상징이 담겨 있었다.


김 해설사는 “금강산 그림은 그 자체로 지리 교과서 역할을 한다. 봉우리 이름이 일일이 적혀 있어 아이들 학습용으로도 훌륭하다”며 “그림 한 점이 단순 장식품이 아니라 지리·생활·신앙이 녹아 있는 입체 자료”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병풍에 담다… ‘평생도’와 ‘십장생도’의 메시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따라가는 ‘평생도’였다.

남자가 태어나 돌잔치를 하고, 성장해 장가를 가고,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가고, 노년에 낙향하여 부인과 해로(解老)를 맞는 모습까지 한 폭씩 이어진다.


김정태 해설사는 “요즘 말로 하면 옛사람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인생 로드맵’을 시각화한 것”이라며 “한 폭 한 폭이 곧 한 장의 인생사”라고 설명했다.


옆에 전시된 ‘십장생도’는 해·달·소나무·거북·학 등을 가득 채운 대작이다. 그는 “전국에 유사한 도상이 널리 남아 있을 만큼 대표적인 장수 기원 그림”이라며 “이런 병풍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수십 년 경력과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대 민화의 창의성과 ‘힐링’ 효과


전통 민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시관에는 오늘날 작가들이 전통 도상을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한 현대 민화도 걸려 있다.


밑그림은 옛 그림을 따르지만 색감과 구도, 디테일은 현대적이다. 김 해설사는 “요즘 민화는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전통 위의 창조’”라며,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채워 나가는 과정에서 집중력이 생기고, 화려한 색감 덕분에 정서적인 치유 효과를 느끼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영남유교문화진흥원과 인근 평생교육원에서는 민화 강좌도 운영 중이다. 그는 “민화를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고, 동시에 마음도 차분해진다”며 ‘배움과 힐링이 함께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16세기 선비의 옷에서 오늘 패션의 뿌리를 보다


다음으로 향한 전시실에는 무덤 출토 복식 자료가 정갈하게 전시돼 있었다. 1516년 전후에 살았던 ‘노수함’이라는 인물의 무덤에서 나온 남성 관복과 속옷, 부인의 저고리 등이다.


세탁·복원 과정을 거쳐 촬영한 사진과 함께, 의복의 구조와 문양, 옷감의 종류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김 해설사는 “문헌에서만 보던 ‘연포(練布)’, ‘대렴’, ‘소렴’ 같은 명칭들이 실제 직물과 연결되면서 연구가 훨씬 구체화됐다”며 “오늘날 의류업계 역시 전통 복식을 참고해 새로운 디자인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좋은 한지는 수백 년이 지나도 찢어지지 않고, 오히려 천처럼 부드러워진다”며 “종이와 옷감만 봐도 선조들의 재료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지·양자문서·분재기… 종이에 새겨진 조선의 법과 행정


전시관의 또 다른 한편에는 조선 시대 공문서와 교지(敎旨)가 관람객을 맞는다.


과거 시험에 장원급제한 이에게 내려진 교지, 양자를 들 때 관청의 결재를 받은 사실을 기록한 문서, 자녀들에게 재산을 어떻게 나누어 줄지 상세히 적은 ‘분재기(分財記)’ 등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문서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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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해설사는 “조선 시대에는 고유 연호 대신 중국 황제의 연호인 ‘만력’, ‘숭정’ 등을 썼다”며 “이런 문서에 기록된 연호 덕분에 오늘날 학자들이 정확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본이 심하게 훼손된 자료는 정교한 사본으로 대체해 전시하고 있다. 그는 “이미 사학자와 대학원 차원에서 검증을 거친 자료들”이라며 “일부는 ‘보물급’ 평가를 받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독립운동 자료와 김구 선생 글씨 사본… “숨결이 느껴진다”


진흥원에는 의성·안동 일대 의병 활동과 독립운동 관련 자료도 별도의 공간에 전시돼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서예 작품과 초상,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인물들의 기록이 관람객을 맞는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김구 선생이 쓴 글씨의 사본이다. 김 해설사는 “원본은 안전상의 이유로 이곳에 둘 수 없어 정교한 사본을 걸어놨다”며 “그래도 많은 분이 이 앞에 서서 한참을 떠나지 못한다”고 전했다.


윤봉금 대기자는 “독립운동가들의 실제 글씨와 기록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이 왜 필요한지 설명이 된다”며 “이런 자료가 사장되지 않고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과거 혈세 투입 논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이제는 감시가 아니라 활용과 확산의 단계로”


이번 방문은 단순한 ‘견학’이 아니라, 그동안 논란을 낳았던 공간의 현재 가치를 재점검하는 과정이었다.


과거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은 상당한 공공재원이 투입됐음에도 시민들에게 문이 거의 열리지 않아 “폐쇄된 사적 공간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이곳은 다수의 전시관을 운영하며 사전 예약과 안내를 통해 시민에게 개방 중이고, 전문 해설사가 상주하며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한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윤봉금 대기자는 “감시와 의심의 시선이 필요했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시민과 학생들에게 개방되고, 교육·연구에 쓰인다면 이제는 ‘어떻게 더 잘 활용하고, 어떻게 더 널리 알릴 것인가’를 고민할 단계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정태 영남유교문화진흥원 문화해설사는 “그림 한 점, 문서 한 장, 옷 한 벌에도 당시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학교와 지역 단체들이 이곳을 ‘살아 있는 역사·문화 교과서’로 적극 활용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때 논란의 대상이었던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은, 이제 “혈세 논란의 현장”에서 “시민의 역사·문화 학교”로 서서히 자리를 옮기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 묵묵히 수집과 보존에 힘써온 한 개인의 사비와, 이를 다시 시민에게 돌려주려는 노력, 그리고 그 가치를 직접 확인한 시민·언론의 눈이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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