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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뉴텍그림이야기 (35) - 평화(이석자)

토마스 1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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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통신문 = 이용범기자] 모란은 원래 중국 원산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들여와 약용으로 재배되었다. 높이는 2m까지 자라며, 줄기와 가지에 털이 없고, 잎은 크게 3~5갈래로 갈라지는 모양이다. 꽃은 암시한 꽃으로 4 ~ 5월에 피며, 한 송이는 꽃잎 10개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 꽃색은 자홍색이 보통이나, 개량종에는 짙은 빨강, 분홍, 노랑, 흰빛, 보라 등 다양하며 홑겹 외에 겹꽃도 있다. '꽃의 왕'이라는 별명답게 꽃은 아주 크고 화려하고 우아하며, 이맘때 피는 모든 꽃나무들을 압도한다.

 

이 꽃을 가리켜 중국과 일본은 牡丹(모단)이라는 한자를 쓰는데, 우리나라만 유독 牧丹(목단)이라는 한자를 쓴다. 시인 김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라는 시구로 모란을 노래했다.

 

화투의 6월 그림에도 모란이 나비와 함께 그려져 있으며, 평양의 모란봉은 언덕 전체의 형상이 모란의 모습과 매우 닮아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성남시의 모란시장이 여기서 따온 이름이며, 일본 유행가에는 미인을 가리켜서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라는 가사가 있다.

 

모란은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꽃의 왕은 모란이고, 꽃의 재상은 작약"이라는 말도 중국에서 나왔다. 수나라 때부터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는 모란이 개화하는 시기가 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아름다운 모란꽃을 찾아다니며 감상하는 게 유행했었다. 유행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장안성의 관청, 사찰, 저택 등 저마다 특색 있는 모란을 키우고 있어서 감상하기 알맞은 장소가 문자 그대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에 영향을 받아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나 신라 3문장(강수, 설총, 최치원) 중 한 사람인 설총의 《화왕계》에서 모란이 꽃의 으로 의인화되고 있다. 계화왕〉(戒花王)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화왕계는 당시 왕의 어질지 못함을 풍자한 글로 설총신문왕에게 계화왕을 지어 올려, 신문왕에게 비행을 경계하고, 스스로 자성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석자 화가는 팔순이 넘은 화가이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이석자 화가는 어느 젊은 미술학도 이상으로 미술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2025년 들어 많은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며 홍조 띤 얼굴엔 열정이 가득했다. 모란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모란 화가로서 또 후진을 양성했던 선생님으로서 모란에 교육적 철학을 담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며 캔버스에 아직도 열정을 담아 모란을 꽃피우고 있다. 존경스러운 화가이다.

 

이 작품,'평화'는 분단된 우리나라가 항상 평화롭기를 염원하며 그린 100호 크기의 큰 그림이다. 100호 크기의 큰 캔버스에 극사실로 확대되어 그려진 한 송이 자홍색의 모란 꽃잎이 햇살을 받아 부드럽고 우아한 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은 그림을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든다.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라고 노래했지만, '평화'라는 제목의 모란 한 송이를 완성할 때까지 이석자 화가는 그저 앉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평화를 염원하며, 무수한 붓질을 하며, 색감과 원근과 명암을 살려내며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그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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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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