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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아카데미, 구미-선산지역 여헌 장현광 선생 유적 답사

(전국= KTN) 김도형 기자= 18일 구미시 임수동에 위치한 여헌기념관에서 운영되고 있는 여헌아카데미에서 '구미-선산지역 현장학습 답사'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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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아카데미 장의식 교수의 인솔로 여헌 장현광 선생 유적 중심으로 구미와 선산 일대를 답사했다.

 

이날 여헌아카데미 수강생 일동은 여헌기념관에서 출발하여 인동장씨 시조를 모신 옥산사를 시작으로 옥계서원, 옥산고택, 남산고택, 장응일 신도비, 일선리 문화재마을, 송당정사, 원회당(여헌 영당), 영남유교문화진흥원, 금오서원, 여헌 묘소, 야은 묘소, 창랑고택, 지주중류비를 둘러보았다.

 

다음은 장의식 교수가 자료 제공한 답사 코스 문화유적에 대한 설명이다.


옥산사는 인동장씨 시조공 고려초 벽상공신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 장금용을 모신 사당이다. 아래의 옥계사(옥계서원) 내에 1969년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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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발로 2006년 4월 옥계서원과 함께 관향산인 옥산으로 이건 결정됐다. 2008년 8월 착공해 2011년 8월 완공됐다. 동년 10월 8일 구미시 인의동 옥산(햔 구미시 여헌로 68)러 이건했다.


옥계서원은 인동장씨 시조공의 12세 장안세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장안세는 고려말 정헌대부(여조정헌대부), 덕령부윤군, 성주부사로 태조 이성계와 친분이 있다. 두문동 72현 중 1인(김집이 편찬한 '사문동 72현록'에 16위로 기록). 시호는 충정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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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서원은 원래 옥계사이다. 시조공을 모신 옥산사보다 약 200년 먼저 영조 50년(1774) 칠곡군 인동면 인의동(현 구미시 여헌로 21-10)에 장안세를 모시기 위해 옥계사를 건립했다. 그를 주벽으로 아들 김해부사 장중양 등 9위를 향사한다. 고종8년(1871)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됐다. 1990년 유림의 공의에 따라 옥계서원으로 승호됐다. 도시개발로 2006년 4월 옥산사와 옥계서원을 관향산인 옥산으로 이건 결정했다. 2008년 8월 착공, 2011년 8월 완공, 동년 10월 8일 구미시 인의동 옥산(현 구미시 여헌로 68)로 이건했다.


옥산고택(인동장씨 대종가)는 구미시 인동동 중리에 소재한다. 인동 장씨 대종가 종택은 시조공이 터를 잡은 이래 근 천 여년간 대종손이 세거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드믄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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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대 전부 소실, 1631년 인조 9년 20대 종손인 극명당 장내범 때 중건됐다. 대동보 헌성금으로 1999년 3월 5일 기공, 같은 해 6월 7일 상량, 2000년 3월 30일 준공했다. 대지 488평, 건물 27칸(110평), 우림의 공의에 따라 충정공 장안세의 불천위 사당이 있다.


남산고택(여헌종가) 모원당은 구미시 인의동에 소재한다. 인동장씨 남산 종택으로 혹은 여헌 종택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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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 장현광(1554~1637)의 종택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다. 문인 장경우를 비롯한 문도와 친척들이 1606년 종택 모원당을 건립했다. 덕천당은 여헌의 양자인 청천당 장응일(1599~1676)이 1607년 건립했다. 1650년 불천위 여헌 묘우를 건립했다. 모원당은 정면 6칸, 측면 한 칸의 홑처마 정자 지붕이다. 안쪽에 현대식으로 개조된 한옥에 종손이 세거하고 있다.


청천당 신도비는 청천당 장응일의 공적을 기리는 신도비이다. 장응일은 여헌의 4촌 동생 장현도의 아들로 여헌에 입양됐다. 문과(대과) 급제, 권신 김자점을 탄핵하고 송시열을 죽이라고 상소한 강직한 성품이다. 대사산 등을 역임했으며 이조판서로 증직됐다. 신도비는 2품 이상의 고관만 건립 가능하다(여헌의 신도비는 동락서원 내)


일선리 문화재 마을은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살던 전주 류씨들이 1980년대 초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자 집단으로 이주하여 만든 현대식 집성촌이다. 선산군 도개면 신림리와 해평면 낙산리 경계의 밭과 야산을 정비해 조성했다. 1988년 '선산군 조례'로 해평편 일선리로 개편했다. 마을 앞 낙동강 강변 유휴지 약 2.5만평을 농지로 조성하여 이주민에게 2.4천평씩 분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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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되며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화재마을이 됐다. 마을 앞 도로변에 '일선리 문화재 마을'이라는 간판과 마을 어귀 중앙에 4m 높이의 '수류우향'이라는 비석이 있다. 문화재 10 여 점, '용와 종택 침간정(조선 숙종과 영조 때 학자 유승헌의 집), '삼가정(유봉시가 두 아들이 높은 관직에 이르자 정자를 짓고 세 그루의 가죽나무를 심은데서 유래)','임하댁', '수남위 종택', '근암 고택' ,'호고와종택' 등이 있다.


송당정사는 송당 박영(1471~1540)이 연산군 때 고향 선산에 낙향하여 낙동강가에 세운 강학지소이다. 현재 건물은 1860년대 중건됐다. 박영(밀양박씨)의 어머니는 양녕대군의 딸이다. 신당 정붕의 문인으로 구미 선산 지역의 도학을 이었다. 강계부사, 의주목사, 동부승지, 병조참판, 김해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무와 의학에 정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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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정사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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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외당 답사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은 선산읍 독동리 출신 경북고속 노진환 회장인 인재 양성을 위해 고향에 사비로 건립했다. 반송이 많아 일면 반송리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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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서원은 1572년(선조 5)에 최응룡, 김취문 등이 부사 송기충에게 청하여, 길재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금오산 아래에 창건, 위패를 모셨다. 1575년에 '금오'라고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 부사 김용의 주도로 현 위치에 복원했다. 1609년(광해군 원년)에 다시 사액받았다.후일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을 추가 배향했다. 금오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당시 훼철되지 않은 47 서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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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헌 장현광(1554~1637)은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 때 영남우도호조사, 인조 항복 후 세상을 버릴 생각으로 동해가의 영천 입암에 들어갔다. 반년 후 1637년 그곳 만옥재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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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앞 묘비의 글


유명조선국증대광보국승록대부의정

부영의정겸령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

관관상감사세자사행자헌대부의정부

우참찬시문강공여헌장선생지묘


야은 묘소와는 조그만 산 하나를 둔 가까운 거리다. 야은을 깊이 사모한 여헌이 자기 묘소를 야은 묘소 인접한 곳에 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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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은 선생은 1419년, 67세에 별세했다. 금오산에서 가장 긴 산줄기를 찾아 묘 터를 정했다. 그곳이 오태동이다.

 

'숭정후구십팔을사삼원일개립'

 

묘소는 야은이 출생산 해평땅 봉계리(지금의 경북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를 향하고 있다.


지주중류비는 198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1587년(선조 20)에 인동현감 유운룡이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묘역을 수리하고 주변에 사당과 서원을 창건하고 그 앞에 세운 비석이다. 비석 표면에는 중국 명필 양청천의 글씨인 '지주중류' 4자를 새겼고, 뒤편에는 서애 유성룡이 '지주중류'의 뜻과 그것이 후학들에게 주는 교훈의 글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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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라 함은 중국의 황하 중류에 있는 기둥처럼 새긴 석산으로, 탁류 가운데 있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산으로 길재의 절개를 상징한다. 지금의 비석은 당시의 것이 아니고, 1789년(정조4)에 다시 세운 것이다. 전체적으로 글자에 비해 비석이 작으나 사람을 위압하는 듯한 느낌이다.


창랑고택은 대한민국 제3대 국무총리 장택상(1893~1969)의 생가이다. 장택상의 조부 유헌 문헌공 장양용은 이조판서와 형조판서, 부친 운정 장승원은 경상북도 관찰사, 형님은 장길상, 장직상이다. 창랑 고택을 시비로 사들여 박정희 대통령 생가와 왕산 허위 기념관, 장택상 고택을 삼각벨트로 하여 관광자원으로 하자는 여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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