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순 교수 칼럼] "노래하며 연기하기-말하며 노래하기" 이탈리아 베르가모 국립음대 성악 실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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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순 교수, 이탈리아 베르가모 국립음대 cantarparlando 실기과정 외래교수

 

이탈리아 베르가모 도니제티 국립음대 Recitarcantando-Cantarparlando 성악 실기 과정 소개


Recitarcantando-Cantarparlando(레시타르칸탄도-칸타르팔란도) 이 굉장히 길고도 생소한 이름은 "노래하며 연기하기-말하며 노래하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이 특이한 이름의 성악 실기 과정은 이탈리아 베르가모 도니제티 국립음대에 개설된 Corso libero(정규과정 외 특별과정) 중의 하나로 Antonino Tagliareni 교수(약칭 Nino 교수님)가 고안한 발성 테크닉 전문 과정이다.
 

Recitarcantando-Cantarparlando 발성 테크닉은 언어를 기본 바탕으로 하는 발성법으로 정확한 자음과 모음 발음이 문장의 흐름과 강세에 따라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흐르면 자신만의 고유의 목소리가 노래의 멜로디와 함께 자연스럽고 쉽게 따라나온다는 이론이다.
 

이 테크닉의 근본은 오선 위에 오르락내리락 그려진 음표를 따라 음정과 박자를 맞추는 대신 그 음표 아래 가지런히 쓰여진 가사의 수평선을 따라 노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음을 올린다거나 고음을 친다거나 저음을 깔거나 내린다는 등의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의미는 음정을 앞세워 음정을 맞추는 데 초점을 맞추지 말고 가사를 앞세워 위로도 아래로도 벗어나지 않는 언어의 수평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선을 벗어나지 않고 균형을 맞춰 노래를 진행하려면 정밀한 자음과 모음의 발음이 중요한데 이 주제는 프레이즈의 강세를 설정하는 방법과 함께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우선 노래를 하기 전에, 또는 소리를 내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신체 안에 있는 발성기관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잠깐 기악과 성악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자면, 기악은 크게 건반악기, 현악기, 관악기로 분류할 수 있다. 각 악기는 그 악기 고유의 형상과 음색, 소리가 나는 메커니즘이 있는데 우리는 악기를 배우기 전 그 악기의 작동 원리를 알고 그에 알맞은 기본적인 작동법부터 익힌다. 예를 들면 건반 악기는 건반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피아노 해머가 현을 때려 소리가 나는 원리이고 현악기는 활로 현을 그으면 소리가 나는 원리이다. 관악기는 어떤 형태의 관에 숨을 불어넣으면 소리가 나는 원리이다. 각 악기의 작동원리에 맞게 연습하고 훈련하면 점차 아름다운 소리가 나면서 연주 실력이 느는 것이다.
 

노래는 어떤 특징과 작동원리가 있는지 알아보자.
 

보통 노래는 뭘로 하죠? 라고 질문을 하면 목소리요, 머리요, 배요, 호흡이요, 가슴이요, 근육이요......각자 생각하는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그래도 누가 노래를 하거나 말을 하면 우리는 목소리가 좋다, 나쁘다, 매력적이다, 쉬었다,  답답하다, 시원하다, 크다, 작다 등의 표현으로 목소리를 평가하게 된다. 이렇듯 목소리는 노래의 아주 중요한 결과물이니 이 목소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져 나오는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목소리란 말 그대로 목에서 만들어진다.
 

목 안쪽 혀뿌리와 이어진 후두부 안에 성대가 있다. 노래를 좀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 성대에 대한 말을 많이 듣게 되는데 양쪽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근육인 성대가 서로 만나 호흡을 연결시켜 목소리가 나오게 된다.
성대는 성대 그 자체만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후두의 중앙에 자리 잡고 후두의 여러 근육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후두의 일부이다.
 

목소리의 생성과 관련된 신체기관은 발음기관(혀, 입술), 발성기관(후두, 성대), 호흡기관(폐, 횡경막)인데 그 세 부분의 신체기관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지만 그 움직임의 순서가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노래를 하거나 말하는 것을 볼 때 몸 안에 작용하는 발성기관과 호흡기관의 움직임을 볼 수 없고 발음기관인 입의 움직임만 보이기 때문에 배에서부터 우러나온 호흡의 압력이 성대를 진동시켜 소리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가 온몸을 울려 입을 통해 나온다는 이미지를 가지기 쉽다.
 

그러나 사실 그런 이미지와는 달리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뇌에서 어떤 문장을 말하려거나 노래하려는 의도를 가지면 먼저 발음기관인 입(혀와 입술)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그렇게 발음을 하면 발성기관(후두, 성대)이 반응해 호흡 위로 내려가 발성기관과 호흡이 만나게 되고 그렇게 호흡과 연결된 발성기관은 뇌에 입력된 음정에 따라 진동수를 조절해 호기의 압력을 조절한다.

 

고음이면 진동수를 높여 높은 압력을 가해 호기를 덜 빠지게 만들고 저음이면 진동수를 느슨하게 해 호기의 압력도 느슨해진다. 그러므로 성대란 호흡의 밸브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고음을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량의 호흡이 필요하고 그 호흡을 가지고 뭔가 특별한 작용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노래를 할 때 나타나는데 호흡을 가득 채워 넣고 서서히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호흡을 버티면서 성대를 꼭 붙이려 하고 울림을 좋게 하기 위해 구강 비강 머리 등의 울림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동시에 할 일이 너무 많고 어렵다. 노래도 말도 다 목소리로 나오는데 말할 땐 호흡이 끊어질까 이상한 소리가 나오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고 할 말만 생각하면 목소리가 술술 나오는데 노래할 땐 왜 이리 생각할 게 많고 복잡한지. 물론 음정, 박자, 가사 틀리지 않게 맞춰야 하고 소리도 커야 하고 말할 때보다 몇 배는 길게 끌어야 하니까 그럴 것이다. 그런데 한번 발상의 전환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우리가 몸 속 신체기관인 악기(굳이 악기라고 표현하자면) 즉, 성대를 따로 떼어내 몸 밖에 존재하는 관악기처럼 생각하고 다루는 건 아닌지, 몸 밖에 있는 관악기에 숨을 불어 넣듯이 성대를 진동시키기 위해 배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강한 호흡으로 세게 불어내 큰 소리로 고음을 내려는 건 아닌지, 피아노 건반처럼 한 음 한 음 따로 쳐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성대란 우리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 아니다. 호흡의 연결에 중요한 횡경막의 작용도 우리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다.
 

성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말'이다. 말을 하면 가장 먼저 발음기관(혀와 입술)이 움직이고 발음기관이 움직이면 후두(성대)가 호흡을 향해 움직이며 순환하는 호흡의 에너지를 만나 호기를 막으며 그 압력으로 진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성대와 호흡이 연결되어 무언가 소리가 날 때 복근에 의해 밀어 올려진 횡경막이 폐를 수축시키고 문장이 끝나 소리가 없어지면 성대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횡경막도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수축된 폐가 이완되어 말과 노래를 하는 데 쓰였던 호흡이 다시 자동적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울림에 대한 메커니즘도 자동적인 것인데 발성의 메커니즘 순서에 따라 호흡부터 채우는 순서가 아닌 말부터 시작하는 순서를 따르면 기억 속에 저장된 멜로디의 음정에  따라 성대는 진동수(헤르츠)를 스스로 조절하며 목소리를 만들어 내고 그렇게 생성된 소리는 구강, 비강, 미간, 이마, 머리 등으로 보내려 하지 않아도 알아서 울려 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한 프레이즈가 진행되는 동안 발음의 형태를 바꾸지 않고 끝까지 말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발성기관의 작동원리 차원에서 보면 몸 밖으로 나온 목소리란 내가 말한 말의 결과이므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원인인 말(정확한 자음 모음 발음과 끊이지 않는 문장의 흐름)을 훈련하고 단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노래를 배울 때 음정과 박자는 피아노의 도움을 받아 기억 속에 저장하고 발음과 문장은 음정 박자 없이도 술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따로 정확하게 익히고 난 후 노래에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가사와 문장이 노래를 이끌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소리가 정확한 발음과 함께 멈춤 없는 문장의 다이내믹을 타고 나올 것이다. 물론 정확한 발음과 막힘없는 문장의 흐름이라는 테크닉적 방법은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확실히 이해할 때 더 집중하기 쉬워질 것이다.
 

이런 이론적 바탕을 수업과 연습을 통해 실험하는 과정이 Recitarcantando-Cantarparlando (노래하며 연기하기-말하면서 노래하기)라는 이름으로 베르가모 도니제티 국립음대 Corso libero 과정에 개설되어 있다.
 

이 과정은 1년 과정과 2년 심화과정으로 되어 있는데 1년에 30회의 수업을 이수해야 하며 담당 교수인 니노 교수님이 1년에 3회 한국에 나오셔서 수업을 진행하시고 매년 2월과 7월 중엔 베르가모 도니제티 국립음대에서 마스터클래스와 연주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럼 이제 이 테크닉이 어떻게 고안되었는지 알아보자.
 

니노 교수님이 이 발성법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세계적 베이스 가수인 Nicola Rossi Lemeni 때문이었다. 니콜라 로씨 레메니는 뉴욕에서 마리아칼라스를 발탁하여 당대 유명 지휘자였던 그의 장인 툴리오 세라핀에게 소개해 이태리 무대에 데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음악 외에 철학, 문학 등 다른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던 니콜라 로씨 레메니는 니노 교수님이 로마에서 변호사와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연극 속에서 성악가 역할을 맡았던 그의 연기를 보게 된다. 그 후 나이를 초월한 예술적, 학문적 친구로 지내며 친분을 이어가던 중 레메니는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학에 초빙교수로 가게 되는데 미국으로 떠나기 전 니노 교수에게 "성악의 세계는 미스터리해서 노래하는 방법에 어떤 공식이 존재하지 않고 각자 가진 소리와 음악적 감각, 느낌에 따라 소리를 내는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세계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표준적으로 적용되는 수학공식과 같은 성악 테크닉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해법이 극 속에, 대사 속에 있을 거라 확신한다. 너(니노 교수)는 음표에 매몰되지 않은 연극계에서 온 사람이니 그걸 연구할 수 있을 거 같다. 네가 한번 해보겠니?" 이 일화를 계기로 본격적 연구와 실험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로마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강의도 했던 변호사 출신 니노 교수는 그 날 이후로 본인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을 예감하며 각종 문헌을 찾아 스스로 실험하고 증명하는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느 날 몰입 끝에 말로 표현된 언어와 문장의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한 Cantarparlando 발성법의 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아직 이론을 완성하기 전 스스로 실험하는 단계에서 베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 피날리스트까지 올라 테너 까를로 베르곤지의 추천으로 파르마 극장에 베이스 오페라 가수로 데뷔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직 미완으로 남은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과감히 포기한 일화도 있다.
 

Recitarcantando-Cantarparlando 테크닉의 이름은 최초의 오페라 작곡가 몬테베르디의 문헌에 나오는 단어에 영감을 받아 붙여졌는데 몬테베르디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드라마(비극)를 음악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카메라타의 멤버로서 그의 작품 '오르페오'는 최초의 오페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문헌에서 Recitarcantando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글의 초입에서 얘기했듯이 '노래하면서 연기(연극)하기'라는 뜻이다.
 

그 이전에 유행하던 성악은 여러 파트의 선율과 많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가사가 교차하는 다성 음악이었는데 그 특성 때문에 정확한 가사 전달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악기의 반주 위에 한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모노디'라는 형식이 생겼는데 그것은 가사전달과 감정표현의 혁신을 가져왔다. 모노디 형식의 독창곡과 동시에 같은 가사를 노래하는 합창형식(모노포니)은 몬테베르디의 오페라의 중심기법이 되었고 이전의 대위법적 작곡에서 가사와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새로운 작곡기법을 발전시키며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성기를 가져온 토대가 되었다.
 

앞서 기악과 성악의 차이를 잠깐 언급했지만 노래는 유일하게 언어가 있는 음악이고 유일하게 몸 안에 악기가 있으며 그 악기는 멜로디를 표현하기 위한 건반이나 현, 파이프 형태로 만들어진 기관이 아닌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뇌신경과 발음기관, 호흡기관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신체기관이다.
 

우리는 신체기관으로서 존재하는 목소리 악기의 특징과 구조, 작동원리를 알고 그 원리에 역행하지 않는 방법으로 편히 다룰 때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감동을 주는 노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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