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휘시론(時論)] 글을 탓하다

김도형 0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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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집 '꽃이라는 말이 있다' 출판기념회를 가진 신휘 시인

 

신문 글은 논설문적 성격이 짙다. 논설은 주장이며 설득이다.


한가지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놓고 왜 그런지를 주장해 독자를 굴복시키는 것이 신문글의 요점이다.

 
그럼 글의 설득 즉,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주관적인 것을 객관화하는 논리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논리전개는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가. 집중이다. 하나의 논지를 두고 왜 그럴 수 밖에 없느냐를 파고드는 것인데, 거기에는 경우에 따라 예시와 비유같은 것이 효과적 수단으로 동원되어지기도 한다.


결국 논설문은 적절한 예와 비유를 섞어가며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시켜내는 글이란 소리이다. 좋은 글이냐 나쁜 글이냐는 읽는 이들이 판단하겠지만 논박이 가능한 글은 결코 좋은 글이라 볼수 없다. 그만큼 논리의 구멍이 허술한 탓이다.

조용히 초야에 묻혀 사는 내가 왜 이런 소릴 느닷없이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구미의 명색이 식자라는 이들과 신문쟁이의 글이란게 한심해서 그런다. 이건 어디 대학생 논술 실력도 되지 못한 글이 수두룩하다.

 
좋은 글은 쓸 내용을 제대로 정제해 쓸 때 나오고, 그저 보통의 글은 쓰나마나 한 글을 쓸 때 듣는 독자평이다. 그렇다면 가장 못한 글은 무엇일까? 읽으나마나 독자에게 혼란만 더하는 글이다. 글의 문맥이 안맞는다는 것은 문의 아귀가 덜렁되어 서로 맞지 않는다는 소리다.


글의 아귀부터 맞추자. 공부하는 학생들이 보고 배울까 심히 우려스럽다. 퍽이나 우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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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글은 성격이 다 다르다. 기자수첩, 논설, 칼럼, 시론 등 다 다르다.

 

예를 들자면 한국유통신문 편집장 글의 경우, 대체로 무난하나 단 하나, 부사어가 많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 부분만 고치면 독자들로부터 더욱 인정을 받을 것이다.

 

경북미디어뉴스의 광두칼럼의 경우 부드럽다. 좋다. 사설은 논설의 전형이며 칼럼은 그보다는 자유롭다. 기자수첩의 경우는 현장성으로 봐야한다.

 

주제가 넓은 글은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높다. 글감은 작고 구체적인 것일 수록 좋다. 가령 나무면 나무, 꽃이면 꽃에 한정될 때 글의 집중력은 높아진다. 인생이니 사랑이니 하는 주제는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하는 글감이다.

 

내공이 따라가지 못하면 쓰나마나한 관념적 수준의 글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결국 산을 태우는 것은 검불이지 산자체가 아니지 않던가.

 

마지막으로 독자들의 수준을 늘 염두에 둬야만 한다. 신문글은 읽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부담이 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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