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라불교 최초 전파지로 알려진 구미시 도개, 국내 최대의 불교문화관광단지 조성 필요

김도형 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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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산 정상에서 바라다 본 신라불교 최초 전파지를 품은 낙동강 유역 

 

신라불교초전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신라는 없었다?
신라불교의 성지 이전에 고구려 불교 계승지로서의 문화적 발상의 전환 필요

 

(전국= KTN) 김도형 기자= 천년고도라고 불리며 신라의 역사 문화를 품고 있는 여행지인 경주에 위치한 보문관광단지(普門觀光團地)는 대한민국의 경상북도 경주시 보덕동에 위치한 관광지로, 보문호수를 중심으로 호텔과 리조트 등 관광휴양지와 우양미술관 그리고 골프장과 문화레저시설 등을 갖춘 국내 최대의 관광 단지이다.

 

보문관광단지는 1971년 8월에 정부에서 경주관광개발계획을 확정했고, 1974년에 착공해, 1975년에 보문관광단지 지정 및 경북관광개발공사를 세웠고, 1979년 4월에 1단계 공사를 마치고 개장하였으며, 전체 면적은 총242만평으로 개발 면적은 210만평이다.

 

보문관광단지의 중심격인 보문호수는 경주시 동쪽 명활산 옛 성터 아래 만들어진 50만평 규모의 인공호수로 주위에는 국제적 규모의 호텔과 경주월드 등을 각종 위락시설과 공원시설이 갖춰지고 있다. 호수를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 길이 정비되어 있으며 호수 주변에는 유람선 선착장, 보문상가, 육부촌, 골프장, 우양미술관, 야외공연장 등이 있고, 봄에는 벚꽃이 만개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경주 보문관광단지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관광보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구미시는 수려한 낙동강과 태조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지난 2011년부터 경상북도 3대문화권문화관광기반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구미시 도개리 일대 부지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지 1천600년만에 이를 기념하는 공간을 조성해 불자들과 지역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경상북도 3대문화권 문화관광기반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사업은 지난 2011부터 ‘신라불교문화초전지’를 성역화하는 사업으로 추진돼 왔다. 도개리 모례가정 일대 11,167평 부지에 건축연면적 약 767평 규모에 국비 131억원과 도비 17억원, 시비 52억원 등 총 200억원을 들여 2017년 10월 13일 완공된 한옥과 초가 집 등을 조성해 교육과 불교문화체험 공간으로 이용해 오고 있다.

 

한편으로 필자는 유서 깊은 ‘신라불교초전지’라는 문화적 바탕 위에 아도화상이 세운 천년고찰로 알려진 도리사라는 출중한 문화자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주 불국사에 비해 조명받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경북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태조산에 위치한 도리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한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아도와 관련된 창건설화가 있으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도리사가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경주 토함산에 있는 ‘부처의 나라’란 뜻의 불국사는 통일신라 시대 김대성이 지은 절로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겠다는 뜻을 담아 만든 절이다.

 

불국사는 신라 시대 불교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세계에서 인정한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진 소중한 우리네 문화유산이다.

 

부처의 나라라는 이름에 맞게 불국사 곳곳에는 부처의 나라를 나타내는 건축물들이 산재하며 이는 신라 장인들이 30여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바친 결과이며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 조차도 완성된 불교문화예술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불국사를 보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했다. 부처의 나라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만드는 불국사.

 

하지만 외형적인 모습보다는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추구하는 동양인들의 사상을 살펴봤을 때, 필자는 불국사 보다는 도리사의 가치가 더 드높다고 생각한다.

 

순교자의 땅, 도개

 

최근 구미시 도개면에 위치한 신라불교초전지 일대를 탐방해 본 필자의 느낌은 태조산이 바라다보이는 명승지인 모례가정 인근에 자리잡은 터가 사뭇 남다르다. 이곳은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온종일 따스한 햇볕이 내리 쬘 것 같은 온화한 지형적인 특징과 인적이 드문 마을의 고요함이 옛적 신라역사의 한 숨을 느끼게 만든다.

 

경북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마을 중앙 위치한 오래된 우물인 모례가정은 현재 경북문화재자료 제296호로 ‘모례’가 사용한 것으로 전해져 전모례가정(傳毛禮家井)이라 불리며 모례장자샘, 모례가정(毛禮家井), 모례정 등으로 불렸다. 일선군의 지역 유지였던 모례는 신라 최초 불교신자로도 알려져 있다. 넓은 농토와 많은 가축을 길러 모례의 집에는 항시 사람들이 오갔다. 고구려을 오간 모례는 고구려 스님들의 영향으로 불심이 깊었다고 한다.

 

법보신문에 따르면 법흥왕 이전, 이차돈이 참형을 당하기에 앞서 이미 정방과 멸구자 등 고구려 스님들이 모례의 집에서 불법을 홍포하다 순교한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의 속성상 역사의 기록은 극히 일부분에 그치기에 기록에 남지 않은 스님들의 순교는 더욱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관점에서 신라의 불교전파는 다수의 고구려 무명 스님들의 순교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스님들이 목숨을 걸고 신라로 들어와 불교를 전하려 했던 이유는 순수한 종교적 염원이었고 끝없이 계속된 고구려 스님들의 전법에 신라는 점차 불교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신라불교는 왕의 최측근인 이차돈의 순교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국교로 인정받게 됐으며 이는 고구려 스님들이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지 100년만의 일로 지방이 아닌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불교문화의 번성이 시작된 것이다.

 

아도화상이 신라불교를 최초로 전파했다는 설이 지역에서는 신봉될 수 밖에 없으나, 아쉽게도 신라의 수도는 경주였다. 또한 화려함을 추구한 불교는 경주의 왕족과 귀족들의 문화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발전했다.

 

신라불교 사상의 발달사를 살펴보면 원효대사의 아미타신앙(정토신앙)보급으로 불교의 대중화에 공헌했고, 특히 의상대사가 창시한 화엄종은 통일 직후 신라 사회 통합에 기여했다.

 

통일 전 불교의 종파는 자장을 중심으로 하는 계율종(戒律宗)이 유행해 국민사상의 통일에 큰 몫을 담당했다고 하며 의상대사의 화엄종은 원융사상(圓融思想)을 바탕으로 전제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와 부합되었기 때문에 귀족사회에서 크게 번성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신라불교 사상의 변천사 역시 의미가 있으나 누가 뭐래도 신라불교의 정신적 기원은 단연코 구미의 도개 모례가정 신라불교초전지라 할 수 있다.

 

왜 불교계에서는 신라불교초전지 성역화에 미온적일까?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의 성지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도시들 가운데 하나인 예루살렘을 비롯해 동양의 불자들이 찾는 티벳 성지 순례 지역인 카일라스 산(수미산).

 

우리나라에도 신라불교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신라불교초전지가 있음에도 생각보다 많이 찾지는 않는다. 신라불교의 시작과 정신적 기원이 역사적으로도 분명히 남아 있는 고장임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의 관심과 반응은 그다지 뜨거워 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계에서 논의를 거쳐 십시일반 힘을 모아 모례가정과 신라불교초전지를 불교문화의 성역화 장소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구미시 도개면 신라불교초전지 인근에는 도개IC와 상주IC 등 교통망이 발달해 있고 구미IC에서도 30분 거리며 추후 의성과 군위 신공항 유치에 따른 관광문화 파급효과 역시 면밀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는 지리적 이점이 풍부한 곳이다.

 

단양에 위치한 천태종 본산인 구인사와 같은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웅장한 불교도시처럼 도개 신라불교초전지의 활용도 또한 불교문화의 재도약을 위해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곳이다.

 

또한 낙동강과 태조산 그리고 비봉산을 낀 신라불교초전지 일대는 경주 보문관광단지와 같이 각종 호텔과 리조트 그리고 문화레저시설과 미술관 등이 함께 자리 잡을 수 있는 관광문화산업의 훌륭한 기본 바탕을 가지고 있다.  


신라불교초전지 앞으로 보이는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에 엵힌 역사와 후삼국 통일의 얼이 서린 유서깊은 장소이다.

 

태조산의 유래는 일선부의 동쪽 13리에 고려 태조왕건의 어가가 머무르던 곳이기 때문이었다고 하며 후삼군 격전지였던 이곳 태조산은 팔공산 동오수에서 견훤에게 크게 패한 왕건이 선산지방에서 군사를 모았다.

 

이때 일선김씨 시조인 김선궁과 해평김씨 시조인 김훤술 등이 도와 냉산에서 숭신산성을 쌓고 낙산3리 칠창부락에 일곱개의 군창을 두고 견훤과 싸워 크게 승리르 거둔 왕건은 낙동강을 건너는 나루를 '여진(나의나루)'이라 명하여 지금까지 낙산3리에 지명이 남아있다. 또한 견훤의 아들 신검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니, 그 접전지가 지금의 고아읍 일대로 관심리 앞 들을 '어갱이', 송림이 앞 들을 '발갱이', 괴평리 앞들을 '점갱이'라 불리고 있으며 이들 평야의 전투에서 신검을 사로 잡고 항복을 받아 삼국 재통일을 했다는 유래가 전해온다.

 

이처럼 삼국을 아우르는 역사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에 새로운 문화적 번영과 도약을 위한 생명의 숨길이 불어 넣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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