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질랜드 청소년 베이핑 감소와 한국의 과제. 니코틴 시대의 새로운 균형점

사회부 0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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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뉴질랜드 청소년들의 베이핑(전자담배) 사용이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최근 ASH(Action on Smoking and Health)의 연례 조사 결과는, 단순한 건강 지표의 변화를 넘어 사회적 전환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매년 3만 명 규모의 Year 10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 조사는 청소년 니코틴 사용의 변화를 가장 정확히 포착하는 데이터로 꼽힌다. 특히 이번 결과는 뉴질랜드가 청소년 니코틴 문제에서 하나의 ‘전환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며, 동시에 한국이 안고 있는 과제들을 더욱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뉴질랜드에서는 정기적 베이핑(weekly vaping) 비율이 최근 2년 사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세 배 가까이 급증하며 20%를 넘어섰던 수치는 최근 들어 눈에 띄게 하락했다. 하루 한 번 이상 사용하는 일상적 사용자(daily vapers) 역시 2022년 10.1%에서 올해 7.1%로 떨어졌다. “평생 한 번이라도 베이핑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 비율도 3분의 1 미만으로 줄어들며, 전체적인 감소 흐름이 분명해졌다. ASH 의장은 그 이유를 “베이핑이 더 이상 ‘쿨한 것’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때 또래문화 속 ‘상징’이었던 전자담배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된 것이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이와는 다소 다른 궤적을 그린다. 한국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2023)에 따르면, 13~18세 청소년의 현재 흡연율은 남학생 5.6%, 여학생 2.7%로 꾸준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자담배 사용 경험 역시 2015년 약 9.78%로 정점을 찍은 뒤 최근 몇 년간 다소 안정되거나 완만한 감소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23년 기준 청소년의 최근 전자담배 사용 비율은 약 7.25% 수준으로 보고되며, 이는 뉴질랜드처럼 급격한 증가세가 지속되는 단계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감소 또는 안정”이라는 표면적 흐름만으로 한국의 상황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학교 주변 편의점 접근성, 온라인·SNS 기반 마케팅, 디자인 중심의 제품 전략, 익명 배송 등 다양한 요소가 청소년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뉴질랜드가 강력한 규제와 사회적 인식 변화라는 두 축을 통해 청소년 베이핑을 ‘유행의 퇴조 단계’로 밀어내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다양한 니코틴 제품을 둘러싼 규제 공백과 제도적 혼선이 남아 있다.


뉴질랜드의 감소세는 정부 규제가 일정 부분 성공적으로 작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맛(flavor) 제한, 판매점 인증제, 니코틴 강도 규제, 학교 주변 판매 제한 등 다층적 정책은 청소년의 접근성을 구조적으로 줄이는 데 실질적 효과를 냈다. 그러나 뉴질랜드 전문가들은 지나친 규제가 성인 흡연자에게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경고한다. 실제로 뉴질랜드의 청소년 흡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약 1%대까지 떨어졌다. 이는 성인 흡연자의 금연 도구로서 전자담배를 일정 부분 인정하며 “청소년 보호”와 “성인 해악 감소”를 분리·조화시킨 정책 덕분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뉴질랜드의 베이핑 감소가 모든 집단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조사에서 마오리 청소년의 일상적 베이핑 비율은 16.5%로 전체 평균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건강 행동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지점은 한국에서도 동일한 맥락을 가진다. 청소년건강행태조사와 여러 후속 연구들은 저소득층, 가정 해체 배경, 학교 밖 청소년, 보호시설 거주 청소년 등 사회적 취약계층일수록 흡연·전자담배 경험이 유의미하게 더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한국과 뉴질랜드 모두 ‘니코틴 사용의 사회적 편차’라는 구조적 과제를 여전히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뉴질랜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또 하나의 위험은 ‘니코틴 제품 다변화’이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구강 니코틴 제품(니코틴 파우치, 젤리형, 스프레이형 등)이 청소년 사이에서 회색지대 형태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 역시 동일한 흐름을 이미 경험하고 있으며, 일부 제품은 식약처 규제 사각지대에 놓이거나 해외 직구·SNS를 통해 유입되고 있다. 뉴질랜드 학계는 이를 “베이핑 감소가 곧 니코틴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경고로 읽는다. 결국 “스모크프리(smoke-free)”에서 “니코틴 프리(nicotine-free)”로 정책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이어진다.


뉴질랜드의 사례가 한국에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청소년 니코틴 문제는 단일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히 금지하면 불법(underground) 시장이 생기고, 규제를 완화하면 청소년 접근성이 증가한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 문화의 흐름과 사회적 인식 변화, 성인 금연 정책과의 분리·조화, 그리고 취약계층에 대한 표적 지원이 하나의 정책 체계 안에서 조화롭게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베이핑의 ‘문화적 매력’을 줄이는 사회 분위기와 성인의 해악 감소 정책이 동시에 이루어졌고, 그 결과 청소년 사용률이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궐련담배·전자담배·가열담배·신종 니코틴 제품이 분절적으로 관리되는 구조 속에서, 청소년 보호와 산업 규제 사이의 균형점을 찾지 못한 채 정책이 진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욱이 소득·교육·가정 환경 등 사회적 취약성이 청소년 니코틴 문제를 강화하는 구조적 요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결국 청소년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그 자체로 사회의 건강 문화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뉴질랜드가 보여준 변화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지만, 이를 그대로 한국에 가져다 놓는다고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 특유의 교육 환경, 산업 구조, 소비 문화, 지역사회 격차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뉴질랜드의 전환은 분명히 말한다. 청소년 니코틴 문제는 단순한 금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어떤 건강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의 질문이라는 점을.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 한국 사회가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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