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숨결, 뉴질랜드의 메탄 감축이 던지는 희망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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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제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성찰을 요구하는 근원적 질문이 되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사는 모든 방식이 지구의 한계를 시험해왔다. 산업화의 엔진이 성장의 상징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배출의 부채가 미래 세대의 짐이 되었다. 그 거대한 부채의 중심에서, 뉴질랜드라는 작은 남태평양의 섬나라가 이 문제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마주하고 있다.


푸른 초원과 흰 양떼의 풍경으로 상징되는 나라, 뉴질랜드는 전력의 8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청정국가다. 그러나 이 면모 뒤에는 역설적인 진실이 숨어 있다. 이 나라의 온실가스 배출 절반 이상은 농업에서 비롯되며, 그중 상당 부분이 반추동물의 장내 발효로부터 나온 메탄(CH₄)이다. 대기 중 체류 기간이 12년으로 짧지만, 온난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27배에 달하는 강력한 기체. 그러므로 이 문제는 뉴질랜드의 기후정책에서 무거운 과제'다.


정부는 이를 단순히 세금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2019년 제정된 ‘Zero Carbon Act’는 이산화탄소와 달리 생물학적 메탄을 별도 관리 대상으로 삼아 감축 목표를 설정했다. 그 핵심에는 ‘He Waka Eke Noa(함께 타는 배)’라는 독특한 이름의 협의체 구상이 있다. 농가, 정부, 과학자, 그리고 산업계가 하나의 배를 타고 같은 항로를 그리는 이 제도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참여형 기후 거버넌스의 실험이다. 그 속엔 ‘정책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의 농민’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담겨 있다.


이제 메탄 감축의 실험은 초원에서 실질적으로 시작됐다. 3-NOP 억제제는 반추동물의 발효 과정에서 메탄을 생성하는 효소를 차단하며, 해조류 첨가 사료는 위 속 미생물의 균형을 재조정한다. 이러한 기술은 20~30% 감축 효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일부 연구는 생산성 저하 없는 결과를 내고 있다. 과학의 도움으로 ‘감축’이 ‘손해’를 의미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춘다면, 뉴질랜드의 도전은 단지 기술실험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라는 이름으로 묻혀버린 농민들의 목소리를 어디까지 반영하느냐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농가는 세대마다 땅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기후정책은 정부 문서 속 조항이 아니라, 땅의 기운으로 체감되는 일상의 변화다. 가뭄의 길이가 달라지고, 목초의 성장 패턴이 변하며, 물의 질이 변해가는 현실을 누구보다 먼저 느낀다. 그러나 감축 목표와 세제 조정, 국제 규범의 압력은 때때로 이들의 현실과 충돌한다. 정부가 내놓은 ‘분리목표 체계’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여전히 농민들이 느끼는 절박감과 생계의 무게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고 뉴질랜드의 길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완벽하지도 않다. 탄소중립이란 구호와 경제적 지속가능성 사이의 간극, 전통적 생산방식과 기술적 전환 사이의 긴장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He Waka Eke Noa’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공동의 항해는 분명 아름답지만, 그 배 안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의 속도와 방향이 제각각일 때, 항로는 흐트러질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뉴질랜드의 실험은 ‘희망’과 ‘위험’을 동시에 품는다.


뉴질랜드 정부는 메탄 감축을 단기적 온도 상승을 늦추는 수단으로 보면서도,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배출 절반을 차지하는 농업 부문을 규제의 사각지대에 두면 2050년 탄소중립의 약속은 공허한 선언으로 끝날 수 있다. 과학적 실현 가능성과 산업 수용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말은 명분상 옳지만, 그 ‘균형’이 때로는 행동의 지연으로 이어진다. 기후위기는 지금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의 시도는 세계가 주목할 만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이들은 ESG의 노래를 정책과 현장으로 옮겼다. 환경(E)은 단지 탄소 감축이 아니라 생태계의 회복을 뜻한다. 사회(S)는 농민과 시민이 함께 짊어지는 연대이며, 거버넌스(G)는 투명성과 신뢰의 정치다. 뉴질랜드의 메탄 감축 구조는 이 세 가지 축이 실제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다. 온실가스 감축이 토양의 건강, 수질 개선, 생물다양성 회복으로 이어지는 ‘긍정의 사슬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발전적 비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뉴질랜드는 글로벌 메탄 서약(Global Methane Pledge)에 가입하며 2030년까지 30% 감축을 약속했지만, 감축의 속도가 실제 국제 기준에 비해 다소 완만하다. 또한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는 기술 혁신만으로 전환되기 어렵다. 과감한 농정 개혁, 소비자 행동 변화, 기후윤리에 입각한 수출 전략 등까지 포함한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청정한 이미지’에 안주하기보다, 청정함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뉴질랜드의 초원은 여전히 희망의 상징이다. 그곳에서는 ‘환경의 회복’이 ‘경제의 쇠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연구실의 데이터가 농장의 감수성과 맞닿고, 과학자의 실험이 농부의 일상과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지속가능한 변화’의 가능성을 본다. 그것은 기술의 혁신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에서 비롯된다. 자연과 인간, 과학과 농업, 규제와 참여가 서로 신뢰할 때, 지속가능성은 추상적 목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된다.


뉴질랜드의 초원 위에 흩날리는 바람을 생각해본다. 그 바람은 2050년의 약속이나 국제회의의 선언문보다 솔직하다. 바람은 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을 읽으려 할 때,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뉴질랜드의 메탄 감축 여정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변화, 즉 “같은 배를 탔다는 자각”이다.


기후위기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문제이며, 어디에도 완벽한 모범답안은 없다. 그러나 뉴질랜드의 경험은 보여준다.  작지만 용기 있는 변화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초원의 숨결이 바뀌면, 지구의 숨결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 변화는 거대한 제도보다, 작지만 진심 어린 참여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어떻게 줄일 것인가’보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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