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빌딩숲 사이로 찬란히 내비치던 햇살의 추억을 간직한 제85회 서울동아마라톤대회를 떠올리며 <한국유통신문.com&…

선비 0 3,318
2014년 3월 16일은 나에게 있어 지난해 춘천마라톤에 이어 두번째로 42.195km에 도전하는 영광스러운 날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참가했던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대회에서의 영광스러운 순간이 바로 엊그제 일 같이 생생했는데 또다시 똑같은 가슴 벅찬 환희를 맛보기 위해 서울동아마라톤대회 전 몇 일 동안을 마음과 몸을 다스리며 조심조심 대회날이 다가오기만을 손곱아 기다렸다.
 
바쁜 일과 틈틈이 시간을 내어 동아마라톤대회 준비를 하기위해 훈련 한다고 했지만 늘, 그 양은 모자랐고 지난해 춘천마라톤대회를 준비할 때보다 그 강도면에 있어서 덜하면 덜했지 성실히 훈련 못한 자책감이 매번 들기도 했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는 무리하게 훈련을 하면 안된다는 선배님들의 경험담을 새겨 듣고 마음 푸근히 쉬었던 것 같다. 그래도 춘천마라톤대회도 생각보다 좋은 기록으로 완주했고 그 이후 30km 장거리 훈련도 몇 번 해서 자신감이 아닌 자만감이 내 머리와 마음속에 가득찬 느낌이었다.
 
어쨌든 시간은 점점 다가 왔고 대회 전 토요일 아침, 지란지교 주현이와 함께 테니스 난타를 치며 무리하지 않게 몸을 움직이면서 나름 대회 전 날의 몸 상태를 점검 해 보았다. 친구와 아침 운동 뒤면 늘 해장국집으로 가 뚝배기에 반주를 걸치는 낙이 있는지라, 이날도 어김없이 운동 뒤 즐거운 아침 식사를 했다. 대회 전날이라 친구도 걱정을 하며 평소에 마시던 양의 반 정도만 마시자고 미리 얘기해 주었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평소의 술잔에 반정도로만 서로 따라주며 즐거운 얘기로 아침을 마무리 했다.
 
친구와 헤어진 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경록이와 1학년인 딸 수희에게 다음주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될 발명품 제작을 함께하기로 했던 약속으로 인해 은근히 마음이 무거웠기도 했다. 내일이 바로 내게 있어 아주 중요한 동아마라톤대회인데, 발명품 만들기를 제대로 하려면 한나절을 씨름해야 할 것 같아 시간이 지날 수록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은 3년 연속 발명품을 학교에 제출해 입상을 한 바가 있어 이번에도 신경을 써줘야만 했고, 딸은 올해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기에 아빠가 딸에게 선물하는 의미로 꼭 발명품을 제출해 입상을 하게끔 만들어 주고 싶은 욕심이 들기도 했다.
 
만들기를 하면서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고 발명품 제작을 한시라도 빨리 끝낸 후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나도 또한 일찍 잠 자리에 들어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온통 내머리속에 스쳐 지나갔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대회 전날을 앞두고 모친께서 돌아가신 회원이 있어 이중삼중으로 대회 전날의 심경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 갔다.
 
동아마라톤대회를 앞두고 있는 전날은 마치 폭풍전야처럼 고요했고 비장한 느낌이 들었다. 결전을 앞둔 용사가 전장터에 나가는 심경이었고 떠나기 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해주고 싶어 동네 마트에 들러 마침 할인된 저렴한 가격의 손질된 닭고기를 4팩이나 사들고 집으로 왔다. 후라이팬 위에 닭고기들을 올려 놓고 적당히 간을 맞추어 맛깔스럽게 구워주니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이었고, 주말에도 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집사람과 처제에게 맛있는 것 해 줄 테니 일찍 들어 오라고 문자를 보내주었다.
 
아이들에게 닭고기 요리를 해준 뒤 함께 식사를 했고 대회 전날의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는 신성한 의식인 마냥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기도 했다. 밤 10시경에 깨워 달라고 아들에게 부탁을 해 놓고 잠자리에 들어갔다.
 
아내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어 눈을 떠보니 밤 10시 30분 경이었고, 얘기 했던 대로 닭고기 요리를 해주니 아내와 처제는 맛있게 먹으며 수다를 떨고 여자들 특유의 흥겨움으로 즐거운 토요일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잠이 너무 부족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눈 좀 붙이면 되겠지 하며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지난 해 춘천마라톤 대회를 위해 춘천으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잠은 제대로 오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새벽 2시50분에 시청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모이기로 했고 나는 새벽 2시에 나갈려고 마음을 먹었다.
 
집사람과 처제에게 요리를 해준 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려고 해도 더이상 잠이 오질 않았다. 게다가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 있어 미리 작업을 해두어야 하는 관계로 신경을 쓰다보니 나갈 시간은 점점 다가 왔고 언제 짬을 내 잠을 자야 할지 이제는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 되었다.
 
미리 준비해 둔 가방에 마지막 준비물들을 점검하고 현관 입구를 나섰다.
 
아뿔싸!
 
늘 같은 자리에 나두었던 차 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차 키를 못찾게 되면 차안에 실어 두있던 동아마라톤대회 완주 후 사람들에게 제공할 간식을 만들 준비물품들을 하나도 못가져 가게 되고, 사람들은 허기진 배로 나머지 사람들이 완주할 때까지 측은히 기다려야 되는 불상사가 발생 될 것이 눈에 선하였다.
 
우리집은 빌라 4층이었고 차는 1층 아래에 있었다. 빌라 사람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주말 새벽에 계단을 너댓번은 미친듯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혹시나 집으로 올라오는 도중에 차 키를 떨어뜨렸을 가능성과 차안에 두고 내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진땀을 빼게 되었다.
 
분명히 나의 습관상 차 키는 늘 온전히 제자리 두기 때문에 더욱 답답했다.
 
대회 출발을 앞두고 이 어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는지 캄캄한 밤하늘이 새하얗게 되는 느낌이었다.
 
구미시청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는 새벽 3시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혹시 나로 인해 차질이 생기면 어떻게할까 하는 초조함이 더욱 눈 앞을 가렸다. 차 키를 찾기 위해 정신 없이 위 아래를 오가니 어느새 30분여밖에 시간이 안남았다. 나는 침착하게 사태를 수습해야만 했고 가슴을 진정시키고 냉정히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차 키 찾는 것은 포기하고 차문을 열어 달라며 긴급출동 서비스를 요청했다.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사람이 숨넘어 갈듯한 시늉을 하며 사태의 긴박함을 긴급출동기사에게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 연기를 했다. 그래도 어느정도 시간이 걸렸고 버스 출발 시간까지는 20여분이 남게 되었다.
 
기사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한 뒤 차안의 많은 짐들을 긴급출동 차량에 옮겨 실었다. 경황이 없고 급박한 상황이라 막무가내로 기사에게 차문을 열게 강요하다시피 짐을 옮겨 실게 되었다.
 
그 많던 짐들을 양손에 든채 순식간에 혼자 왔다 갔다하며 다 나르게 되었고 옆에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긴급출동 차량기사는 나의 행동에 놀랐는지 차 밑에 내려 논 짐들을 차곡 차곡 자신의 차 안으로 정리해 주었다. 게다가 초조해 하는 나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구미시청까지 말그대로 긴급하게 달려가 주었다.
 
제 시간에 안온다고 복규 감독님은 걱정을 하며 전화가 오는 상황이었고 다행히 5분 뒤에 도착할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구미시청 주차장에 들어서자 때마침 구미시육상연합회 정근철 사무국장으로 부터 전화가 왔고 준비 된 버스 3대 중 1호 차로 가 짐을 풀어 놓게 되었다.
 
긴급출동 차량기사는 짐까지 차곡차곡 잘 내려 주었고 경황이 없어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못해 언제고 찾아 뵙겠다고 인사를 드리니 혹시 본사에서 전화가 오면 잘 대답해주면 된다며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제일 처음 출동해 만났을때 받았던 명함을 살펴보니 현대해상 하이카서비스 구미 송정 지점의 남혁 엔지니어라고 적혀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동아마라톤대회 참가도 못하고 포기할까 했던 마음이 기사회생으로 되살아 난 기분이었고 온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나는 올해부로 구미마라톤클럽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지라 쉴겨를도 없이 내가 맡은 3호차 버스내에 회원들이 다 왔는지 확인해야만 했고, 방금전 까지 있었던 긴박한 상황을 모를 회원들에게 숨가쁜 목소리로 정신없이 이름을 불러내려갔다.
 
이휘복 회장님과 문영수 회원 빼고는 다 왔다.
 
휘복 회장님에게 전화를 하니 느긋하게 걸어 오시고 계셨고, 우리 클럽의 막내인 영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숨을 돌리며 서울로 가는 버스 제일 앞 자리의 이구배 형님 옆에 앉았고, 대회 전에 이 무슨 날벼락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액땜을 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 그토록 심신을 안정시켜 놓고 심기일전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이 방금 전의 일들로 완전히 수포로 되돌아 간 느낌이었다. 정신 없이 집과 차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차안의 짐을 다른 차로 왔다 갔다 순식간에 옮겼던 일들로 인해 어깨 뻐근함과 진기가 다 빠져나가 버린 기분이 들어 맥이 풀린 상태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찾지 못한 차 키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차 키가 어디에 틀여 박혀 있을까를 생각하며 흔들리는 버스내 좌석에 앉아 곰곰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늘 놔뒀던 자리에 분명히 뒀다고 생각 들었다.
 
너무나 당황하여 의외로 눈에 안보였을 거란 생각을 해보며 몇시간 뒤면 다가올 동아마라톤대회 생각만 하기로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그러나 내게 있어 쉽게 떨쳐 버릴 수 없는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기에 서울로 향해 올라가는 1시간 내내 온통 머리속은 차 키 생각만 들었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카카오톡의 신호음이 들려왔다.
 
마음 편히 잘 다녀 오라는 집사람의 카카오톡 문자일 거라 생각하며 확인해 볼 마음이 들지는 않았고 그래도 답장은 해줘야 겠다는 마음이 들어 머뭇거리다 카카오톡을 열어보니, 이럴수가!
 
내가 늘 차 키를 나두던 자리에 올려진 관상용 숯 조형물의 받침대 아래 깊숙히 차 키가 들어 가있는 모습의 사진이 카카오톡에 올려져 있었다.
 
허탈하기도 했지만 안도의 한 숨을 내 쉬게 되기도 했다. 잊어 버린 기억을 되찾은 느낌과 잃어버렸던 보물을 찾은 느낌으로 차 키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게 되 홀가분한 상태가 되어 좋았다.
 
북여주 휴게소에 새벽 5시쯤에 도착하여 준비된 찰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달리기 전에 먹는 마지막 식사이자 최후의 에너지 보급원이어서 모두들 한결같이 우물거리며 진지하게 아침을 먹는 모습이었고 나의 경우는 아침 식사 후 필수적으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봐야만 했기에 식사 후 화장실로 달려가 보니 나 말고도 줄을 서서 대기 하고 있는 사람 들 속에 섞여 10여 분간의 기다림 끝에 화장실을 다녀오게되었다.
 
큰 대회를 앞 둔 긴장감 탓에 배출할 것 도 없는 상태이면서도 은근히 화장실이 신경 쓰일 정도로 방광이 금방 차는 느낌이 들어 찜
찜한 상태의 연속이었다. 예전 부터 나는 학교시험 치기 전에도 항상 긴장이 되어 화장실에 수시로 다녀 오곤 했고, 마라톤대회 역시 중요한 시험 칠 때와 마찬가지로 별반 차이가 없는 느낌이었다. 다시 버스는 이동하여 아침 6시 30분 경에 서울 광화문이 있는 대로변에 도착했다.
 
각기 속해 있는 그룹들이 다르고 개별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즐겁게 잘 달리고 오라며 인사를 나눈 뒤 버스를 떠나 광화문 광장이 있는 쪽으로 건너갔다.
 
역시 장관이었다.
 
세종문화예술회관 앞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는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글 거려 다소 쌀쌀하다고 느껴졌던 아침의 기운이 어느새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화장실부터 찾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kt사옥이 있는 빌딩 1층 화장실에 들어가 볼 일을 보고 있다보니, 밖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일로 다투는 듯 소란스러웠다.
 
kt직원과 마라톤에 참가하려는 사람들간의 화장실 문제로 시비가 붙은 것이었다.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깐깐한 직원의 책임감 앞에 한 마라톤 동호인이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까지는 아무런 무리 없이 이용했었는데 왜 갑자기 올해부터는 그렇냐며 더욱 큰소리로 항의하는 마라톤 동호인들의 위세에 아랑곳 않고 묵묵히 서있는 kt직원의 승리로 돌아갔다.
 
운좋게도 함께 화장실에 일찍 들어간 북구미마라톤클럽의 강시광 사무국장과 나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아 괜시리 흐믓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1시간 가량의 시간 여유가 남아 넓은 광화문 광장의 여기 저기를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나처럼 동아마라톤대회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인양 흥분에 들떠 기념 촬영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리고 서울국제동아마라톤답게 외국인들도 많이 맞닥뜨렸다. 일본인사무소라고 이름붙여진 천막 주변으로는 많은 일본인들이 모여 옷을 갈아 입고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몇년 전 구미에서 열린 동호인 한일친선테니스교류전에서 일본인들과 얘기도 하며 즐겁게 테니스를 치기 위해 한달가량 틈틈이 기본일본어를 공부했던 적이 있어 많은 일본인들이 옆에 있어도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은 느낌이었고 도리어 친숙했다. 짧은 일본어를 애써 더듬거리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인에게 말을 건네보고 반가움을 표시한채 한국인으로서 동아마라톤대회에 임하는 느긋한 여유를 보여주려고 나름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동아마라톤 출발 시간은 점점 다가 왔고 서울동아마라톤은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이 다른 이유로 인해 개인이 소지하고 있던 물품들은 차량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한시 바삐 지정된 번호의 한진택배 차량으로 가져가 보관하라는 방송 멘트가 더욱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워낙 많은 인파들이라 지정된 번호가 있는 차량까지 이동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주최측에서 나눠준 59124번이 적힌 비닐 가방에 나의 옷가지와 가방을 모두 담은채 택배차량에 맡기니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홀로  덩그라니  몸만 남은 느낌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 설치된 단상에서는 동아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을 위해 달리기전 몸을 풀어주기 위한 체조를 리드하는 한 여성의 지시에 따라 흥겨운 음악과 함께 수많은 참가자들이 몸을 풀고 있었고 나 또한 그 무리에 섞여 들어가 몸 군데군데를 점검하며 몸을 풀어갔다.
 
이윽고 8시가 되어 엘리트 선수들이 먼저 출발하고 난 뒤 배동성 아나운서의 신나고 힘찬 멘트에 맞춰 그룹별로 차례대로 출발하게 되었다. 내가 속했던 그룹은 C그룹이었고 앞 그룹들이 배동성 아나운서의 신호에 맞춰 힘차게 달리는 모습들이 전광판으로 보여지기 시작해 가슴을 더욱 뛰게 만들었고 머리 위로는 방송촬영을 위한 헬리콥터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느낌으로 이리저리 빌딩 숲 위 하늘을 오갔다.
 
B그룹이 출발하고 스타트라인쪽으로 이동하며 오른편에 서있는 배동성 아나운서을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정몽준, 정세균 등 유명한 정치인들이 단상위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유명인들을 가까이서 보니 참으로 신기했다. 특히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한 박원순 시장이고 평소에 좋아하는 인물이라 자연스럽게 박원순 시장이 서있는 단상 아래로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박원순 시장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채 내 손을 잡아주며 악수를 해줬고 그의 온기로 인해 가슴 뿌듯함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참으로 멋진 날이라 여겨졌다. 내가 악수를 청한 모습을 본 많은 참가자들이 여기 저기서 다가와 정몽준 의원과 박원순 시장에게만 악수를 청했고 그에 비해 악수를 청하는 이가 없어 멀줌한 상태가 된 다른 정치인들은 겸면적은 웃음을 띄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의 총소리 출발신호로 내가 속해 있는 C그룹은 힘찬 출발을 하게 되었다.
 
바로 옆에는 내가 우리 구미마라톤클럽에 가입하기 전 과거에 서브 3를 달성했다고 하는 실력파 김경남 회원이 달리고 있었고, 먼저 B그룹에서 출발한 이철규 회원과 함께 달릴 거라며 10분 일찍 출발한 B그룹을 뒤 쫓아 엄청난 속도로 앞서 달려나갔다.
 
빌딩 숲으로 둘러 쌓인 웅장한 도심속 도로의 멋진 광경에 한껏 흥분된 나는 김경남 회원을 따라 갈까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오버페이스했다가는 완주조차도 못할 수있다는 생각이 이내 들어 욕심을 억누른채 높은 빌딩숲의 장관을 감상하며 옆의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며 달려나갔다.
 
10km를 지났을 무렵 먼저 출발했던 B그룹의 최종한 전 회장님 일행과 만나게 되었다. 오래전 구미에서 사시다가 서울로 이사 오셨다는 한 한 회원과 얘기를 나누며 달리고 계셨고, 20km에 도달하기 전까지 함께 달리게 되었다.
 
두런두런 즐겁게 얘기를 나누시며 달리는 여유가 참으로 부러웠다.
 
15km 지점에서 마려운 소변을 참을 수가 없어 볼일을 볼 기회를 엿보다가 마침 한 골목에서 뛰쳐나오는 참가자를 보고선 골목길로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주최측에서 공식적으로 이용가능하게 한 화장실이 있었고 회심의 소변을 눈채 다시 주로에 뛰어 들어 달려갔다. 
 
아기자기하면서도 변화무상하며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찬 서울시내 곳곳은 이날 달리는 모든 이에게만 허락된 마치 천국과도 같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라톤을 하지 않았더라면 태어나 어떻게 이런 장관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하는 가슴 뿌듯함이 매순간 들기도 했다.
 
20km에 도달하기 전부터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최종한 전 회장님에게 쵸코파이와 같은 먹을 것이 언제쯤 나오냐고 물어보니 20km 정도에서 나올거라며 얘기해 주셨다. 필요하면 돈을 줄테니 빵을 사먹으라시며 말씀주셨고 안심을 시켜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20km 지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허탈감에 기운이 좀 더 빠진 느낌이 들었다. 좀 더 달려 올라가 23km 지점에 도달해서야 드디어 그토록 애타게 꿈에 그리던 동그란 초코파이를 만나게 되었다.
 
주로위에서만은 이 세상 최고의 음식이었다.
 
목이 막히지 않고 채하지 않기 위해 컵에 채워진 이온음료를 든채 천천히 꾸역꾸역 초코파이를 먹으며 달려나갔다. 멈춰서 먹기에는 시간이 아까웠고 나름 페이스를 잃지 않기 위해 신경도 쓰며 에너지를 보충해야 겠다고 생각들었다. 게다가 앞으로 언제 먹을 것이 나올지 몰라 초코파이 하나를 덤으로 더 챙겨 한 손에 든채 달리게 되었다.
 
20km를 지나 어느 순간엔가 최종한 전 회장님은 보이질 않게 되었고 혼자서 묵묵히 달리게 되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달리다 보니 눈에 익숙한 유니폼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시간을 같이 달리다 보니 처음에는 누가 누구인지를 분간 못했지만서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게 되어 나의 주변에서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의 존재를 하나둘씩 알아가게 되는 시점이었다.
 
앞 전에 소변을 보았는데도 또다시 소변이 마려워졌고 한 주유소 화장실에 뛰쳐 들어가 또 한번의 소변을 보려 했지만 막상 시원히 배출되지는 않아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30km를 넘어서게 되었다.
 
한 고가도로 밑에서 꽹과리와 북을 치며 신명나게 응원을 하는 사람들 앞을 지나치는 순간, 양쪽 다리가 움찔하게 되었다. 앞에 보이는 주최측 도우미들에게 파스 스프레이를 뿌려 달라며 요청하게되었고 쥐가 날까봐 노심초사 긴장을 하게 되었다.
 
다시 뛰게 되니 다리에 고통이 밀려왔다. 조금만 속도를 높이게 되면 쥐가 날것 같은 상황이 되어 속도를 어쩔 수 없이 늦쳐야만 되었고 달리는 매순간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B그룹의 3시간 50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20km 이후부터 30km까지 달려 온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때마침 바나나가 나왔고 허기짐과 쥐의 고통으로 부터 어느정도 위로를 해주었다. 게다가 한 지역을 지날때 서울의 어떤 마라톤클럽 사람들을 위해서만 준비해둔 오렌지를 얻어 먹기도 해 에너지 보충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약산성인 오렌지를 먹어서인지 근육속의 젖산이 분해되어 아까 보다는 쥐가 덜 날 것 같은 생각도 들어 힘이 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큰 빌딩들은 어느정도 사라졌고 어느 이름모를 지역을 달리고 있었다. 35km 부근에서 마라톤선배들로 부터 말로만 듣던 건포도가 나왔고 한봉지 가득들어 있는 건포도를 입에 한가득 넣어 우물거리며 뱃속으로 다 집어 넣게 되었다. 처음 공급된 쵸코파이를 비롯해 거리에 준비된 간식들을 먹을때마다 어김없이 잠시 뒤면 뱃속까지 통증이 밀려 왔지만, 온 몸에 힘이 빠져 탈진한 상태로 달리는 것보다는 낳다고 생각해 남김없이 빠짐없이 모든 먹거리를 다 챙긴 서울동아마라톤대회였다.
 
건포도는 여태까지 먹어본 마라톤 주로 상의 음식들 중에 최고의 간식이었다.
 
에너지가 쑥쑥 솟아나는 느낌이었고 지난해 춘천대회때 느꼈던 에너지 고갈은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 였다.
 
건포도를 섭취한 후 조금 더 달리게 되니 한강대교가 보이기 시작했고 B그룹의 4시간 페이스 메이커가 옆을 지나갔다. 내가 속한 C그룹과는 10분차이가 난 그룹인지라 실제로는 3시간 50분대 페이스 메이커였다.
 
한강대교에 들어서니 비릿한 강물 특유의 냄새가 밀려왔고 오른편으로는 저멀리 잠실운동장이 보였다. 한강다리위를 달리며 B그룹의 4시간 페이스 메이커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었다. 5km정도가 남은 지점이었고 힘은 남아도는데 다리에 쥐가나기 일보 직전인 웃지못할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현상유지하기에 급급했다. 속도는 점점느려져만 갔고 지하철 공사를 위해 설치된 울퉁불퉁한 철판위의 길이 더없이 힘겹게 느껴졌다. 어느새 B그룹의 4시간 10분 페이스 메이커가 지나쳐갔다. 서브4는 물건너 간 상태가 되어 허탈하기도 했지만 남은 2km는 자칫 쥐로인해 몸이 마비되어 완주시간을 더욱 갉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위험한 구간이기도 해 제발 쥐만나지 말아달라며 속으로 간절히 바래며 조심조심 남은 거리를 달려가게되었다.
 
1km 전방에 보이는 잠실경기장이 그렇게 멀어 보일 수가 없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내 모습을 사진찍고 있는 주로위의 사람이 보였고 그 와중에도 안간힘을 쓰는 나의 모습이 어떤표정일까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잠실경기장에 들어서게 되었고 그렇게 넓어 보일수가 없는 잠실경기장이었다. 한바퀴 더돌아야만 이날의 모든 힘겨움이 완전히 마무리 된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트랙을 달렸다. 혹시나 남은 200m 구간에서 쥐로 인해 온몸이 마비된다면 굴러서라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피니시라인을 통과해 완주를 한 순간 지난해 춘천마라톤대회에서 완주했을 때처럼 강렬히 느꼈던 가슴 뭉클함과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코끝이 시큰했다.
 
잠실운동장에 들어서게 되면 누구나 다 완주하는 피니시 라인에서 내가 마치 1등한 느낌이 들었고 이 세상 최고의 희열과 성취감을 맛보게 된 순간이었다.
 
완주를 한 뒤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고 입에 맴돌았다.
 
출발하기 전 맡긴 물품을 찾기 위해 운동장 밖에 설치된 물품보관소로 이동했다. 때마침 보관소 앞에서 북구미마라톤클럽의 강시광 사무국장을 만나게 되었고 3시간 59분대의 기록으로 완주하게 되었다고 얘기 들어 같은 사무국장으로서 은근한 경쟁심으로 인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4시간 4분대의 기록으로 완주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풀코스 완주한 춘천마라톤대회에서 기록한 4시간 6분대 기록보다 2분여가량을 단축했다.
 
클럽의 사람들은 내가 서브 4을 할 수 있을거라며 기대했기에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만약 쥐가 나 온몸이 마비되었다면 완주조차도 못했을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을 들게 했다.
 
서울에 형과 동생이 살고 있어 이따끔 방문했던 서울이였지만 서울은 늘 올때마다 너무나 넓고 새로운 도시였다. 그러나 이날 달린 서울동아마라톤대회를 통해 서울이 마치 나의 발아래에 놓인듯이 정복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마라톤이 아니었다면 내평생 언제 이렇게 하루만에 서울의 곳곳을 다녀 볼 수 있었을까?
 
참으로 경이롭고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은 서울동아마라톤대회였다.
 
지금도 눈을 감고 서울동아마라톤대회, 그날의 감동을 떠올리면 서울 하늘 아래 빌딩 숲 사이로 힘차게 달려가는 나의 모습이 생생하다.
 
앞으로 매년 서울동아마라톤대회를 참가하게 될 멋진 꿈을 갖게 되었고 내 살아온 평생 이렇게 황홀하고 심장을 전율시키게 하는 마라톤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우리나라 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제85회 서울동아마라톤이여 영원하라, 그리고 내년 이맘때에 다시 누리게 될 서울 하늘 아래 빌딩숲속의 웅장함을 마음속에 간직한채 서울동아마라톤의 영광을 재현할 그날까지 나는 항상 행복한 마라톤을 즐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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