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환자를 지키기 위한 침묵의 외침. 뉴질랜드 간호사 파업과 한국의 오늘을 비추며

사회부 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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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태(교육학 박사).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지난 7월 30일 오전 9시. 뉴질랜드 전역이 잠시 숨을 멈췄다. 무려 3만6천여 명의 간호사, 조산사, 그리고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일제히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단순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로 보였다면, 그 목소리를 우리는 놓치고 있는 셈이다. 이번 파업은 환자와 동료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경고였고, 탈진한 의료인들이 내미는 구조 요청이었다.


이날, 병원과 응급실은 정상 운영되었고 응급환자 치료는 유지되었지만, 약 4,300건의 계획된 수술과 진료는 연기되었다. 그들의 침묵이 얼마나 절박한 외침이었는지는, 파업을 조직한 뉴질랜드 간호사협회(NZNO) 대표 폴 골터의 말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건 임금 문제가 아니라, ‘안전 인력 배치’의 문제입니다.”


현장의 간호사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인력 부족, 과중한 업무, 그리고 충분한 지원 없이 버텨왔다. 골터 대표는 “모든 교대조, 모든 병동에 정해진 최소 인력 기준이 있음에도 정부는 그것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레이마우스 지역의 간호 관리자 미셸 건 역시 이렇게 말했다.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나가는 사람은 많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갑니다.”


이처럼 간호사들은 단순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위한 안전망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 자신들의 건강과 삶을 걸고 현장을 지키는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의료 시스템의 붕괴가 곧 국민의 건강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마지막 신호탄이었다.


이러한 뉴질랜드의 파업 소식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한국의 현실이 떠오른다. 한국 역시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심각하다. 대형 병원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수십 명의 환자를 돌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전담 병동에서 방호복을 입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온몸이 땀에 젖은 채 근무했던 간호사들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의무’와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이 상황을 감내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은 충분히 존중받고 있을까? 노동환경은 점점 열악해지고, 퇴직률은 높아지며, 신규 간호사 유입도 원활하지 않다. ‘간호법’ 제정 논의는 정치적 대립으로 번지며 본질이 흐려지고, 간호사들은 ‘보건의료계의 허리’로 불리면서도 정작 그들의 목소리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한국 사회는 종종 간호사들에게 ‘희생’과 ‘봉사’라는 미덕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시선도 자리 잡고 있다. 뉴질랜드의 간호사들이 “이건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호는 전문직이며,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존재다. 그들에게 요구되어야 할 것은 ‘봉사정신’ 이전에, 안정적인 근무환경과 인력 충원, 그리고 존중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이번 파업이 비록 환자 진료 일정 일부를 지연시켰지만, 많은 국민들이 간호사들의 외침에 공감하고 있다. “간호사를 위한 것이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어떨까. 간호사들이 파업이나 집회를 시도할 경우, 여론은 쉽게 “환자들을 내팽개쳤다”거나 “전문직이 정치적 행동을 한다”는 식의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간호사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와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얼마나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보건의료는 단순한 직업군이 아닌, 사회 전체가 건강하게 굴러가기 위한 기본 시스템이다. 환자가 건강을 회복하는 그 과정에는 의사, 간호사, 치료사, 행정직 등 수많은 이들의 협업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단단하지 않다. 과도한 업무, 낮은 임금, 그리고 불충분한 인력 속에서 구성원들은 점점 지쳐간다.


뉴질랜드의 이번 파업은 공동체가 어떻게 자신의 건강 시스템을 함께 지켜나갈 수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부는 유감의 뜻을 밝혔지만, 동시에 “의료진의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응급 시스템은 철저히 유지하며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했다.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속에서도, 의료진과 정부, 국민이 함께 그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메시지다.


뉴질랜드 간호사들의 파업 역시 단순한 노동쟁의가 아닌 ‘돌봄’의 본질을 되새기게 한다. 환자를 지키는 최전선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먼저 그들을 지켜야 한다.


간호사는 생명과 감정을 함께 돌보는 이 시대의 조력자다. 그들이 지친다는 것은, 우리가 더는 ‘함께 돌보는 사회’로서의 자격을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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