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춘태(교육학 박사).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2025년 유럽의 여름은 더 이상 ‘뜨거운 휴가철’이 아닌, ‘생존을 위한 계절’이 되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 국가들은 연일 섭씨 40도를 넘는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으며, 세비야는 46도, 아비뇽은 44도, 로마는 42도를 기록했다. 영국마저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은 6월 평균 기온을 경신하며 ‘폭염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기후는 예고 없이 경계를 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건 이상기온이 아니라, 이제는 일상이다.”
유럽연합(EU) 산하 기후센터는 이번 폭염을 ‘기후 변화의 장기적 추세 속에서 예고된 재난’이라고 단언했다.
그들의 경고는 더 이상 과학자들의 숫자 놀음이나, 환경운동가들의 구호가 아니다. 야외 근로가 금지되고, 고령자 보호소가 가동되며, 산불이 도시 외곽을 삼키고, 학교가 조기 종료되는 현실이 그 증거다.
이제 더위는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며, 기후위기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종종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그 말은 점점 과거형이 되어가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불볕더위, 열대야, 국지성 폭우와 이상한파까지. 한국 역시 기후 재난의 그늘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2023년에는 서울과 대구 등에서 38도를 넘는 폭염이 관측되었고, 전국 곳곳에서 온열 질환자가 속출했다. 2024년에는 태풍과 장마가 뒤섞이면서 수많은 지역이 침수되고, 한편에서는 강수 부족으로 농작물이 타들어갔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자연의 일시적 분노가 아니다. 유럽의 오늘은, 곧 우리의 내일이 될 수 있다.
기후 위기의 가장 잔인한 점은, 그 피해가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령자, 어린이, 저소득층,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다. 고층 빌라 옥탑방, 에어컨 없이 버텨야 하는 쪽방촌, 더위에 취약한 재가노인들.
그들에게 폭염은 단순한 ‘더위’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공포’다. 프랑스가 수백 곳의 노인 요양시설에 냉방장치를 긴급 설치하고, 이탈리아가 법적으로 낮 시간대의 근로를 금지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2023년 기준 전국 폭염 사망자 수는 500여 명에 달하며, 매년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는 인원도 수천 명에 이른다. 특히 농촌과 도시의 빈곤층, 노년층은 이 기후 재난 앞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무너진다.
유럽 각국은 현재 기후비상대응 예산을 확대하고, 교육, 보건, 교통, 산업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기후에 대응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제 ‘단기적 대응’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 개편’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 고령자, 저소득층을 위한 ‘기후 복지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냉방비 지원, 무더위 쉼터 운영 확대, 폭염 경보 시 가정 방문 돌봄 서비스 등의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폭염은 재난이다. 그리고 재난에는 국가의 대응이 필요하다.
도시는 더 이상 ‘회색 콘크리트 정글’로 유지될 수 없다. 녹지 확장, 그늘길 조성, 친환경 건축물 확대, 빗물 저류 시스템 같은 탄력적 도시 설계가 시급하다. 파리, 바르셀로나, 비엔나가 ‘기후 대응 도시’로 재정비되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자립형 마을 지원, 친환경 교통체계 구축 등 구조적인 전환이 필수적이다. 지구 온도를 1.5도 이하로 유지하려면 지금 당장 우리의 소비 방식과 생산 방식을 바꿔야 한다.
기후 위기는 과학이 아니라 삶의 문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기후 대응 시민 교육’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단순히 ‘분리배출을 잘하자’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실천’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산불이 덮친 유럽의 마을, 열사병으로 쓰러진 농부, 쉼터에서 더위를 견디는 노인들. 이 모든 장면은 뉴스 화면 속의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고통은 한국 사회가 마주할 수도 있는 우리의 미래이자,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현실이다.
기후는 더 이상 우리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다. 경고도, 유예도 없이 바로 행동을 요구한다.
우리가 지금 결정하는 것들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계절을 바꾼다.
“지금은 더워도 어릴 땐 선풍기 하나로도 괜찮았는데…”
이 말이 추억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아직, 선택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더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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