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자담배, 청년들의 새로운 중독과 사회적 책임. 뉴질랜드와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며

사회부 0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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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뉴질랜드의 맑은 공기, 푸른 자연, 그리고 원주민 마오리 문화가 지켜온 공동체 정신은 늘 청정함과 존엄을 상징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신성한 공간마저 전자담배의 은밀한 연기로 오염되고 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오타고 대학교(University of Otago)의 로빈 퀴그 박사(Robin Quigg)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뉴질랜드 청년들 사이에서 이른바 ‘스텔스 베이핑(몰래 전자담배 흡입)’이 일상화되고 있으며, 도서관·강의실은 물론이고 마오리 전통 집회 공간인 와레누이(wharenui), 공동묘지(urupā)까지도 그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흡연 행위가 아니라, 세대와 문화, 공동체의 질서를 위협하는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조사 대상 청년들 중 절반 이상이 전통적인 담배를 한 번도 피운 적이 없음에도 전자담배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과거에는 ‘흡연 → 금연 → 대체재’의 흐름이 있었다면, 지금은 곧장 전자담배로 입문해 니코틴 중독에 빠지는 세대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전자담배가 단순한 금연 보조제가 아니라 새로운 중독 경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뉴질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변화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역시 전자담배의 확산 속도가 빠르며, 특히 청소년과 청년층에서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와 질병관리청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고등학생들의 전자담배 사용률은 일반 담배 사용률을 추월하고 있으며, 일부는 중학교 시절부터 니코틴에 노출된다. 전자담배의 작은 크기, 다양한 향(플레이버), 그리고 ‘덜 해롭다’는 잘못된 인식이 결합하여 청소년들에게 전자담배는 더 이상 금기의 대상이 아니라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뉴질랜드 마라에(marae, 마오리 공동체의 중심지)에서 은밀하게 베이핑을 하는 모습은, 한국의 교실·화장실·PC방·노래방에서 흔히 목격되는 장면과 다르지 않다. 전자담배는 연기와 냄새가 적어 교사의 눈을 피하기 쉽고, 청소년들은 이를 일종의 놀이문화처럼 소비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심각하다. 뇌 발달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기에 니코틴이 주는 중독은 더욱 강력하고, 이후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퀴그 박사는 전자담배 문제의 본질을 ‘기기의 은폐성’과 ‘니코틴 중독의 손쉬운 접근성’으로 보았다. 그는 기기 크기를 더 크게 만들고, 생활용품처럼 보이는 디자인을 치료용 기기로 전환하며, 향료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전자담배가 더 이상 일상 속 장난감이나 액세서리가 아니라, 분명한 건강 위해 요인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화려한 디자인과 과일·캔디향 같은 유혹적인 플레이버는 청소년을 전자담배 세계로 끌어들이는 가장 큰 통로다. 이를 규제하지 않고서는 어떤 교육이나 계도가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러나 기기와 향료 규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전자담배의 확산은 단순히 물건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 세대가 느끼는 사회적 불안과 스트레스, 그리고 소속감의 결핍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마오리 청년들이 신성한 공간에서조차 몰래 전자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단순히 법규를 어기는 문제가 아니라 전통과 공동체의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 청소년이 교실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행태 역시, 규율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 현실에서 얻지 못한 해방감과 유대감을 잘못된 방식으로 추구하는 모습일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청년들에게 대안적 길을 제시하는 사회적 노력이다. 뉴질랜드가 마오리 청년들을 위해 문화와 공동체 활동을 통해 정체성을 회복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것처럼, 한국 역시 청소년들이 삶의 의미와 자존감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스포츠, 예술, 봉사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 속에서 청소년이 소속감을 찾을 수 있을 때, 전자담배의 유혹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전자담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기를 내뿜지만, 그 영향은 사회 전반을 흐리게 만든다. 청정한 자연과 문화를 자랑하는 뉴질랜드에서조차 신성한 공간이 전자담배 연기에 잠식되고 있다면, 우리 사회 역시 안심할 수 없다. 한국과 뉴질랜드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청년 세대를 보호하기 위한 보다 강력하고 창의적인 사회적 조치다.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청년들의 삶 속에서 진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다. 그들이 맑은 호흡으로, 건강한 꿈을 꾸며, 전통과 문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켜내는 것. 그것이 지금 전자담배 문제 앞에서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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