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참어른 김장하, ‘실천의 아비투스’로 시대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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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선생(81세, 2025.5.10)

 

남명학파, 실천적 유학의 계보

 

[한국유통신문= 김도형 발행인/편집장] 경남 진주의 명신고등학교를 말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 인물을 떠올린다. 재산을 나누고, 신념을 지키며, 생의 끝까지 실천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김장하 선생. 그는 단순한 지역 유지가 아닌, 한국 사회의 양심을 지켜온 참된 어른이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은 조식 선생으로 대표되는 남명학파의 실천적 유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남명 조식은 이론보다 실천을, 공허한 명분보다 삶 속의 절의를 강조했다. 김장하 선생 역시 이 전통을 이어받아 “의로운 분노는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정신을 평생 실천으로 살아냈다.


그는 경남 서부 지역, 유학의 도가 생활로 뿌리내린 공동체에서 자랐다. 가문은 조선 중기부터 유학적 윤리와 절개를 이어온 집안이었고, 선생은 어려서부터 “남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삶의 가치를 두라”는 조부의 가르침을 새겼다. 이 뿌리는 이후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그리고 김장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인간의 신념과 행동양식을 형성하는 무형의 자산을 ‘아비투스(habitus)’라 불렀다. 이는 교육, 가족, 지역, 계급, 문화 등의 영향을 받아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체화된 습속’이다. 김장하 선생은 바로 이 아비투스를 통해 한 인간의 실천이 어떻게 한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의 신념, “내가 가진 것은 모두 사회의 것”, “돈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야 한다”는 말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다. 이는 세대를 통해 형성된 유학적 가치, 교육과 윤리의 아비투스가 구체적 장(field)인 사회 속에서 발현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비투스를 실천으로 재생산하며, 다음 세대에 ‘참된 삶의 방식’을 전수해왔다.


1984년, 김장하 선생은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교명 ‘명신(明新)’은 『대학』에서 따온 말로, 스스로를 밝히고 새로움을 추구하라는 유학의 이상을 담고 있다. 그는 “친척은 쓰지 않겠다, 돈 받고 채용하지 않겠다, 권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세 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그리고 1991년, 학교가 명문으로 자리 잡자 100억 원(현 시세 2,000억 원)을 조건 없이 국가에 기증했다.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결단이었다.


김장하 선생의 나눔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저항이자 실천이었다. 그는 진주신문 후원, 환경운동, 형평운동, 여성 인권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 발을 담갔지만,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가 도운 이들에게 남긴 말은 “나에게 고마워하지 말라, 사회에 갚으라”였다.


자전거 출퇴근, 한약방 건물에서의 검소한 생활, 언론과의 거리두기.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의 실천은 ‘계몽’이 아니라, 행동하는 계몽이었다.


1980~90년대,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김장하 선생은 학교 이사장으로서 전교조 해직 사태에 정면으로 맞섰다. “나는 한 명도 해임할 수 없다.” 권력의 압박에도 그는 교사들을 지켰고, 교육의 자율성과 양심을 지켜냈다. 형평운동 70주년을 기념하며 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한 그의 행보는 그저 ‘나눔’이라 부르기엔 깊은 저항과 절개의 윤리가 담겨 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은 단지 선행의 연속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갈 길을 잃었을 때,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자 답이다. 한국 사회의 기부 문화, 교육의 상업화, 정치의 타협적 현실 앞에서 그는 한결같은 삶으로 메시지를 던졌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사회의 것, 돈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야 한다.”


그의 이 말은 삶으로 입증되었다. 그리고 그 삶은 우리 사회가 어떤 ‘아비투스’를 지녀야 하는지, 어떤 ‘장’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깊이 가르쳐준다.


참어른 김장하.


그는 실천과 윤리, 겸손과 절개를 아비투스로 체화한 사람이다.


그의 삶은 한국 사회가 ‘사람답게 사는 길’을 잊지 않도록, 지금도 조용히 등을 비춰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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