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보 한국사교수 칼럼] 친일 매국노 회생기

김도형 0 1,727

1.jpg

전 경북도의원, 한국사 교수

 

 

백선엽 장군이 2020710일 향년 100세로 별세하셨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지킨 영웅 이였다. 그런데 광복회에서 현충원에 보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왜 일까?

1945년 해방되면서 맥아더 일반명령 1호에 의해서 38도 이북은 소련군이, 이남은 미군이 일본군항복을 접수하였다. 815일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김일성을 앞세우고 간접군정을 하였고, 98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직접군정을 실시하였다.

 

1차 회생기: 친일경찰

 

오끼나와 주둔군 사령관 하지 중장은 한반도를 일본의 지방정부 정도로 인식하였다. 그는 여운형선생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불법화 하였고 김구선생의 임시정부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구선생은 113일 민간인 신분으로 귀국하였다. 미군정은 해방정국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친일경찰의 직위를 유지시켰다. 친일경찰출신은 성조기 덕분에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

 

2차 회생기: 친일군인

 

1946년 터어키와 그리이스 등 발칸반도에서 게릴라들이 준동하였다. 배후에 소련의 암약이 포착되자 미국은 트루만 독트린과 마샬플랜을 실시하였다. 이것이 미소냉전의 시작이였고 그 최전선이 한반도의 38도 선었다. 미군정은 소련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서 국방경비대를 설치하였다. 여기에 만주간도특설대 군인들이 대거 입대하였다. 만주간특설대란 조선인으로써 일본천황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만주에서 활약하는 독립군을 때려잡는 친일매국노군인들이였다. 이들은 재빨리 친일에서 친미로 변신하였던 것이다.

 

3차 회생기: 6. 25전쟁

  

19506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터지자 친일 경찰 군인들은 미군과 3년에 걸친 전투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38도 이북으로 물리치는데 성공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친일 군인과 경찰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으로 둔갑하였다. 이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빨갱이를 막는 것에 방점을 찍고 과거 자신들의 친일행각을 철두철미 은폐하고 독립운동사를 축소하고 그 후예들을 소외시켰던 것이다.

 

5차 회생기: 박정희 경제개발의 성공

  

1961년 박정희는 5.16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박정희 18년 독제정권의 첨병 역할을 한 사람들이 친일 경찰과 군인들이였다. 한편 박정희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시켰고, 일약 조국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게 되었다. 덤으로 친일 매국노들과 그 후예들은 산업화세력을 형성하여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수주의의 핵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칠곡군 약목면에 유지 한분이 계셨다. 그 분은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와 학교를 세우고 저수지를 축조하여 문맹퇴치와 농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일정시대 배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황해도에서 일정의 관료를 하였네, 해방 후 과거 친일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심정으로 고향발전에 노력했다고.“

 

 

<저작권자(c)한국유통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및 사회적 공헌활동 홍보기사 문의: 010-3546-9865, flower_im@naver.com

 

http://www.youtongmart.com

 

 

3.jpg

    해썹문의: 010-3546-9865

 

1.jpg

 

2.jpg

 

 

1.jpg

제품광고: 코로나19 극복 면역력 강화 새싹보리 튼튼건강환(기업체 사은품 대량 주문 문의 01035469865)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