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기차, 정책과 시장 사이에서 속도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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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뉴질랜드 현장에서 바라본 변화와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필자는 현재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전기차 시장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전기차(EV)는 ‘피할 수 없는 미래’처럼 보였다. 조용하고 친환경적이며 유지비가 낮다는 장점은 많은 소비자를 설득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환경의 변화가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공영방송 RNZ의 시사 프로그램 〈The Detail〉은 전기차 스마트 충전 기업 Evnex의 CEO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의 진단은 분명했다. 정부의 정책 조정이 시장 심리를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한때 ‘Clean Car Discount’ 제도를 통해 전기차 구매를 적극 지원했다. 그러나 보조금 폐지, 전기차에 대한 도로사용료 부과, 청정차 기준 완화 등 정책 변화가 이어지면서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은 약화됐다. 


판매 통계 역시 이를 반영한다. 2023년 약 2만6000대 수준이던 전기차 판매는 2024년 약 9000대로 감소했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부담과 형평성 문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보조금은 세금으로 운영되며, 특정 계층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비판도 존재했다. 또한 도로사용료 부과는 장기적으로 내연기관 차량과의 과세 형평을 맞추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정책 전환이 반드시 ‘후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 현장에서 체감되는 불확실성은 분명하다. 충전 인프라, 배터리 재활용, 정비 산업 등 성장하던 생태계가 투자 위축을 겪고 있다. 전기차는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관련 산업 전반을 견인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정책 신호가 약해질 경우 소비 심리와 투자 결정이 동시에 위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한국 역시 전기차 보조금 조정과 예산 축소 논란을 겪고 있다. 다만 방향성 측면에서는 비교적 명확하다.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충전 인프라 확충과 기술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모델을 확대하며 수출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차이는 단순한 시장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일관성’에서 드러난다. 뉴질랜드는 재정 건전성과 형평성을 강조하며 속도 조절에 나섰고, 한국은 산업 전략과 탄소중립 목표를 중심에 두고 점진적 조정을 택하고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각국의 경제 구조와 재정 여건에 따른 선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 전환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하이브리드 차량이 과도기적 대안으로 부상하는 현상 역시 두 나라 모두에서 나타난다. 이는 소비자의 현실적 선택이자 기술 전환기의 자연스러운 단계다. 궁극적으로 완전 전기차가 어느 시점에 주류가 될 것인지는 기술 발전뿐 아니라 정책 신뢰도에 달려 있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필자의 눈에 비친 현재 상황은 ‘전기차의 종말’이라기보다 ‘정책 신호에 따른 조정기’에 가깝다. 한국 역시 보조금 규모나 방식은 변할 수 있지만, 장기적 방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기차는 여전히 미래일 수 있다. 다만 그 미래가 얼마나 빠르게 다가올지는 정부의 선택, 산업의 대응, 그리고 소비자의 신뢰가 함께 만들어 갈 문제다. 정책은 속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방향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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