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ㅊ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그 집은 우리 가족의 역사였고,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살아가는 필자는, 이 나라의 평온한 풍경 뒤편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뉴질랜드 남섬의 한적한 농업지대, 타이리 평원(Taieri Plains)의 끝자락에 자리한 그린파크(Greenpark) 오두막촌 역시 그런 장소였다.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기억과 땀,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희망을 품어온 이곳은, 2025년 6월 30일을 끝으로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환경부의 ‘지속가능성’과 수질 보호 정책에 따라, 마을에 남아 있던 마지막 주민들까지 모두 강제 퇴거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 보도된 이 사건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 그리고 ‘집’이라 불리던 공간에서 삶이 밀려나는 이야기였다. 국가로부터 ‘불법’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삶이었지만, 그 오두막은 누군가에게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 유일한 안식처였고, 가족과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억의 장소였다.
한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가 갈 곳은 없습니다. 자식 집에 갈 수도 없어요. 이 오두막이 내 집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접하며,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필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과거와 현재로 옮겨갔다. 재개발의 바람이 거셌던 1980~90년대, 서울의 구룡마을, 상계동, 용산, 영등포, 강서 일대의 풍경이 떠올랐다. 철거민들은 예고 없는 벽보 한 장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고, ‘무허가’, ‘불법거주자’라는 이유로 보호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뉴질랜드의 오두막촌이나 한국의 달동네나, 표현만 다를 뿐 ‘쫓겨나는 사람들’의 고통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그 이후에 있었다.
뉴질랜드의 경우, 정부는 수년에 걸친 유예 기간을 두었고, 지역 위원회는 퇴거 전까지 물과 전기, 쓰레기 처리 등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유지하도록 지원해 왔다.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협의체가 구성되었고, 일부 주민들은 마지막 이별 파티를 열 수 있는 시간도 허락받았다. 물론 주민들 역시 “다른 지역의 오두막은 남겨두면서 왜 우리만 철거하느냐”며 이중잣대를 비판했지만, 그 과정에는 적어도 사람을 ‘대상’이 아닌 ‘존재’로 대하려는 형식적 존중이 남아 있었다.
반면 한국의 무허가촌 철거는 어떠한가. 여전히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새벽이나 혹한기에도 강행되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빈곤과 노령, 사회적 고립 속에서 마지막 삶의 보루였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옥상과 망루 위에서 몸으로 저항해야 했다.
그린파크 오두막촌의 철거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누군가의 삶의 마지막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밀어낼 때,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삶의 공간’은 준비되어 있는가?”
한국에서도 1인 가구의 고령화와 함께 노년층의 주거 취약성은 점점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고시원, 쪽방촌, 컨테이너 주택. 이름은 다르지만, 이들 모두는 여전히 삶의 주변부에 놓여 있다. 제도의 틈새에서 살아가며, 통계와 정책의 숫자 바깥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그린파크 주민들처럼, 이들 또한 작은 집 앞에 화분을 놓고, 벽에 가족사진을 붙이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그렇다면 그 삶은 ‘불법’이라는 단어 하나로 그렇게 쉽게 지워져도 되는 것일까.
뉴질랜드에 살며 느끼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합법’과 ‘불법’이라는 경계선만으로 삶의 무게를 재단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다. 행정과 정책이 향해야 할 방향은 규제나 효율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삶을 함께 품는 공존의 방식이어야 한다.
물론 환경 보호와 도시 정비, 공공의 이익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철거는 단순한 건축물의 해체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공동체, 사랑과 시간이 함께 무너지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는 바란다.
한국에서도 언젠가 ‘쫓겨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비극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존중받아야 할 삶의 기록으로 남기를.
그린파크 오두막촌이 완전히 사라진 자리에 언젠가 꽃이 피어난다면, 그 꽃이 단지 장식이 아니라 기억의 자리로 남기를.
그리고 한국의 어느 재개발 골목에서도, 사람들이 다시 뿌리내릴 수 있는 따뜻한 터전이 마련되기를.
우리는 삶을 쫓아내는 도시가 아니라, 삶을 품어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복지국가로, 성숙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이다.
<저작권자(c)한국유통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및 사회적 공헌활동 홍보기사 문의: 010-3546-9865, flower_im@naver.co
검증된 모든 물건 판매 대행, 중소상공인들의 사업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