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교육학 박사).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2025년의 뉴질랜드 자동차 시장은 ‘어려운 해(Difficult year)’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그 단어 속에는 단지 숫자나 실적 부진을 넘어, 한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전환의 고통이 녹아 있다. 수입차 감소, EV(전기차) 가치 하락, 하이브리드 차량 선호의 급상승, 수익 마진 악화. 모두가 업계의 실적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도전의 증표다.
최근 12개월 동안 뉴질랜드의 승용차 수입은 15% 가까이 급감했다. 특히 EV 수입차는 가치가 거의 반 토막 났다. 정부의 보조금이 줄고,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그 원인이 되었다. 그 사이에서 하이브리드 차량은 조용한 약진을 시작했다. 어느 현지 딜러는 “이제 모든 신차는 하이브리드 보조 기술이 기본”이라고 말한다. 이는 시장의 혼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장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이 뉴질랜드의 상황을 바라보며 한국의 자동차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면, 우리는 놀라운 평행선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은 2025년 상반기 수입차 판매가 9.9% 증가하면서 지난 2년간의 하락세를 뒤집었다. 연간 기준으로는 역대 두 번째 실적이 예상될 만큼 회복세가 뚜렷하다. 그러나 이 회복의 본질은 단순한 ‘판매 증가’가 아니다. 중심에는 친환경차의 폭발적인 성장이 있다. 수입 하이브리드는 전년 동기 대비 33.2% 증가했고, 수입 전기차 역시 20.2% 상승했다. 전체 수입차 판매량의 84.2%가 하이브리드 또는 전기차이며, 그 중 하이브리드가 60% 이상을 차지한다.
국산차도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하이브리드와 EV 모델들이 잇따라 출시되며 점진적인 성장세를 이어간다. 그 배경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이 있다. 세제 감면, 충전 인프라 확충, 탄소중립 로드맵 등 행정적 지원과 더불어,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실질적인 시장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도 완벽하지는 않다. 2024년 기준으로 국내 EV 판매는 9.7% 감소하며 2년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충전 인프라 부족, 배터리 관련 안전 문제, 가격 부담 등의 복합 요인이 EV 확산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반면 하이브리드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과도기적 해법’으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 EV 중심 정책을 펼치는 정부의 방향성과 시장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뉴질랜드와 한국, 이 두 나라가 동시에 겪고 있는 전환의 본질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하나, 전통 산업의 고통. 내연기관차 중심의 딜러, 부품 업체, 제조 인력들은 불확실한 내일을 마주하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시스템과 기술이 빠르게 구식이 되어가고,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기 위한 압력이 현장을 짓누른다.
둘, 친환경차에 대한 양면성. 전기차는 이상적이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는 충전 걱정 없는 하이브리드에 손을 뻗는다. 감성적 선호와 실용적 판단 사이에서의 갈등은 소비자 개개인에게 맡겨져 있다.
셋, 정책의 양날. 정부는 방향을 제시해야 하지만, 때론 시장의 속도를 오판하거나 너무 앞서가 버리기도 한다. 규제가 유효할 수도 있지만,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넷, 소비자 인식의 진화. 사람들은 단지 ‘새 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책임’을 산다. 환경과 편의 사이에서 고민하며, 자녀 세대를 위한 선택을 실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뉴질랜드의 딜러는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한국의 EV 정체와 하이브리드의 질주는 더딘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단절이 아닌 진화의 과정이다. 이 전환기는, 필연적으로 불편하고 때로는 실망스럽지만, 결국은 다음 세대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다리다.
우리는 자주 묻는다. “이렇게 힘든데, 언제쯤 바뀔까?”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알 수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모두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는 것을.
오늘도 한 딜러는 손해를 감수하고 친환경차를 설명한다. 어느 부모는 미래 환경을 생각해 고민 끝에 하이브리드를 선택한다. 정책 입안자는 밤늦게까지 충전소 계획을 조율하고, 기술자는 보이지 않는 배터리 안전성을 확보하려 애쓴다. 이 모든 이들이 함께 만드는 드라마가, 지금 우리의 자동차 시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모두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 서 있다. 하지만 그 길이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가운 수치 뒤에는 따뜻한 선택이 있고, 혼란의 시간 속에는 새로운 희망이 자라고 있다.
더딜지라도, 더 어렵더라도, 우리가 함께 간다면, 그 길은 분명히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자동차라는 일상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모두의 내일을 바꾸고 있다.
<저작권자(c)한국유통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및 사회적 공헌활동 홍보기사 문의: 010-3546-9865, flower_im@naver.co
검증된 모든 물건 판매 대행, 중소상공인들의 사업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