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재명 대통령의 구미 방문, 역사를 함께 마주하는 통합의 계기로

사회부 0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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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추모와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을 함께… 국민 통합은 서로 다른 기억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한 국민뿐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한 국민까지 대표한다. 국민 통합의 진정성은 익숙한 지지의 공간을 넘어, 자신과 다른 역사적 기억을 가진 시민들을 어떻게 만나는가에서 드러난다. 오는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을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의 구미 생가 방문과 추도식 참석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구미 생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10월 26일에도 이곳에서 서거 46주기 추모제와 추도식이 열렸으며, 지역 인사와 시민들이 참석했다. 이 공간을 현직 대통령이 찾는 일은 서로 다른 역사 인식을 가진 국민 사이에 대화의 가능성을 여는 상징적 행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미를 특정 지역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한 계산으로 좁혀서는 안 된다. 경북 주민 전체를 하나의 정치 성향이나 역사관으로 규정하는 것부터 경계해야 한다. 같은 지역에 살아도 박정희 시대를 기억하고 평가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대통령이 존중해야 할 대상은 특정한 정치적 충성심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가진 시민 모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 역시 어느 정당의 독점적 소유물이 될 수 없다. 국민의힘이 산업화의 성과와 정치적 계승을 강조하는 것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유산을 상대 진영의 정당성을 부정하거나 국민을 편 가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당시의 경제 발전과 자신의 삶을 연결해 기억하는 시민들의 경험까지 배척해서는 안 된다.


정치가 극복해야 할 것은 이념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민주사회에서는 국가의 역할과 정책 방향을 둘러싼 의견 차이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차이를 적대감으로 바꾸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를 국민의 자격을 가르는 기준처럼 사용하는 태도다. 필요한 것은 생각의 통일이 아니라, 의견이 달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민주적 신뢰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추도식 참석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 다만 방문의 취지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산업화에 기여한 국민의 노력과 성취를 존중하면서, 권위주의 통치 아래에서 훼손된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기록원 자료 역시 유신체제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장악한 구조와 당시 인권 탄압을 둘러싼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역사적 성찰이 빠진 추모는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산업화에 대한 인정이 권위주의의 정당화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성찰이 산업화 세대의 헌신을 지우는 방식이어서도 안 된다. 국가 발전을 위해 일한 사람들과 자유와 권리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삶을 함께 존중할 때, 통합이라는 말은 비로소 설득력을 갖는다. 피해를 경험한 시민에게 화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이번 제안의 가치를 ‘최초’라는 수식어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2023년에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전례가 있다. 구미 생가 행사와는 구분해야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추도식 참석 자체를 전례 없는 일로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방문의 순서보다 그 자리에 담기는 메시지와 이후의 실천이다.


한 번의 헌화와 추도사로 오랜 갈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통령의 상징적 행보가 의미를 가지려면 이후에도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들과 대화하고, 역사적 피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지역과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공정하게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여야 역시 방문을 상대 진영의 굴복이나 자기 진영의 승리로 해석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구미 방문이 성사된다면, 그 자리는 과거의 평가를 하나로 정리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국민도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대통령의 용기는 자신을 반기는 목소리만 듣는 데 있지 않다. 불편한 역사와 낯선 목소리를 함께 마주하고, 그 사이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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