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탁구대 위에 놓인 한글, 캔터베리에서 만난 K-탁구의 풍경

사회부 0 718

스크린샷 2024-11-25 201526.png

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캔터베리 탁구 클럽에서 탁구를 치던 어느 날이었다. 라켓이 오가고, 공이 테이블을 스치며 튀어 오르는 평범한 풍경 속에서 문득 시선이 멈췄다. 맞은편 코트에서 게임을 하던 한 청년의 유니폼에 선명한 한글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의 캔터베리. 한글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장소는 아니었다.


유니폼의 주인공은 그리핀(Griffin)이라는 키위 청년이었다. 호기심에 말을 건네자 그는 웃으며 한국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행 중 탁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현지에서 유니폼을 구하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국에서의 경험이 좋았고, 그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는 설명이었다.


그 순간, ‘한류’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는 흔히 K-팝, K-드라마, K-푸드를 떠올리지만, 그날 내가 마주한 것은 K-탁구였다. 화려한 무대도, 기획된 이벤트도 아니었다. 지역 탁구 클럽의 일상적인 저녁 시간, 땀 냄새와 웃음이 뒤섞인 공간에서 한글은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고 있었다.


탁구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종목이다. 국제 대회에서의 성과, 학교 체육과 동호회 문화, 그리고 생활 스포츠로서의 깊은 뿌리까지. 그런 한국의 탁구 문화가 뉴질랜드의 한 지역 클럽에서, 그것도 키위 청년의 유니폼 위에 한글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울림을 줬다.


Griffin에게 한글 이름이 어떤 의미냐고 묻자, 그는 “멋있고, 특별하다”고 답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 글자가 자신에게 한국에서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한글은 그에게 언어 이전에 경험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이 장면은 한류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이제 한류는 ‘보는 문화’에서 ‘입는 문화’, ‘먹는 문화’를 넘어 함께 땀 흘리고 즐기는 문화로 스며들고 있다. 음악을 듣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을 넘어, 스포츠와 취미, 일상의 루틴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이다.


특히 이런 변화는 재외동포가 많이 모이는 중심 도시가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에서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캔터베리 탁구 클럽은 특정 국가의 문화를 홍보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글이 새겨진 유니폼은 그곳에서 전혀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이것이야말로 문화가 뿌리내렸다는 증거일 것이다.


탁구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국적과 언어는 의미를 잃는다. 그날 Griffin과 주고받은 몇 번의 랠리 속에서, 나는 한류가 더 이상 ‘전파되는 대상’이 아니라 공유되는 경험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누군가의 여행 기억, 취미, 자부심 속에 조용히 자리 잡은 한글 한 줄. 그 작은 장면이 웅변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K-탁구는 지금 이곳에서도, 그렇게 조용히 진행 중이다.

 

 

스크린샷 2024-06-14 172010.png

 

 

<저작권자(c)한국유통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및 사회적 공헌활동 홍보기사 문의: 010-3546-9865, flower_im@naver.co

검증된 모든 물건 판매 대행, 중소상공인들의 사업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