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통. 함께 엮어내는 건강의 미래.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배운 연대의 힘.

사회부 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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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한국과 뉴질랜드 협력 모델의 따뜻한 비교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어느 사회든, 그리고 그 사회가 가진 교육·의료·연구 제도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근본적 물음이다. 뉴질랜드 남섬의 중심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협력 모델이 있다. 그것이 바로 Te Papa Hauora이다.


Te Papa Hauora는 단순한 기관이 아니다. 교육기관, 의료기관, 연구기관이 손을 맞잡고 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가는 전략적 파트너십의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대학의 연구실에서 태어난 아이디어가 병원의 현장으로 옮겨지고, 다시 지역사회로 확산된다. 환자의 치료 경험은 교육과정 속에 반영되고, 학생들의 배움은 곧바로 의료 현장에서 쓰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마오리 원주민인 Ngāi Tūāhuriri의 목소리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한국 역시 교육·의료·연구의 성과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나라다. 첨단 의료기술, 빠른 진료 시스템, 연구자들의 탁월한 성취는 한국이 자랑할 만한 힘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보건·교육·연구 체계는 여전히 개별 기관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병원은 병원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정부 부처는 부처대로 성과를 추구한다. 각자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때로는 서로의 협력 부족이 혁신의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반면 크라이스트처치의 Te Papa Hauora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함께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어느 한 기관이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네 개의 주축 기관 – 캔터베리 대학교, 링컨 대학교, 아라 인스티튜트, 그리고 캔터베리 보건위원회 – 가 동등하게 협력한다. 여기에 마오리 부족이 정식 파트너로 참여해, 의료와 교육의 방향이 단순히 제도권의 논리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이 모델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감정은 ‘따뜻함’이다. 단순히 효율적이거나 전략적인 협력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진심이 바탕이 된 연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교육 제도도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지만, 속도와 경쟁에 치여 종종 놓치게 되는 ‘함께’의 가치가 Te Papa Hauora에는 선명히 살아 있다.


필자는 한국의 청년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치열한 입시와 취업 경쟁 속에서, 때로는 지쳐버린다. 의료 현장 역시 인력 부족과 과중한 업무로 힘겨운 목소리가 쏟아진다. 연구자들은 끊임없는 성과 압박에 시달린다. 모두가 열심히 달려가지만, 정작 협력의 힘은 약하게 작동한다. 만약 한국에서도 Te Papa Hauora처럼 대학, 병원, 연구소, 지역사회가 공동의 플랫폼 위에서 함께 걸어간다면 어떨까. 청년들은 배움이 곧 현장에서 살아 있는 경험으로 이어지고, 환자들은 의료 현장에서 따뜻한 돌봄과 첨단 연구의 결실을 동시에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크라이스트처치의 Te Papa Hauora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건강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의료기술과 연구 성과만으로는 진정한 건강을 만들 수 없다. 그것을 사회 속에서 어떻게 연결하고, 누구와 나누며, 어떤 관계로 엮어내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환자가 단순히 ‘치료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동반자이자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로 존중된다.


한국에서도 이미 변화의 조짐은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학병원이 손을 잡고 지역의료 개선을 모색하는 사례, 산학협력단을 통한 연구·산업 연계 등 다양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은 제도적 틀에 갇혀 있거나 단기 성과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의 모델은 우리에게 ‘장기적 안목’과 ‘관계 중심의 사고’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Te Papa Hauora를 떠올리면, 필자는 한국 속담 하나가 생각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혼자서는 무겁고 어려운 것도 함께라면 훨씬 쉽게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교육, 의료, 연구라는 세 개의 백지장을, 한국에서는 아직 제각각 들고 있는 느낌이라면, 뉴질랜드의 Te Papa Hauora는 이미 그 세 장을 한꺼번에 맞들고 걸어가고 있다. 그 결과, 무겁기만 했던 길이 따뜻한 동행의 길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시작된 이 협력 모델은, 사실 거대한 철학을 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건강한 공동체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진다”는 믿음이다. 한국 사회 역시 이제는 경쟁을 넘어,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학과 병원, 연구기관과 지방정부, 그리고 시민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공동의 미래를 설계할 때, 한국의 건강과 교육, 연구도 한층 더 따뜻하고 강인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Te Papa Hauora. 이 이름 속에는 뉴질랜드 원주민의 언어가 담겨 있다. 직역하면 ‘건강의 집’ 정도가 된다. 필자는 이 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건강이란 거대한 병원 건물이나 연구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집처럼 우리 곁에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언젠가 ‘건강의 집’이라는 개념이 더 널리 퍼지기를, 그리고 그것이 협력과 연대의 힘으로 현실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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