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뢰를 저버린 범죄,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뉴질랜드 베이 오브 플렌티 사건을 보며

사회부 0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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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최근 뉴질랜드 베이 오브 플렌티(Bay of Plenty) 지역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은 우리 사회가 다시금 성찰해야 할 과제를 던지고 있다. 현지 법원은 34세 남성 나폴레온 에케톤(Napoleon Eketone)에게 해외에서 온 교환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가택 구금형을 선고했다. 피해 학생은 낯선 나라에서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환경 속에 놓여 있었고, 보호자 대신 의지해야 하는 호스트 가족의 집에서 안전을 위협받는 아픔을 겪었다. 법원은 이를 "명백한 신뢰의 배신이자 중대한 범죄"라고 규정하며 판결의 의미를 분명히 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피해자가 단순히 “외국인”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던 10대 청소년이었다는 점이다.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진 낯선 땅에서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의 손에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피해 학생은 사건 직후 방으로 도망쳐 어머니에게 전화로 울부짖는 심정을 토로했다. 멀리 자국에서 딸의 공포에 질린 목소리를 전해들은 어머니는 호흡 곤란까지 겪으며 곧바로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가정은 완전히 흔들렸고, 부모는 "삶이 무너졌다"고 법정에서 호소했다.  


우리는 이 장면을 그저 남의 이야기로 볼 수 있을까? 만약 그 피해 학생이 우리 집 아이였다면, 혹은 내 조카와 동생이었다면, 결코 타인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의 시대, 한국 청소년 또한 수많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에 나가고 있다. 이번 사건은 그들이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뉴질랜드 법원은 에케톤에게 기본 형량으로 징역 16개월을 책정했으나, 피고인의 조기 자백을 고려해 징역 12개월로 감형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이를 가택 구금 6개월과 이어지는 6개월 사후 관리 조건으로 판결을 완화했다. 또한 피해자 가족이 긴급히 뉴질랜드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4,877달러(약 400만 원)의 비용 배상 명령도 선고했다.  


사건을 접한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의아함이 남는다. "청소년을 상대로 한 범죄인데 겨우 가택 구금?"이라는 반응이 쉽게 나올 법하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해 보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역시 성범죄 재판에서 피고인의 자백, 초범 여부, 반성 태도, 합의 성립 등을 이유로 실형을 감경하거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피해자가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공분과 달리 법원의 최종 판결은 다소 ‘관대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즉, 이번 사건은 "뉴질랜드의 처벌이 가볍다"는 차원에서 끝낼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사법 정의와 피해자 보호의 불일치 문제를 환기한다.  


법원이 강조한 대목 중 주목할 만한 것은 피해 학생과 가족의 고통을 직접 언급한 점이다. 판사는 “교환학생 생활은 즐거움과 배움의 시간이었어야 했지만, 피고인은 그 신뢰를 저버리고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고 밝히며, 피해자의 인간적 경험을 판결문 속에 기록했다. 또한 피해자의 부모가 뉴질랜드로 급히 날아와야 했던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까지 배상하라고 명령한 점은 법률적 보상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범죄 피해자 보호 제도가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피해자 지원금과 법률 상담, 심리 치료 프로그램 등이 운영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피해자 가족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충분히 치유하기에는 부족하다. 뉴질랜드의 이번 판결이 보여준 “실제 발생한 비용까지 가해자가 책임지도록 하는 원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신뢰의 파괴"라는 점에 있다. 부모는 자녀를 해외로 교환학생으로 보낼 때 그들을 돌봐줄 가정과 제도가 신뢰할 만하다고 믿는다. 교환학생 당사자는 그 신뢰를 기반으로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그러나 그 신뢰가 무너진 순간 단순한 범죄를 넘어, 피해자의 삶 전체가 뒤흔들리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처벌 강화만큼 중요한 것은 교육과 예방 시스템이다. 해외에 학생을 보내는 가정이라면, 자녀에게 반드시 비상 대처 방법과 신고 경로, 본인의 권리를 알려야 한다. 학교와 교환 프로그램 운영기관은 정기적으로 학생의 안전을 확인하고, 보호자와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 전체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어떤 위협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청소년 해외 교류 프로그램 참여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동시에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 중 상당수가 아동·청소년이라는 불편한 현실도 마주하고 있다. "우리 사회 내부조차 안전하지 않은데, 해외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엄격한 제도적 필터로 교환학생 호스트 가정을 선발하며, 사건 발생 시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뉴질랜드 사례에서 드러난 사법적 한계는 한국에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피해자 보호 조치의 세밀함에서 우리가 배울 점도 있다.  


신뢰는 사회를 지탱하는 열매다. 교환학생 사건은 신뢰가 깨어진 자리에서 얼마나 큰 고통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이 사건을 타산지석 삼아, 우리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안전망을 점검해야 한다.  


범죄자가 초래한 상처를 판결 하나로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가 보여주는 진정성 있는 대응과 피해자 중심의 제도는 2차 피해를 막고, 희망을 회복하게 만들 수 있다. 청소년을 지키는 신뢰, 그것이 곧 사회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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