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교육학 박사). 북경화지아대학교 국제교류처장, 기업관리대학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칼럼으로 풀어내고 있다.
타이완 작가 우샤오러의 고백, 그리고 한국·뉴질랜드 교육 현실을 마주하며
“한국 아이들의 적은 학교, 학원, 그리고 부모다.”
이 말은 한국의 교육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 동시에, 타이완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타이완 작가 우샤오러는 열여덟 살 때부터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의 기대와 압박에 짓눌린 아이들을 수없이 만났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정의’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고민은 분노로 이어졌으며, 결국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그 책이 바로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이다.
이 책은 타이완 교육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동시에 적지 않은 비판도 받았다.
타이완과 한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는 문화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체벌과 압박이 정당화되고, “모든 부모는 옳다”는 말이 사회적 신념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런 환경 속에서 우샤오러는 “아이들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처음엔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지만, 그의 용기 있는 발언은 사회적 담론을 일으켰고, 교육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접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의 현실과도 비교하게 되었다.
한국과 타이완, 두 나라 모두에서 부모의 교육열은 매우 높으며, 좋은 대학 진학이 곧 성공이라는 믿음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주말에도 학원으로 향하는 풍경은 양국 모두에서 흔하다. 성적이 곧 인격처럼 여겨지고, 공부를 못하면 혼나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부모의 한마디에 아이의 자존감은 쉽게 무너지고, 정체성은 흔들린다.
이처럼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꿈이 치열하게 추구되는 사회에서는, 아이가 ‘나’라는 존재로 존중받기보다는 ‘성과’로 환산되는 도구가 되기 쉽다. 성적표는 존재 증명의 수단이 되고, 부모의 자존심을 대신 짊어져야 할 짐으로 전락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실패가 곧 부모의 실패라는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나 최근에는 분명한 변화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체벌은 점점 금기어가 되어가고, ‘정서적 학대’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도 높아지고 있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서 때린다”는 말은 더 이상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우샤오러가 “내가 덜 무모했다면, 어른들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하며 살아갔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한국 사회 역시 그 무모한 질문들 덕분에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반면, 뉴질랜드의 교육 현실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이곳에도 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뉴질랜드 교육의 출발점은 아이를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의 감정과 선택, 그리고 각자의 속도는 가능한 한 존중받는다.
학교에서도 ‘이해’와 ‘회복’을 중심으로 한 접근이 이루어진다. 교사들은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기보다는, 아이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사람이 된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묻는 것은 “왜 그랬니?”가 아니라 “지금 네 마음이 어때?”이다.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기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태도다. 뉴질랜드의 부모들은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났다고 여기지 않는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다양한 길이 있으며, ‘행복’이라는 삶의 본질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부모와 자녀는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화하려고 노력하며, “부모니까 당연히”보다는 “이 아이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맨발로 뛰놀고,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이곳에선 매우 자연스럽다. 부모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물론 모든 가정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의 권리’는 이미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의 치열함을 체험했고, 타이완의 현실을 보며 그 아픔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느꼈다.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아이들이 천천히, 그러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세 나라의 교육 현실을 비교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당신은 아이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당신이 아이에게 주고 있는 것은 진짜 사랑인가, 아니면 당신의 욕망인가?”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는 아이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유하려는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샤오러가 고백했듯, 아이들이 그에게 “적어도 성적이 낮다고 해서 내 잘못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쓴 편지를 받았을 때, 나 역시 울컥했다.
그 말 한마디가, 많은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떤 문화든, 어느 나라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다만 그 사랑이 때로는 통제가 되고, 소유가 되고, 억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건 진짜 사랑일까?”
“이 아이는 지금 행복할까?”
타이완의 한 작가가 남긴 깊은 울림, 그리고 그가 털어놓은 사적인 고백에 경의를 표한다.
뉴질랜드에서의 일상은 우리가 어떤 교육적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는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모든 억압을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아야 할 때다.
진정한 사랑은 통제가 아니라 이해이며, 소유가 아니라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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