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교육학 박사). 북경화지아대학교 기업관리대학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칼럼으로 풀어내고 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짐 릴리(Jim Lilley) 회장은 한 평생을 지역사회와 자연, 그리고 이웃을 위해 헌신해온 대표적인 지역사회 봉사자다. 그는 경찰관으로 근무하며 사회의 안전을 지켰고, 해양 감시단(Marine Watch)을 공동 설립해 해양 생물 보호와 구조에 앞장섰다. 또한 해안경비대에서 21년간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500명 이상의 인명을 구조했고, 암협회 기금 모금, 버스 운전사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의 삶은 단순한 봉사자의 삶을 넘어, 한 개인이 어떻게 지역사회와 자연, 그리고 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적으로 바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그러나 짐 릴리가 자신의 모든 성취와 헌신의 절반 이상을 아내 캐스(Cath)에게 돌렸다는 점은 뉴질랜드 봉사문화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그는 “내가 해온 일의 절반도 아내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아내와 함께한 봉사와 삶의 여정을 강조했다. 캐스는 2008년 유방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지만, 짐 릴리는 여전히 그녀를 “내가 해온 많은 일의 동반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16년을 함께했고, 캐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결혼식을 올렸다. 짐 릴리는 국왕 생일 기념 훈장(King’s Birthday Honours List)에 오르며 공식적으로 지역사회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그 영예의 상당 부분이 아내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와나우(whānau, 마오리어로 가족과 공동체를 의미)이며, 상의 절반 이상은 아내의 몫”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뉴질랜드에서는 개인의 봉사와 헌신이 가족과 공동체의 지원과 분리될 수 없는 가치로 여겨진다.
짐 릴리의 봉사정신은 개인적 경험과 성장 환경에서 비롯된다. 그는 카이코우라(Kaīkōura) 농장에서 자라며 자연과 동물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그 경험이 해양 감시단 설립과 동물 구조 활동으로 이어졌다. 10,000마리 이상의 고래 구조에 직접 참여했고, 해안경비대에서는 각종 재난과 인명 구조에 앞장섰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단순히 봉사활동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와 동료들에게 전수하는 데도 힘썼다. 짐 릴리는 “20년 전 내가 했던 일이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봉사의 연속성과 공동체의 힘을 강조한다.
그의 봉사활동은 단순한 선행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연대와 지지를 바탕으로 한다. 캐스 역시 해안경비대에서 무전기 담당 자원봉사자로 활동했고, 부부는 늘 함께 봉사의 현장에 있었다. 캐스가 세상을 떠난 뒤, 짐 릴리는 깊은 슬픔에 빠졌지만,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암 환자와 가족을 위한 봉사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는 2010년부터 트랜스 알파인 스쿠터 사파리(Tranz Alpine Scooter Safari)라는 자선행사에 매년 참여해 암협회를 위한 기금 모금에 앞장서고 있다. 그에게 봉사란 단순히 남을 돕는 행위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의 약속을 지키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삶의 방식이다.
뉴질랜드는 이처럼 개인의 봉사와 가족, 공동체의 지원을 하나로 묶어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 짐 릴리가 받은 뉴질랜드 메리트 훈장(New Zealand Order of Merit)은 단순히 개인의 공로를 넘어, 가족과 공동체 전체의 헌신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상징적 제도다. 그는 “이 상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나를 지지해준 가족과 공동체 모두의 것”이라고 말한다. 뉴질랜드 사회는 봉사자의 헌신뿐 아니라, 그 곁을 지키는 이들의 기여까지도 소중하게 여기며, 이를 사회적 명예와 자부심으로 연결한다.
한국의 지역사회 봉사문화는 조직과 제도 중심의 특성을 보인다. 한국에서도 자원봉사와 지역사회 기여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 잡았지만, 그 방식과 인정 체계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의 자원봉사는 주로 기업, 학교, 종교단체, 사회복지관 등 조직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은 교내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장애인 보조, 소외계층 아동 지원, 환경정화, 재난복구, 문화활동 도우미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다. 이러한 봉사활동은 개인의 성장과 진로, 학교생활기록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등 제도적 동기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가족 단위의 봉사활동이 점차 늘고 있지만, 공식적인 인정과 사회적 명예는 주로 개인이나 조직에 집중된다. 예를 들어, 3대에 걸쳐 봉사활동을 이어온 가족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봉사명문가’로 선정되는 사례가 있지만, 이는 예외적이다. 대부분의 포상과 표창은 장기 봉사자, 우수 봉사자, 우수 단체 등 개인이나 집단의 성과에 초점을 맞춘다. 가족이나 파트너의 헌신이 공식적으로 조명되거나, 국가적 훈장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한국의 봉사문화는 근대화와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자원봉사센터, 사회복지관, 지방자치단체 등이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참여자에게 인증서와 상장을 수여한다. 최근에는 자발성과 연대, 공동체 의식이 강조되고 있지만, 봉사활동이 여전히 조직적·제도적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뉴질랜드는 소규모 공동체와 가족 중심의 사회구조를 바탕으로, 봉사활동이 자연스럽게 일상과 연결되고, 가족과 공동체의 지원이 봉사의 핵심 자산으로 여겨진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봉사문화는 모두 지역사회와 이웃을 위한 헌신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봉사자 개인의 헌신과 더불어, 그 곁을 지키는 가족과 공동체의 역할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회적 명예와 자부심으로 연결한다. 짐 릴리와 캐스의 이야기는 이러한 뉴질랜드 봉사문화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반면, 한국은 조직과 제도 중심의 봉사체계가 뿌리내려 있으며, 최근 들어 자발성과 공동체 의식이 강조되고 있지만, 가족과 파트너의 기여가 공식적으로 조명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
앞으로 한국의 봉사문화도 봉사자의 헌신뿐 아니라, 그 곁을 지키는 이들의 기여와 공동체 전체의 연대를 더 넓게 인정하고 조명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뉴질랜드처럼 봉사활동이 개인의 선행을 넘어 가족, 이웃, 지역사회 전체의 가치와 명예로 확장된다면, 더 따뜻하고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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