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지낸 저자, 『다시 예술의 자율성을 묻다』 펴내
문화전쟁·플랫폼 공론장·국가 지원의 관계 분석…공존 위한 문화정치 제안
[한국유통신문= 김도형 기자] 국가의 지원은 예술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하고, 어디에서 개입으로 바뀌는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약 10년이 흐른 지금, 예술의 자율성을 둘러싼 질문을 다시 꺼내 든 책이 나왔다.
커뮤니케이션북스는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박명진의 『다시 예술의 자율성을 묻다』를 9월 30일 출간했다. 부제는 ‘문화전쟁의 해부와 공존의 설계’다.
이 책은 블랙리스트 사건을 돌아보는 데서 출발해, 사건을 가능하게 한 정치·문화적 환경과 이후의 제도 변화를 함께 살핀다. 국가 지원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긴장을 어떤 원칙과 절차로 조정할 것인지가 핵심 질문이다.
저자는 출간의 변에서 당시 갈등의 한복판에 있었던 당사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의 답을 찾고, 그 위치에서 보였던 구조적 문제를 기록하려 했다고 밝혔다. 책은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문화정책과 미디어 환경에 대한 분석으로 확장한다.
박명진은 블랙리스트를 일부 고위 공직자의 일탈이나 특정 정권의 폭압만으로 설명하면 사건의 사회적 토양을 충분히 살피기 어렵다고 본다. 책임을 묻는 일과 재발을 막기 위한 구조 분석이 함께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블랙리스트 이전부터 진행된 한국 사회의 ‘문화전쟁’이다. 영화와 웹툰, 팟캐스트, SNS가 정치적 발언과 비판적 담론의 통로로 부상하면서 전통 언론 중심의 의제 설정 구조가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문화예술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정치적 갈등이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분류하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흘렀다고 해석한다.
책의 1부는 이러한 변화와 블랙리스트의 기획·집행 과정을 추적한다. 분단 영화에서 웹툰과 팟캐스트, 트위터로 이어지는 문화적 갈등의 지형을 살펴보고,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장 이론을 통해 진보·보수 문화 진영의 구조적 차이를 분석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백서와 관련 자료, 지원심의 통계를 활용해 지원 기관의 대응과 제도적 한계도 검토한다.
2부에서는 블랙리스트 이후의 환경을 다룬다. 유튜브와 SNS 중심으로 재편된 공론장에서 특정 인물이나 작품이 빠르게 평가되고 배제되는 현상을 저자는 ‘디지털 재판소’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국가의 직접적인 명단 작성과 별개로, 플랫폼과 대중에 의한 압력이 예술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성평등과 다양성, ESG, 사회적 가치 등 공적 기준을 예술 지원에 반영하는 과정도 논의 대상이다. 저자는 이러한 기준이 지원의 내용과 방향을 지나치게 규정할 때 예술의 자율성과 충돌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를 ‘소프트 컨트롤’의 관점에서 검토한다.
이 같은 분석은 국가가 예술을 지원하되 창작과 심의에 대한 직접적인 간섭은 제한해야 한다는 ‘팔길이 원칙’을 다시 살피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책은 미국 국립예술기금(NEA)을 둘러싼 논쟁과도 비교하며, 표현의 자유와 공적 지원의 관계, 지원 기준을 결정하는 절차와 참여 구조를 묻는다.
저자가 제안하는 공존의 방향은 네 가지다. 상대를 제거할 적이 아닌 논쟁할 적수로 인정하는 문화, 사실 확인과 검증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언론, 정치권력과 지원 심의 사이의 거리를 확보하는 예산·거버넌스 구조, 그리고 진영 논리를 넘어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열어 주는 예술의 역할이다.
특히 예술 지원 기준에 대한 합의는 기준의 내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누가 논의에 참여하고 누구의 목소리가 반영되며 어떤 원칙에 따라 결정하는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지원 기관의 운영 구조와 연결해 살피는 대목이다.
저자 박명진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에서 30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기호학, 담론분석, 영상 커뮤니케이션, 문화연구 등을 강의하고 연구했다. 2002년에는 서울대 정보문화 연합과정 설립을 주도했으며, 2015년 5월부터 약 2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책 말미에는 통계 분석의 상세 자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심의 분석보고서 전문을 부록으로 실었다. 당시 지원 기관 책임자의 경험과 해석을 담은 만큼, 독자에게는 저자의 관점을 관련 기록과 함께 검토할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 예술의 자율성을 묻다』는 443쪽이며, 가격은 2만 8,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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