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식의 독립운동노선을 더듬다(1)

김도형 0 93

안동출신 독립운동가 김원식은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1934년 북경에서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 분교 한인특별반(이하 낙양 군관학교) 입교생 모집활동 하기까지 16년간 만주와 관내지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펼쳤다. 망명 후, 김원식은 한족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는 1920년대 남만주 대표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에서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면서 독립운동의 지도자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1927년부터 시작된 재만 민족유일당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독립운동계의 힘을 통합하는데도 힘썼다. 그는 1926년 무렵부터 사회주의노선을 수용함으로써 좌.우를 모두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시기에 김원식은 농민호조사와 보호회 등을 조직하는데 앞장서서 재만 한인들의 생활안정과 권익보호에도 힘썼다.

 

1932년 이후에는 관내지역으로 이동하여 1934년 신한독립당 창당을 주도하였다. 또한 김원식은 이 시기에 김구, 이청천, 김원봉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낙양군관학교 독립군 간부양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금까지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김원식에 관한 연구는 없었다. 그 이유는 만주지역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인물 연구가 대체로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군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특성 자체가 청산리.봉오동전투로 대표되는 무장투쟁 중심의 독립운동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만주지역의 독립운동이 무장투쟁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경향은 자칫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만주지역 독립운동 단체연구의 경우 여려 연구들을 통해 그러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나, 인물연구는 아직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0년대 이후 김희곤, 한시준, 김용달 등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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