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통신문 설립 취지문 및 매체 소개

김도형 0 110

한국유통신문 설립 취지문 및 매체 소개

 

정의

 

한국유통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인터넷 물류유통정보경제신문

 

개설

 

2013429일 독립운동가 김원식 선생의 증손자인 김민조 대표가 창간한 특수주간지 한국유통신문2016127일 인터넷신문 한국유통신문으로 전환되어 동생 김도형이 신문 발행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한국유통신문은 한국유통산업 전반을 취재 및 공유함으로서 중소상공인을 비롯한 국민 이익 도모를 목적으로 발행했다. 한국유통신문의 언론 정신은 대한민국 독립운동가들이 정립해 놓은 독립운동정신에 있다. 선열들의 독립운동정신은 민족의 자존을 세우는 일이었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외침이었으며 오늘날 민주화의 근간이 되었다. 이는 민족의 독립과 애국이라는 대의 앞에 오랜 세월 지속되어오던 신분제의 굴레를 벗어나 신분과 지위는 평등하다는 새로운 민족정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유통신문을 발간한 김민조 대표는 만주방면에서 독립운동을 한 소창 김원식 선생의 증손자다. 김원식 선생으로부터 독립운동정신을 이어받은 김민조 대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서민들과 소상공인들의 삶 현장에서 부대끼며 희노애락을 함께 해와 진정으로 중소상공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미래사회를 대처할 수 있는 정보제공의 중요성을 실감해 한국유통신문 창간의 뜻을 품었다.

 

한국유통신문 창간은 독립운동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으므로 그 시작인 소창 김원식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 일대기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가보훈처 공적자료에 따르면 경북 안동 출신 소창 김원식 선생은 1919년 안동지방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도만하여 봉천성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에 가입 후 군자금 모집 활동과 교표 및 독립운동 동지의 원호에 전력하였다.

 

김원식 선생은 1919년 만주로 망명해 1934년 북경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 분교 한일특별반 입교생 모집활동을 하기까지 16년간 만주와 관내지역을 오가며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김원식 선생은 1921년 독판 이상룡 선생의 지령을 휴대하고 잠입국하여 경도 각지에 연락하여 군자금 모집 후 다시 중국을 오갔다. 이상룡 선생을 주축으로 설립된 신흥무관학교는 항일독립운동을 기지 건설을 위해 서간도 지역에 설립된 독립군 양성학교다.

 

1920년대 남만주 대표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에서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면서 독립운동의 지도자 위치에 오르게 된 김원식 선생은 1922년 일 주구기관 숙청 대열 활약의 중심 참모였으며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여 동북면 군사연락위원으로 북경에 주재하여 활약하였다. 항일순국의열사전에 등재된 바와 같이 김원식 선생은 통의부, 참의부, 군정서를 통합하여 정의부를 조직할 때 김동삼, 오동진, 현익철, 이청천, 김상덕, 이규사와 같이 중앙집행위원에 병출되었다.

 

1927년부터 시작된 재만 민족유일당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김원식 선생은 독립운동계의 힘을 통합하는데도 힘썼다. 김원식 선생은 1926년 무렵부터 사회주의노선을 수용함으로써 좌.우를 모두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 시기에 농민호조사와 보호회 등을 조직하는데 앞장서서 재만 한인들의 생활안정과 권익보호에도 힘썼다. 중국군 참모장 희흡과 군사동맹 체결시 72명의 한국측 대표로 병출됐고 1927년 농민호조사를 발기 설립하여 활약한 김원식 선생은 1928년 삼부 합작시 정의부 대표로 김동삼 선생과 같이 통합에 진력하였다.

 

김원식 선생의 업적 중 주목해야 할 것은 1922년 임시정부 지령으로 이규사 선생과 같이 동북군사연락위원으로 북경에 상주하여 60여명의 학생을 남경 등지에 유학시키며 대한독립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인재 양성에 매진하였다는 사실이다.

 

1932년 이후 관내지역으로 이동한 김원식 선생은 1934년 신한독립당 창당을 주도하였다. 또한 김원식 선생은 이 시기에 김구, 이청천, 김원봉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낙양 군관학교 독립군 양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 측면에서 소창 김원식 선생이 가지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 민족의 독립과 한인의 생활안정이라는 커다란 목적 아래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는 포용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특히 서로 대립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정의부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라는 두 단체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점을 뒷받침해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통합의 과정들에서 각 단체나 독립운동가들이 보여준 갈등의 모습은 김원식 선생이 지니는 가치가 어떠한 것인지 반증해주는 것이라 할 만 하다.

 

둘째, 소창 김원식 선생은 관내지역 단체와 만주지역단체의 통합을 이루어 냄으로써, 이전 시기 관내 지역과 만주지역에서 분리되어 진행되었던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운동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안창호와 홍진이 독립운동계의 통합운동을 만주지역에 전파시켰다고 한다면, 김원식 선생은 만주지역과 관내지역의 통합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신한독립당의 창당은 1920~30년대까지 이루어진 독립운동계의 통합운동이 조선민족혁명당이라는 결실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그 밑거름을 제공했다는데 있어서도 의미가 있다.

 

항일순국의열사전에는 김원식 선생이 만주 사변후 동북군사위원으로 활동 중 밀고로 일경에 피체되어 간도의 형무소에서 2년간 예심 끝에 국내로 이감되어 옥고를 겪었으며 석방 후 길림에 와서 계속 활동하다가 길림성 강동촌에서 독사로 생을 마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김원식 선생의 묘소는 찾을 수 가 없는 상태다. 안동 서후면 금계마을 학봉종택 옆에 김원식 선생의 생가터가 보존되어 있어 언제고 김원식 선생이 고국으로 되돌아 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적지 않은 세월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김원식 선생의 독립운동정신을 이어받은 한국유통신문은 신문제작에 있어서의 근본 목표는 김원식 선생이 만주지역 농민들의 생활 안정과 권익보호를 꽤하고자 했던 농민호조사 활동에 근간을 둔다.

 

농민호조사(農民互助社)는 일제당시 재만(在滿) 한인농민들의 집단 농촌건설을 위해 조직된 단체이다. 19272월 안창호 선생이 상해를 떠나 만주 각지를 순회하면서, 재만 한인 농민들이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재만 한인 농민들이 항일 독립운동의 인적·물적 기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안창호 선생은 안정된 독립운동 기반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이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이 무장투쟁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역설하였으며, 이를 지지하는 재만 독립운동지도자들과 힘을 모아 단체 설립을 추진하였으며 김원식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준비위원과 발기인으로 참여했다.[준비위원: 이탁(李沰최일(崔日곽문(郭文김이대(金履大윤인보(尹仁寶김영일(金永一이동우(李東雨손정도(孫貞道표학화(表鶴華, 또는 表鶴革지석보(智錫寶) 발기인: 안창호를 비롯한 김기풍(金基豐김진호(金鎭浩김원식(金元植김호(金虎김동삼(金東三김정제(金定濟, 또는 金定消김유성(金有聲, 또는 金有成김일병(金一秉곽종경(郭鍾敬, 또는 郭鍾毓곽우명(郭宇明엄영무(嚴永武이욱(李旭이유필(李裕弼배형식(裵亨湜박기백(朴起白성태영(成泰永안규원(安奎源윤도숙(尹道淑윤원규(尹元圭오상헌(吳尙憲오송파(吳松坡오동진(吳東振옥이성(玉以成최석순(崔錫淳최만영(崔萬榮현정경(玄正卿)]

 

농민호조사의 설립목적은 첫째 근대 과학적 영농법과 기계를 도입하고 수력전기를 개발해 산업상 생산력의 증가를 도모하며, 둘째 국내에서 중등학교 이상 졸업한 사람을 교사로 초빙해서 각처에 교육기관을 설립해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자 하였다.

 

셋째 보건위생에 대해 계몽하고 병원을 설치하여 보건 환경 위생을 개선시켜, 재만 한인농민들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한인농민들의 집단농촌 건설이 목표였다.

 

사원 출자로 협동조합방식이었던 농민호조사는 집단농촌 내에서 사원은 서로 협동해서 산업·교육·풍교(風敎보위(保衛) 등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서로간에 신용과 박애를 존중하고 청결·정미(精美)에 힘쓰도록 하였다. 사업은 일시 진전이 있었으나 많은 어려움에 부닥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1931년 일제의 만주침략으로 소멸되었다.

 

한국유통신문의 언론정신과 활동목표는 독립운동정신과 농민호조사 설립목적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유통신문은 시장경제활성화를 위한 정보발굴과 정보공유를 원할히 하기 위해 201781921세기 정보화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SNS마케팅시민기자단 무료교육을 최초 실시해 전문시민기자를 양성해 오고 있다.

 

한국유통신문은 4차산업혁명융합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2018820일 탐사보도 전문시민기자단 양성, SNS교육을 실시해 탐사취재기법과 정보 발굴 및 유튜브 제작 등을 통해 양질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미래정보사회를 대비한 데이터 저널리즘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유통신문의 발행소는 경북 구미시에 위치하며 201812월 서울본사를 둠으로서 사세 확장에 들어가 한국중소기업들의 해외 판로개척과 국내 중소기업인들의 유통망 구축을 위한 인적네트워크 활성화를 목적으로 유통인들로 구성된 한국중소기업수출협회 설립 추진과 더불어 한국유통신문 전국 기자단 모집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2019년 현재 미국, 중국, 라오스에 상주특파원을 두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신속하게 정보수집 및 취재, 보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추진하는 문화사업으로는 한국유통신문 유통대상 추진, 한국유통영상미디어활성화 시나리오 공모전, 국제드론산업협회 추진, 시낭송소리예술문화장르 공연, SNS시민기자단교육 등이 있으며, 세계유통박람회 및 세계 4차산업컨퍼런스및세미나를 비롯해 4차산업 전시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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