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남섬 최남단의 중심 도시 인버카길(Invercargill)은 첫인상만 보면 한없이 평온한 지방 도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오랜 역사와 자동차 문화,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어우러진 뜻밖의 매력을 품고 있는 곳이다. 남극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스쳐 가는 이 도시는 화려함보다 깊이 있는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선사한다.
1850년대 개척 시대에 형성된 인버카길은 뉴질랜드에서도 손꼽히는 역사 도시다. 도심을 걷다 보면 빅토리아(Victoria) 양식과 에드워드(Edward) 양식, 그리고 아트데코(Art Deco)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들이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빅 센터(Civic Centre)와 역사적인 시청, 극장 건물은 도시의 품격을 보여주며, 한적한 거리와 어우러져 느긋한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
하지만 인버카길의 진정한 매력은 의외의 곳에서 드러난다. 조용한 역사 도시인 이곳은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자동차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개인 자동차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빌 리처드슨 트랜스포트 월드(Bill Richardson Transport World)에는 300대가 넘는 클래식 자동차와 빈티지 트럭이 전시돼 자동차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소는 평범한 철물점처럼 보이는 E. 헤이즈 앤 선즈(E. Hayes & Sons)다. 이곳에는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The World's Fastest Indian)'의 실제 주인공이자 모터사이클 전설로 불리는 버트 먼로(Burt Munro)가 직접 탔던 1920년식 인디언 스카우트 모터사이클이 전시돼 있다. 평범한 상점에서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역사를 만나는 경험은 인버카길만의 특별한 반전이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남극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오레티 비치(Oreti Beach)는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과 넓은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한적한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와 평온함이 마음속까지 스며든다.
자연을 더욱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다면 국제적으로 중요한 생태 지역인 와이투나 습지(Waituna Wetlands)를 추천한다. 보드워크를 따라 걷는 동안 다양한 철새와 희귀 식물을 만날 수 있으며,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뉴질랜드 생태계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인버카길 여행은 미식의 즐거움으로도 이어진다.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항구 도시 블러프(Bluff)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블러프 굴의 산지다. 매년 5월 열리는 블러프 굴 축제에는 신선한 굴을 맛보기 위해 국내외 미식가들이 찾아온다. 또한 시내의 시리어슬리 굿 초콜릿 컴퍼니(Seriously Good Chocolate Company)에서는 오랜 전통의 레시피로 만든 수제 초콜릿을 맛볼 수 있어 여행의 달콤한 추억을 더해준다.
인버카길에는 대도시의 화려한 야경도, 북적이는 관광지도 많지 않다. 대신 오랜 세월을 품은 거리와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 그리고 남태평양의 청정 자연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여행의 가치가 있다. 남극의 바람이 스쳐 가는 이 작은 도시는 느림의 미학과 깊은 여운을 선물하며, 뉴질랜드 남섬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완성해 주는 반전의 도시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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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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