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실선 하나가 던지는 질문. 뉴질랜드 웰링턴의 공공질서와 공동체의 선택

사회부 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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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항구 도시 웰링턴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벌어진 ‘36미터 노란 실선’ 논쟁은 단순한 교통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공공의 안전과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길 위에 그어진 노란 선 하나가 이웃 간의 갈등을 촉발하고, 경찰이 출동하며, 시의회가 주민 청원을 바탕으로 공식적인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우리에게 묻는다. 공공의 질서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웰링턴 카라카 베이(Karaka Bay) 지역의 포티피케이션 로드(Fortification Road)는 폭이 5.1~5.7미터에 불과한 좁은 도로다. 양쪽에 차량이 주차되면 쓰레기 수거 차량이나 긴급 출동 차량의 통행이 어려워지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시의회 기준에 따르면 원활한 통행을 위해서는 최소 6.9미터의 폭이 필요하다. 결국 시의회는 해당 구간에 총 36미터 길이의 노란 실선, 즉 주정차 금지선을 설치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 결정의 출발점은 행정이 아니라 주민이었다. 27명의 주민이 서명한 청원이 계기가 되었고, 시의회는 공청회를 열고,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추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행정이 일방적으로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 제기와 숙의를 거쳐 공공의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이 과정은 민주주의가 추상적인 제도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절차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주민이 이 결정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도로변에 위치한 문화재 등록 주택인 Britten House의 소유주 부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에게 도로변 주차 공간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자신의 재산과 생활의 일부였다. 그들은 이번 청원이 특정 이웃의 개인적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노란선 설치가 오히려 차량 속도를 높여 안전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지어 갈등은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져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장면은 공동체가 언제나 조화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개인의 권리는 때로 공동체의 안전과 충돌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뉴질랜드에서 인상적인 점은 갈등의 해결 방식이다. 주민 청원, 공청회, 현장 조사, 위원회 심의, 그리고 최종 결정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시간은 걸리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 자체에 대한 신뢰는 유지된다. 공공의 선은 속도가 아니라 절차 속에서 만들어진다.


한국에서도 주차 문제는 일상적인 갈등의 원인이다. 좁은 골목에 차량이 늘어서고,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며, 주민 간 언쟁이 벌어지는 일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 해결 방식은 종종 제도적 절차보다는 개인 간의 협상이나 감정적 대립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행정이 일방적으로 단속을 강화하거나, 반대로 민원을 의식해 근본적인 해결을 미루기도 한다.


물론 한국도 변하고 있다. 소방 통행로 확보를 위한 주차 금지선 설치, 주민 의견 수렴을 통한 교통 개선 사업 등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경우 공공의 기준보다는 개인의 편의가 우선되는 문화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길은 모두의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누군가의 것’처럼 사용되곤 한다.


뉴질랜드의 사례가 특별한 이유는 노란 실선이라는 물리적 표시보다, 그 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 그 선은 단순한 금지의 표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합의한 공공의 약속이다. 선 하나가 공동체의 질서를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공공의 안전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긴급 차량이 통과하지 못하는 몇 분의 지연은 누군가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 노란 선은 단순히 주차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위급한 순간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국과 뉴질랜드의 차이는 제도의 유무보다, 공공 공간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에 있다. 공공 공간은 개인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이 얼마나 공유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인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결정들이 쌓이며 형성된다.


웰링턴의 Fortification Road에 그어질 36미터의 노란 실선은 길이로 보면 짧다. 그러나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결코 짧지 않다. 그것은 공동체가 안전을 위해 내린 선택이며, 갈등 속에서도 절차를 통해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결과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정책이나 국가적 결정에서 민주주의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회나 정부청사보다, 오히려 이런 골목길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누가 길 위에 주차할 수 있는가라는 작은 질문 속에, 공동체의 가치와 질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노란 실선은 단순한 선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어디까지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공공의 안전을 우선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경계선이다. 그리고 그 선은 행정이 아니라, 결국 공동체 스스로 그어가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 웰링턴의 한 조용한 골목에서 그어진 이 짧은 선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공공의 길을 얼마나 공공답게 사용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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