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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배어 나오는 깊은 맛,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에 담긴 시원함, 그리고 짭짤한 김치 한 조각이 선사하는 삶의 활력. 한국인에게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수천 년 이어온 삶의 지혜이자, 추억의 보고이며, 때로는 가슴 저미는 애환을 담은 존재다. 장독대에서 묵어가는 된장과 간장, 온 가족이 모여 김치를 담그던 풍경 속에서 소금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다. 우리는 소금으로 맛을 내고, 음식을 보존하며, 나아가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소금의 빛나는 이면에는 어둡고 위협적인 그림자 또한 드리워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과도한 소금 섭취는 고혈압, 심장 질환, 뇌졸중 등 치명적인 만성 질환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리고 여기,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의 한 연구는 이 소금의 그림자가 특정 공동체에 더욱 깊숙이 드리워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우리에게 충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최근 오타고대학교(University of Otago) 크라이스트처치 캠퍼스의 연구팀은 심부전 환자들의 소금 섭취량 조절이 재입원율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기 위한 국제적인 연구의 일환으로 중요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이 연구는 마오리족과 태평양 섬 주민들의 식단에서 소금 함량이 높은 점에 주목하며, 문화적 식단 선호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이 연구의 중심에는 닥터 알라만다 파아토에즈(Dr Allamanda Faatoese)라는 인물이 있다. 그녀는 "마오리족과 태평양 섬 주민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훨씬 젊은 나이에 심부전 발병 위험이 높다"고 말하며, 이 문제의 시급성과 심각성을 역설한다.
심부전은 심장이 신체에 필요한 혈액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심각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로 인해 호흡 곤란, 극심한 피로, 다리 부종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환자의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결국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닥터 파아토에즈의 말처럼, 젊은 나이에 이러한 질환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은 단순한 건강 문제를 넘어 사회적 불평등과 복합적인 구조적 문제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뉴질랜드 마오리족과 태평양 섬 주민들의 경우, 그들의 전통 식단과 문화적 특성이 이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 음식에는 염장 식품이나 간이 강한 조리법이 많고, 현대에 들어서는 서구화된 가공식품의 유입과 저렴한 고염분 식품에 대한 접근성 또한 높아지면서 문제가 더욱 심화되었다. 하지만 연구팀은 단순히 "소금을 줄이라"고 명령하는 대신, 그들의 문화적 배경과 식단 선호를 존중하면서도 건강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려 노력한다. 이는 질병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을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따뜻하고 인류애적인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닥터 파아토에즈와 그녀의 동료들이 보여주는 헌신은 과학적 탐구가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궁극적으로 더 건강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다.
한국인의 소금 사랑은 뉴질랜드의 마오리족과 태평양 섬 주민들의 경우와는 또 다른 맥락에서 건강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찌개와 국물 요리를 사랑하고, 김치와 장류 없이는 밥상이 허전하다. 뜨겁고 칼칼한 국물은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고, 매콤 짭짤한 김치는 어떤 반찬과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식문화는 오랜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으며, 발효를 통한 보존 기술은 한국인의 삶을 지탱해 온 중요한 축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평균 소금 섭취량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량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이러한 과도한 소금 섭취는 고혈압은 물론, 뇌졸중, 위암 등 심각한 만성 질환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다행히 한국 사회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나트륨 줄이기 운동'과 '저염식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식품 포장재에는 영양 성분 표시를 의무화하여 소비자들이 소금 섭취량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외식업계에서도 저염 메뉴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가정에서는 나트륨 함량이 낮은 간편식이나 양념이 개발되어 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뉴질랜드와 한국, 소금이라는 공통된 화두 아래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두 나라 모두 문화적 특성과 식습관이 국민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서 건강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과 태평양 섬 주민들이 겪는 문제는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계층에서 불균형한 식생활로 인한 건강 문제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소금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히 질병을 예방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 사회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불평등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닥터 파아토에즈의 헌신적인 연구처럼, 건강 문제는 개인의 책임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공동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첫째, 문화적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건강 정책이 필요하다. 특정 식문화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가치를 이해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창의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둘째, 교육과 인식 개선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소금의 위험성을 알리되, 건강한 식생활이 결코 맛없거나 따분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셋째, 정책적 지원과 환경 조성은 필수적이다. 저염 식품 개발 장려, 건강한 외식 문화 확산, 그리고 모든 이들이 쉽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의 역할이다. 가족, 지역 사회, 나아가 국가 전체가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 방식을 함께 만들어가는 연대의 정신이 중요하다.
소금은 우리 삶에 깊이 배어 있는 맛이자, 존재의 이유를 담은 상징이다. 소금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지만, 소금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닥터 알라만다 파아토에즈가 보여준 숭고한 헌신처럼, 우리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건강한 삶을 위한 희망을 함께 만들어갈 때, 우리는 소금의 어두운 그림자를 넘어 진정으로 '맛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식탁, 건강한 삶,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향한 우리의 여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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