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 정치인’ 대신 ‘생활의 경험’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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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한국·뉴질랜드 선거 문화에서 본 민주주의의 진정성


선거철이 되면 거리 곳곳은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홍보물과 현수막으로 채워진다. 후보자의 얼굴과 이력, 정책 공약이 담긴 선거 홍보물은 유권자가 어떤 사람을 자신의 대표로 선택할 것인지 판단하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그런데 화려한 경력이나 거창한 구호보다 한 후보의 소박한 자기소개가 오히려 눈길을 끄는 경우가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직업 정치인이 아닙니다(I am not a career politician)”라는 문구는 국회의원이란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후보는 오랜 기간 회계사로 일하고,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역사회에서 봉사해 온 자신의 경험을 강조한다.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경력보다 지역사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오며 쌓은 경험을 앞세운 것이다. 화려한 정치 이력보다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물론 정치 경험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정치에는 법률, 행정, 경제,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정책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역량이 필요하다. 정치가 복잡해질수록 전문성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다만 정치적 전문성만으로 시민의 삶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라면 정책을 다루는 능력과 함께 평범한 시민이 일상에서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이해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뉴질랜드의 선거문화는 생각해 볼 만한 시사점을 준다. 후보자의 정치 경력만을 강조하기보다 그동안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왔으며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유권자에게 보여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회계사, 교사, 사업가, 지역사회 활동가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이 정치 참여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문화와 비교해 볼 만하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있으며,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법조인, 관료, 학계, 기업 등에서 쌓은 경험을 정치에 접목하는 것은 정책의 전문성과 실효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지나치게 전문화되면 정치와 시민의 일상 사이에 거리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중앙정치의 논리와 정당의 이해관계가 지역 주민들이 실제로 겪는 생활의 문제보다 앞서는 순간, 정치에 대한 시민의 신뢰와 체감도는 낮아질 수 있다.


그래서 ‘생활의 경험’은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주거, 교통, 교육, 의료, 치안, 일자리와 같은 문제는 거창한 정치적 구호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한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어본 사람이라면 정책의 우선순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경력이 화려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 정치인이냐 생활인이냐를 단순히 양자택일할 수도 없다. 전문성을 갖춘 정치인이 필요하지만, 그 전문성이 시민의 삶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 반대로 생활 경험이 풍부하더라도 복잡한 정책을 이해하고 이를 입법과 행정으로 연결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권자가 후보자에게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무슨 경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주민들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공공의 가치와 정책으로 연결할 것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선거일 하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이 자신의 대표를 선택하고, 그 대표가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선거는 단순히 누가 당선되는지를 결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시민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화려한 정치의 언어보다 평범한 이웃의 삶을 이해하는 능력, 중앙정치의 논리보다 지역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공공의 가치로 연결하려는 책임감.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시민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조건일 것이다.


전문성은 정치의 힘이지만, 생활의 경험은 정치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잊지 않게 하는 힘이다. 한국과 뉴질랜드의 선거문화를 바라보며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 민주주의의 진정성도 바로 이 지점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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