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바다의 길 위에서 만난 두 나라, 한국과 뉴질랜드의 ‘고립’과 ‘발견’의 역사

사회부 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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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뉴질랜드에 살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리적 고립’이라는 단어를 일상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세계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때로는 불편함으로, 때로는 자부심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고립이라는 개념은 비단 뉴질랜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아시아의 한반도에 자리 잡은 한국 역시 오랜 세월 ‘세계의 주변부’로 인식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클 J 세스(Michael J. Seth)는 한국을 두고, “자신이 주인공이 된 전쟁을 제외하면 비교적 최근까지 세계의 주목을 끌지 못했던 나라”라고 설명한다. 그 이유로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이웃의 존재, 그리고 유럽 항해자들의 주요 항로에서 벗어난 지리적 위치를 꼽는다. 이는 뉴질랜드의 역사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뉴질랜드 역시 유럽 중심의 세계사 서술에서는 오랫동안 ‘발견의 대상’으로만 등장했을 뿐, 주체적인 역사 서술의 중심에는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단순히 지리적 고립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었다. 바로 외부와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제한했던 조선 왕조의 선택이다. 외세의 간섭을 경계하며 문을 닫았던 이 시기의 정책은 결국 한국을 ‘은둔의 왕국’으로 불리게 만들었다. 이 표현은 19세기 미국인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의 저서 『한국: 은둔의 왕국』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 ‘은둔’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1653년의 표류 사건이다. 네덜란드 선박 데 스페로우(De Sperwer) 호가 제주도 근해에서 난파되었고, 조선은 이들을 구조하면서도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중 한 인물이었던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은 무려 13년 동안 조선에 머물다 탈출에 성공했고, 이후 『하멜 표류기』를 통해 서양 세계에 처음으로 한국을 소개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뉴질랜드의 역사와 흥미로운 대비가 이루어진다. 뉴질랜드는 외부 세계를 ‘차단’하기보다는, 오히려 18세기 이후 유럽 탐험가들의 항해 속에서 점차 세계와 연결되었다. 특히 제임스 쿡의 항해는 뉴질랜드를 세계 지도 위에 본격적으로 올려놓은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과정은 식민지화라는 아픈 역사를 동반했지만, 결과적으로 뉴질랜드는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 빠르게 세계 체제 안으로 편입되었다.


반면 한국은 외부와의 접촉을 늦추는 선택을 했고, 그 결과 ‘늦은 개방’이라는 역사적 경로를 걷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두 나라 모두 한때는 세계의 변방에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K-콘텐츠와 첨단 산업을 통해 세계 문화와 경제의 중심으로 빠르게 부상했고, 뉴질랜드는 청정 자연과 독특한 문화, 그리고 안정된 사회 시스템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존재감을 확립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고립’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립을 어떻게 극복하고 세계와 연결하느냐이다. 한국은 오랜 은둔의 시간을 지나 강력한 외향성을 선택했고, 뉴질랜드는 지리적 고립을 오히려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전환했다.


하멜의 표류기가 서양 세계에 한국을 처음 소개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더 쉽게, 더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고립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것을 어떤 미래로 이어갈 것인가.


뉴질랜드에서 바라본 한국의 역사는 단순한 ‘은둔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세계와 연결되기까지의 긴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바다로 둘러싸인 이 섬나라의 역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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