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200년 전 엔닌의 길에서 본 ‘경계인’의 시선: 당나라와 뉴질랜드 사이

사회부 0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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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9세기 전반, 일본의 승려 엔닌(圓仁)은 목숨을 건 항해 끝에 당나라 땅을 밟았다. 그가 남긴 『입당구법순례행기』는 단순한 종교적 기록을 넘어, 낯선 땅에서 마주한 이국적인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치밀한 관찰기이다. 오늘날 남반구의 뉴질랜드에서 이 기록을 다시 펼쳐보니, 시공간을 초월해 ‘경계인’으로서 느끼는 공통된 정서와 현대적 시사점이 새롭게 다가온다.


엔닌은 당나라의 지방 행정 체계와 거리, 심지어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이름까지 세세하게 기록했다. 이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주자나 방문객이 갖게 되는 본능적인 세밀함이다. 


뉴질랜드에서 마주하는 일상도 이와 닮아 있다. 마오리 지명의 유래를 살피고 한국과는 다른 이곳만의 사회 시스템을 관찰하는 과정은, 1,200년 전 엔닌이 당나라의 지명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던 그 간절한 마음과 맞닿아 있다.

 

엔닌의 여정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재당 신라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장보고의 해상 네트워크와 적산 법화원이 없었다면 그의 구법 여행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오늘날 뉴질랜드와 같은 국외 거주 한인들이 형성하고 있는 커뮤니티의 역할과 흡사하다. 타국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서 서로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한인들의 연대 의식은, 과거 신라인들이 엔닌에게 내어주었던 따뜻한 온정과 그 궤를 같이한다.

 

엔닌이 기록한 당나라는 인종과 국적에 관계없이 실력을 갖춘 이들을 포용하던 역동적인 국제 사회였다. 이는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며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현재 뉴질랜드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낯선 이방인에게 길을 안내하고 숙소를 내어주던 9세기의 관용은,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글로벌 시민 의식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엔닌에게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지식과 사람을 만나는 축복의 통로였다. 뉴질랜드라는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하루하루는 새로운 길을 내는 과정이다. 엔닌이 당나라의 문화를 일본에 전하며 다리 역할을 했던 것처럼,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역시 서로 다른 두 문화를 잇는 ‘살아있는 가교’가 되어야 한다.

 

『입당구법순례행기』 속 엔닌의 발자취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단순한 과거의 기록 그 이상의 가치를 전한다. 낯선 곳을 두려워하지 않고 관찰하며, 타인과 연대하고, 그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1,200년 전 엔닌이, 그리고 지금 뉴질랜드의 길 위에서 우리가 배우고 실천해야 할 구도(求道)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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