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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보면 같은 ‘나눔’이라는 가치도 사회마다 표현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필자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에서는 음식과 농산물을 나누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바로 ‘푸드 팬트리(Food Pantry)’ 혹은 ‘커뮤니티 팬트리’라 불리는 나눔 방식이다.
동네를 걷다 보면 작은 나무 상자나 선반 같은 것이 길가나 공원 옆에 놓여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안에는 도시락, 빵, 통조림, 과일, 채소 같은 음식들이 담겨 있다. 특별한 관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복잡한 절차도 없다. 단순하다.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고, 여유 있는 사람은 채워 넣는다. 이 작은 공간은 말 그대로 ‘이웃을 위한 공동 식탁’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나눔 문화는 개인의 집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집 마당에서 수확한 과일이 너무 많을 때면 사람들은 그것을 상자에 담아 집 앞에 내놓는다. 예를 들어 복숭아나 사과, 혹은 정원에서 자란 채소를 담아 “Free – please take some”이라는 간단한 문구를 붙여 둔다. 지나가는 이웃이나 필요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가져간다.
이러한 정보는 대부분 SNS를 통해 공유된다. 특히 Facebook의 지역 커뮤니티 그룹에서는 “우리 집 앞에 토마토가 있습니다”, “정원에서 딴 사과를 나눕니다”, “오늘 푸드 팬트리에 채소를 놓아두었습니다”라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그 글을 본 사람들이 찾아와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 이 과정에는 어떤 눈치도, 체면도 없다. 그저 자연스러운 공동체의 흐름일 뿐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종종 한국 사회를 떠올린다. 한국 역시 나눔의 전통이 강한 사회다. 특히 예로부터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농촌에서는 김장을 할 때 김치를 나누고, 명절에는 떡이나 음식을 이웃에게 건네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 도시 사회로 들어오면서 그 모습은 조금 달라졌다. 아파트 문화가 자리 잡고 개인 생활이 강조되면서 이웃과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정서적 거리는 오히려 멀어졌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물론 한국에서도 다양한 복지 시스템과 기부 문화가 존재한다. 지방자치단체나 복지기관에서 운영하는 ‘푸드뱅크’ 같은 제도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행정 시스템 중심의 나눔이지, 길가의 작은 상자 하나에 담긴 생활 속 나눔과는 조금 다른 성격이다.
뉴질랜드의 푸드 팬트리 문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자율성’ 때문이다. 누가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감시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고, 여유가 생기면 다시 채워 넣는다. 사회 전체에 흐르는 기본적인 신뢰가 이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나눔의 일상화’다. 특별한 날에만 하는 기부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정원에서 채소가 많이 자라면 나누고, 마트에서 음식을 많이 샀다면 일부를 팬트리에 놓아둔다. 거창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작은 행동이 이어지면서 공동체의 온기가 유지된다.
물론 어느 사회가 더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은 여전히 따뜻한 정을 가진 사회이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서로 돕는 힘을 보여준다. 반면 뉴질랜드는 일상 속에서 부담 없이 나눔이 흐르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마음일 것이다.
집 앞에 놓인 작은 과일 상자 하나, 길가에 세워진 작은 푸드 팬트리 하나가 말해주는 것은 거창한 복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동네에는 서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조용한 메시지다.
지구 반대편에서 바라본 이 작은 풍경은, 나눔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어쩌면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드는 힘은 거대한 정책이 아니라, 집 앞에 놓인 사과 몇 개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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