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물속의 전설이 된 사람들, 겨울을 건너는 용기

사회부 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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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뉴질랜드 퀸스타운의 혹한 수영대회와 한국인의 뜨거운 도전 정신


한겨울 아침, 뉴질랜드 퀸스타운(Queenstown)의 와카티푸 호숫가에 이색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체감온도는 0도에 가깝고 수온은 겨우 8도. 누구도 쉽게 물속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 계절이다. 그런데 그 차가운 물속을 맨몸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닌, ‘전설’을 이어가기 위한 도전이었다.


지난 7월 초 열린 ‘와카티푸 레전드 겨울 수영대회(Whakatipu Legend Winter Swim)’에는 총 45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500m 또는 1000m 코스를 선택해 퀸스타운 호숫가를 수영으로 가로질렀다. 일부는 방수복조차 입지 않은 채, 맨몸으로 겨울의 심장을 통과했다.


500m 종목의 우승자는 앨런 션(Allen Shen). 그는 무려 8분 53.8초 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여성 부문에서는 루비 카이트(Ruby Kite)가 9분 6.3초의 기록으로 가장 빠르게 완주했다.

더 놀라운 기록은 1000m 종목에서 나왔다. 잭슨 알리지(Jackson Arlidge)는 방수복 없이도 15분 1.5초 만에 1km를 헤엄쳤고, 여성 부문에서는 스테파니 우드로(Stephanie Woodrow)가 16분대 기록으로 완주했다.


이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다. 이것은 차가운 자연과 맞서는 인간의 용기, 그리고 도전 정신을 상징하는 축제다. 매년 반복되는 이 대회는 지역 사회에 강한 연대 의식을 심어주며, 단지 추위를 이겨내는 것이 아닌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의식의 장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혹한 속에 달리는 겨울 마라톤, 겨울바다에서의 해맞이 수영, 산속 눈밭을 가르는 철인 경기. 한국인은 언제나 ‘한계를 뛰어넘는 정신’을 삶의 일부로 여겨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매년 1월 열리는 ‘북극곰 수영대회’다. 서울 한강의 얼음장 같은 물속에 수백 명의 참가자들이 뛰어들며 새해를 맞이한다. 어르신부터 청년, 가족 단위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 추운 행사에 참여한다. 이들이 겨울 한강에 몸을 던지는 이유는 단순히 ‘이색 체험’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위한 의식적인 통과 의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겨울 스포츠 문화는 ‘체력 과시’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끈기, 인내,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응원하는 온기 있는 연대의 표현이다. 누군가는 강추위에 떨며 조용히 “나도 할 수 있어”를 되뇌고, 또 누군가는 이 도전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뉴질랜드의 와카티푸 겨울 수영도 마찬가지다. 차가운 물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그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희열과 해방의 순간을 경험한다.

“이겨낸다”기보다 “함께 건넌다”는 이 느낌은 한국인이 익숙하게 느껴온 공동체적 감성과 닮아 있다.


이런 행사는 단순히 대회를 넘어서,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문화유산이 되기도 한다. 퀸스타운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용기의 땅’으로 상징화되는 것도, 이처럼 사람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전통 덕분이다.


한국에서도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도시를 ‘도전의 공간’으로 만들어왔다.

부산의 해운대, 속초의 겨울바다, 태백의 혹한 산악 코스… 이 모든 장소에는 땀과 눈물, 그리고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덧붙여져 있다.


뉴질랜드와 한국. 멀리 떨어진 두 나라지만, 겨울을 대하는 방식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춥다’는 감각 너머에 있는 열정과 연결, 그것이 두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기후 위기와 사회적 단절, 그리고 고립의 시대를 살아간다. 그 속에서 이런 대회들은 단순한 ‘겨울 이벤트’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도시와 사람, 나와 나 자신을 연결하는 뜨거운 고리가 되어준다.


퀸스타운의 찬 호숫물 속을 가로지른 그 사람들처럼,

한국의 겨울바다에 뛰어드는 그 사람들처럼,

우리는 모두 겨울이라는 삶의 시련을 지나며 자신만의 물길을 건넌다.


그리고 그 물길을 건너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겨울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이유.

그건 우리가 함께 건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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