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행산업의 위기, 사람을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될까

사회부 0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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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여행산업은 외부 충격에 가장 민감한 산업 가운데 하나다. 전쟁과 국제분쟁, 환율, 유가, 감염병, 항공료가 조금만 흔들려도 여행 수요는 빠르게 반응한다.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지출 가운데 하나가 해외여행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여행업계의 한 대형 기업에서 최고경영자가 임기를 상당 기간 남겨둔 채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있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그 경영자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여행업계 최악의 시기를 견디며 회사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았다는 점이다.


팬데믹 당시 여행업계는 사실상 멈춰 섰다. 국경이 닫히고 항공편이 사라졌으며 해외여행 상품 판매도 중단됐다. 수많은 여행사가 문을 닫거나 인력을 줄였다. 그런 암흑기를 지나 매출을 크게 늘리고 적자를 흑자로 전환했다면 경영 성과만 놓고 볼 때 결코 낮게 평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경영진 교체가 이뤄졌다.

여기에는 기업 경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논리가 숨어 있다. 바로 투자금 회수, 즉 ‘엑시트(exit)’의 논리다.


사모펀드가 기업의 최대주주가 되면 기업 경영의 시간표는 달라질 수 있다. 창업자는 10년, 20년 뒤를 바라볼 수 있지만 투자자는 일정 기간 안에 기업가치를 높이고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도 있다. 주가와 시장의 평가, 인수 후보자의 관심, 향후 성장 가능성까지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문제는 여행산업의 미래가 숫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지정학적 불안이 일상화되는 모습이다. 국제분쟁은 유가를 자극하고 항공사의 운항 비용을 높인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한국인의 해외여행 비용은 더욱 커진다. 항공료와 숙박비, 현지 교통비가 동시에 오르면 소비자는 여행 계획부터 다시 검토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실적이 몇 분기 주춤했다고 최고경영자를 교체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뉴질랜드에서 관광산업을 바라보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뉴질랜드 역시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남섬의 퀸스타운과 크라이스트처치, 북섬의 오클랜드과 로토루아 등 주요 도시와 관광지는 국제 관광객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팬데믹 기간 국경이 닫히자 관광업계와 숙박업계, 관광버스 회사, 식당, 항공 관련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특히 국제 관광객 비중이 높은 지역의 충격은 컸다. 관광객 한 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여행사 한 곳의 매출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공항에서 시작해 렌터카, 숙박시설, 음식점, 관광지, 기념품점까지 지역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 관광산업 회복을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단순한 ‘매출 회복’만이 아니다. 지속가능성, 지역사회, 환경, 관광의 질이라는 개념이 함께 따라온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데려올 것인가’보다 ‘어떤 관광객이 얼마나 오래 머물고 지역사회에 어떤 가치를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대형 여행업체들은 오랫동안 패키지여행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정해진 날짜에 출발해 여러 관광지를 빠르게 둘러보는 방식은 가격 경쟁력이 높고 대규모 고객을 모집하기 쉽다. 하지만 자유여행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 개별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기존 방식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뉴질랜드 관광은 상대적으로 체류형 여행의 특성이 강하다. 자동차를 빌려 남섬을 여행하거나 한 지역에서 며칠씩 머무는 여행객을 쉽게 볼 수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테카포와 마운트쿡을 거쳐 퀸스타운으로 이동하는 여행은 이동 자체가 관광의 일부다.


여행의 속도가 다르다.

한국 여행업계가 위기에 부딪힐 때마다 새로운 상품과 새로운 경영자를 찾는다면 뉴질랜드 관광산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여행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뉴질랜드를 찾는 관광객을 생각해 보자. 유명 관광지를 최대한 많이 보여주는 것이 반드시 좋은 상품일까.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사진을 찍은 뒤 다시 버스에 오르는 여행이 앞으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필자는 뉴질랜드에 살면서 소규모 여행의 가능성을 자주 생각한다.

10명 정도가 함께 움직이며 현지의 작은 식당을 찾고, 농장을 방문하고,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여행이다. 유명 관광지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뉴질랜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여행에서는 대형 여행사가 가진 규모의 경제보다 현지 네트워크와 경험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관광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경험에서 나온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싸게 다녀왔다”고 말하는 것과 “다시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


뉴질랜드 관광산업이 추구하는 방향에서도 이 점을 읽을 수 있다. 자연환경을 보호하면서 관광객과 지역사회가 함께 혜택을 얻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관광객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영의 시간표가 중요하다.

투자자는 3년이나 5년 뒤 기업가치를 생각할 수 있다. 주가는 오늘의 실적과 내일의 전망에 반응한다. 그러나 관광 브랜드는 10년, 20년에 걸쳐 만들어진다.


여기서 한국 여행업계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생긴다.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자를 교체하는 것은 주주의 권리이자 경영 전략일 수 있다. 새로운 경영자가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외부 환경이 나빠질 때마다 경영진 교체를 해결책으로 선택한다면 장기적인 관광 철학은 누가 만들어 갈 것인가.


코로나19를 견딘 경영 경험은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는 자산이다. 국경이 닫히고 매출이 사라진 상황에서 조직을 유지한 경험, 다시 여행 수요가 살아날 때 상품을 재구성한 경험은 쉽게 대체하기 어렵다.


뉴질랜드의 관광산업을 보면서 필자는 ‘회복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회복력은 위기를 피하는 능력이 아니다. 위기가 왔을 때 견디고 변화하며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뉴질랜드 관광업계는 팬데믹을 통해 국제 관광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의 위험성을 경험했다. 동시에 자연과 지역사회를 관광산업의 중요한 자산으로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국 여행업계도 이제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올해 몇 명을 해외로 보냈는가”가 아니라 “5년 뒤 고객은 어떤 여행을 원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번 분기 영업이익이 얼마인가”와 함께 “우리 회사만이 제공할 수 있는 여행 경험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온라인 플랫폼의 발전은 기존 여행사의 역할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항공권과 호텔은 소비자가 직접 예약할 수 있다. 인공지능에 여행 기간과 예산을 입력하면 몇 초 만에 여행 일정도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여행사는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

답은 어쩌면 ‘정보’가 아니라 ‘경험’에 있을지 모른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현지의 이야기, 지역 주민과의 만남, 예상하지 못했던 작은 경험을 연결하는 능력이 앞으로 여행산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뉴질랜드의 작은 도시와 마을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거대한 관광시설이 없어도 한 곳의 농장, 한 사람의 이야기, 한 끼의 식사가 여행의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여행산업의 위기에서 경영자를 바꾸는 것은 가장 눈에 잘 보이는 변화다. 주가는 반응할 수 있고 시장에는 새로운 신호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바꾸는 것만으로 산업의 구조가 바뀌지는 않는다.

여행의 방식이 변하고 있다면 상품이 변해야 한다. 소비자가 변하고 있다면 기업의 철학도 변해야 한다. 단기적인 기업가치와 장기적인 관광의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한국과 뉴질랜드는 관광산업의 규모와 구조가 다르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은 또다시 국제분쟁과 환율, 고유가라는 불확실성 앞에 서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인적 쇄신만이 아닐 것이다.

어떤 여행을 만들 것인가.

어떤 경험을 고객에게 남길 것인가.

그리고 10년 뒤에도 선택받는 여행기업이 되기 위해 지금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여행산업의 진짜 경쟁력은 경영자의 이름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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